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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노 외

고전 희극의 대가 '몰리에르'의 희곡

by 효문

프랑스 연극의 자부심 '몰리에르'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고, 독일에 브레히트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몰리에르가 있다. 몰리에르는 프랑스 연극의 긍지이자 자부심이다. 심지어 프랑스어는 '몰리에르의 언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생전에 그는 문제적 작가로 불리며 끊임없이 비판받았다. 인간의 본성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했기 때문이다.


몰리에르는 법학도였지만, 대학 시절부터 연극에 열중했다. 작가이자 연출자로 또 연기자로 1인 3역을 하며 1644년 첫 공연을 했지만, 결과는 대실패. 큰 빚을 졌다. 이후 남프랑스 지방을 돌며 공연하다가 13년 만에 파리로 돌아왔고, 루이 14세 앞에서 공연한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파리에서 발판을 굳혀갔다. 특히 1662년에 선보인 <아내들의 학교>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경건하지 않은 자, 신앙이 없는 자, 풍습을 교란하는 자’라는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교회로부터 끊임없이 탄압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전노>를 비롯한 30여 편의 작품을 계속해서 무대에 올리면서 연기를 이어갔다. 마지막 작품인 <상상으로 앓는 사나이>를 공연하던 중 무대에서 쓰러진 몰리에르는 그날 밤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몰리에르는 교회 묘지에 묻힐 수 없었다. 교회는 그가 배우직을 포기하고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할 것을 요구했지만,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하지 못했던 것이다. 몰리에르의 아내 아르망드 베자르는 루이 14세에게 남편의 장례식을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고 간청했고, 파리의 생 조제프 예배당 공동묘지에 매장할 수 있었다. 이후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몰리에르는 재평가받았고, 그의 유해는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로 이장됐다.


몰리에르의 문제작 3편

이 책에 수록된 세 작품 <수전노> <남편들의 학교> <아내들의 학교>는 몰리에르식 희극의 특징을 보여주는 문제작으로 손꼽힌다. 몰리에르는 <수전노>에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살아 숨 쉬는 탐욕적인 인물을 만들어냈다. 주인공 아르파공에게 '돈'은 친구이자 목숨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다.


라 플레슈: 넌 아르파공 나리를 잘 몰라. 아르파공 나리는 이 세상 사람들 중 가장 인정머리가 없고, 그 누구보다도 독하고 빈틈없는 사람이야. 어떤 봉사를 하든 그 양반이 고마워하며 손에 있는 걸 내놓을 리는 없어. 칭찬이든 존경이든 말로 하는 친절이든, 심지어 우정이든 간에 원한다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지. 하지만 돈은 완전히 별개의 말씀이야. 그 양반이 건네는 친절과 애정의 표시보다 더 실속 없고 메마른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니까. 그 양반은 준다는 말을 너무 싫어해서 인사말도 〈당신에게 인사를 드린다〉가 아니라 〈당신에게 인사를 빌려 드린다〉라고 한단 말이야.

아르파공: 아아! 내 불쌍한 돈! 내 가엾은 돈! 나의 귀중한 벗아! 어떤 놈이 내게서 너를 앗아 갔구나. 너를 뺏기고 나니 나한테는 이제 버팀목도, 위안도, 기쁨도 다 없구나. 나한테는 모든 게 끝장났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할 게 없어. 너 없이는 살 수가 없단 말이다. 다 끝났어.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 나 죽는다. 나는 죽었다. 아니, 죽어서 벌써 땅에 묻힌 거야. 내 귀한 돈을 돌려주거나, 그 돈을 훔쳐 간 놈을 말해 주고 나를 다시 소생시켜 줄 사람 어디 없소?


자식들보다 돈이 중요던 아르파공은 아들과 딸까지 돈 많은 과부와 홀아비와 결혼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아들과 딸의 연인들에 대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반전을 거듭하며 재미를 선사한다.


<남편들의 학교>와 <아내들의 학교>는 1년 6개월이라는 시간 차이를 두고 공연된 작품으로 줄거리는 비슷하다. <아내들의 학교>에서 아르놀프는 '똑똑한 아내는 불륜을 저지를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어린 아녜스를 수도원에 가두고,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무구한 여인으로 키워서 결혼하려고 한다. <남편들의 학교>에서 스가나렐은 자신이 후견 하는 이저벨을 세상과 격리하고, 촌스러운 옷만 입히고, 남성과 대화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제일 확실한 방법은 그저 우리를 믿는 거랍니다. 우릴 구속하는 사람은 스스로 위험을 자처하는 거예요. 우리 여자들의 명예는 늘 자신을 지키려 하니까요. 우리를 죄로부터 막겠다고 무진 애를 쓰는 것은 우리에게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을 일깨우는 거나 매한가지죠. 나중에 행여 남편이 저를 의심이라도 하는 날에는 그이의 두려움을 사실로 확인해 주고픈 심보가 커질걸요.
- <남편들의 학교> 중에서


여성은 단지 복종을 위해서만 존재하오. 절대 권한은 수염이 난 남자 측에 있소. 비록 남자와 여자가 이 사회의 두 반쪽이긴 하지만 이 두 반쪽은 결코 동등하지 않아요. 한쪽은 우월하고 다른 쪽은 열등하오. 한쪽은 매사에 자기를 다스리는 다른 쪽에 복종해야 하오. 훈련받은 병사가 자신을 이끄는 상관에게 존경하고 복종을 바치듯이 하인이 자기 주인에게, 아이가 아버지에게, 가장 하급의 사제가 상급 성직자에게 하는 복종은 그 온순함이나 순종, 겸손함, 그리고 깊은 존경심 면에서 아내가 자신의 대장이자 영주요 주인인 남편에게 바쳐야 하는 복종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오.
- <아내들의 학교> 중에서


몰리에르는 등장인물을 통해 인간이 가진 허영심과 어리석음, 탐욕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뼈를 때리듯이 시대상을 풍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과 사회를 성찰하게 한다. 돈을 생명처럼 여기는 탐욕적인 아르파공이나 삐뚤어진 여성관, 결혼관을 가진 아르놀프와 스가나렐이 지금이라고 없을까. 나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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