내 삶의 길을 찾고 싶을 때
동양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고전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책이 '주역(周易)'이다. 주역은 '주나라의 역(易)'이라는 뜻이다. '주나라'는 기원전 11세기경, 그러니까 약 3천 년 전에 있었던 고대국가이다. '역(易)'은 '변화'를 의미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즉 '끊임없이 변화하는 궁극의 원리'를 담고 있는 책이 '주역'이다.
이 책 [주역강의]를 펴낸 저자 서대원은 '천지만물이 변화하는 궁극의 원리를 밝히고 사람도 그 원리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기술된 책이 바로 역서이며, 그중의 하나가 주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역의 구조를 잠시 살펴보면, 모두 6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마다 제목이 붙어 있다. 64개의 장은 대개 7행의 본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행을 괘사라 하고, 나머지 6행을 효사(구체적인 설명)라고 한다. 그리고 '십익'이라는 것이 붙어 있다. 본문 7행에 대한 일종의 풀이이다. 십익은 공자가 쓴 것으로 전하지만, 전국시대에 이르러 그 대부분이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한다.
주역을 누가 썼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중국 전설의 제왕 복희씨가 8괘를 만들고 신농씨가 이것을 발전시켜 64괘를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고, 문왕이 괘사를 붙였으며 그의 아들 주공이 효사를 지어 완성했다고도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괘사과 십익을 제외한 '본문 7행'만 다루고 있다. 괘상은 다루지 않았다. 주역이 점서로서의 성격이 강화되면서 괘상이 본문과 별도로 나중에 추가되었다고 본 것이다. 괘상이 출현하기 전까지 주역을 공부하는 목적은 '인격수양과 우주만물의 변화원리를 깨닫는 데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우주만물의 변화 원리를 깨닫게 되면 왠지 앞날의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주역은 누군가에는 '철학서'로 또 누군가에게는 '점술서'로 3천 년을 이어오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동양철학을 연구한 학자도 아니고, 주역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저 30년 넘게 주역 원서를 머리맡에 두고 책장이 해지도록 읽고 또 읽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미련한 정도로 주역에 매달린 건 직업적 이유 때문이었다. '점'을 잘 치기 위해서. 그런데 30년 넘에 역자(점쟁이)로 살아온 그가 30년이 넘는 공부 끝에 '주역은 점술서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즉 그는 주역을 철학서이자 처세서로 바라본다. 그리고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본문을 풀이하고 있다. 덕분에 650페이지 정도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생각보다 쉽게 읽힌다.
시대를 관통하는 가르침
이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점술서가 아닌 철학서나 처세서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담고 있는 가르침이니 새로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세상이 달라졌을 뿐,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도리 혹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도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테니 말이다.
막힘의 운에서 탈출할 방법은 있는가?
물론 있다. 명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이때의 유명은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바꾸는 명이며, 천명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명을 받는가? 주역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무구다. 어렵다고 남의 것을 탐하거나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요, 흠 없이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는 주다. 주는 밭의 경계가 되는 두둑을 말하기도 하고, 밭의 가지런한 이랑을 뜻하기도 한다. 밭의 두둑이나 이랑처럼 가지런하고 질서 있게 생활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절도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 세 번째는 리지다. 이때의 리는 순종하고 따른다는 뜻이다 지는 하늘의 복이라는 말이니, 현재의 어려움과 막힘의 운세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하늘의 복이라고 생각해서 순종한다는 의미이다.
주역이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건 구체적인 해법이 아니라 이렇게 원칙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을 보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 저자가 쉽게 해석해준 덕분에 대략 짐작은 되지만 명쾌하지 않다.
돈을 벌려면 돈이 있는 곳으로 가서 모험을 감행해야 이롭다.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크게 길하고 허물이 없다.
큰 이익을 얻으려거든 현자를 찾아가 십붕의 예로 도움을 받으라.
다소의 무리가 있더라도 종내 길하다.
익의 영화를 누릴 때에는 흉한 일이 있어도 허물이 없다.
믿음과 중용의 도를 행하고, 어려울 때에는 정치력을 발휘하라.
익자가 중용의 도를 행하면 공이 나의 뜻에 따르고
의지 삼아 쓰면 이로우니 나를 옮기는 큰일도 이룰 수 있다.
믿음과 은혜로운 마음만큼 좋은 것이 세상에 또 있으랴.
묻지도 말라, 근원적으로 길하다.
익의 기운이 막혀 평상심을 잃고 공격적이게 되니 흉하다.
함축적인 문장은 태생적으로 불친절하다. 저자의 설명을 읽고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스스로 답을 찾아내기까지 얼마나 많이 곱씹어 읽었을까? 주역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힘은 어쩌면 '사유'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겨우 한 권의 해설서를 읽은 나는 주역에 인생의 답이 담겨 있는지 어떤지 알 수 없다. 다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처한 상황을 돌이켜보게 되고, 앞으로 어떠한 자세 혹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 끝에 나의 길을 찾게 된다. 그런 점에서 주역은 등대와 같고, 가로등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