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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만물을 소유하게 하는 비움의 철학

by 효문

독서모임에서 누군가 그랬다. '경전을 읽는 삶'을 살아보라고. 인류가 가진 지혜의 정수가 담긴 책, 아마도 경전일 것이다. 물론 어떤 경전은 지극히 함축적이고, 또 어떤 경전은 지극히 은유적이어서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도 많고,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야 한다. 그것도 곱씹어서.


'도덕경'을 저술한 노자는 기원전 6세기경, 공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노자는 이름이 아니라 ‘호칭’이다. '자(子)'는 '위대한 스승 혹은 현자'를 뜻하는 말이었으니 '노자'는 '늙은 스승'이다. 그의 이름은 ‘이이, 이담’이다. 참고로 공자의 이름은 공구, 맹자의 이름은 맹가. 공자는 공 씨 성을 가진 스승, 맹자는 맹 씨 성을 가진 스승을 뜻한다.

노자는 주나라에서 도서관 직원에 해당하는 ‘수장실 관리’라는 벼슬을 지낸 인물이다. 주나라 왕실이 갈수록 쇠미해지자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국경인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함곡관 영윤(재상)이었던 ‘희’가 노자에게 요청했다. “이제 당신께서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려 하시니, 간절히 청하건대 저를 위해 부디 한 권의 채를 써주시오.” 이에 노자가 하룻밤 사이에 저술한 책이 <도덕경>이다. 노자는 그렇게 이 책 한 권을 세상에 남겨 놓고 푸른 소를 타고서 사라졌다고 한다.


도덕경은 '총 81장, 5천 여자'로 구성된 책이다. 얇은 책이지만 20세기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동양 고전이자 가장 많은 주석이 달린 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짧고 함축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까? 해석도, 주석도 다양하다.

도덕경은 ‘도경’과 ‘덕경’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연히 도경이 앞, 덕경 뒤에 배치돼 있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덕경이 도경 보다 앞에 배치되어 있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라고 한다. 어쨌든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원리인 ‘도’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덕’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123페이지에서 도덕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결국 노자는 철학적 측면에서 도는 천지만물의 시초이자 모태이며, 음양의 대립과 통일을 만물 본질의 체현이고 물극필반은 만물 변화의 규율임을 천명하고 있다. 또 윤리적 측면에서 노자의 도는 소박함과 청정, 그리고 겸양, 무사, 유약, 담박 등 자연에 순응하는 덕성을 주창하였다. 아울러 정치적 측면에서는 대내적으로 무위정치를 강조하였고, 대외적으로 평화공존과 전쟁 및 폭력 반대를 지향하였다. 이렇게 하여 도덕경은 자연의 도로부터 출발하여 윤리적인 덕에 이르고 있으며, 다시 최종적으로 이상 정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도덕경은 삶의 철학서인 동시에 정치철학서라는 뜻이다. 그런데 도덕경을 읽는 사람에 따라서 병서가 되기도 하고, 마케팅 서적이 되기도 하고, 리더십 서적이 되기도 한다. 마치 물처럼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것처럼, 읽는 이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또 같은 사람이 읽어도 나이에 따라서, 감정에 따라서 다르게 읽힐지도 모르겠다.


27장. 행동에 능한 자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언변에 능한 자는 지적당할 만한 약점이 없다. 계산에 능한 자는 주판이 필요 없다. 문단속에 능한 자는 문을 잠그지 않아도 열리지 않는다. 매듭을 잘 짓는 자는 줄이 없어도 풀리지 않는다.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돕고 구하므로 버려지는 사람이 없고 또 항상 물건을 잘 이용하므로 버려지는 물건이 없다. 이것을 일러 숨겨놓은 지혜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한 자는 선하지 않은 자의 스승이며, 선하지 않은 자는 선한 사람의 거울이다.

67장.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 그것을 잘 지키고 보존한다. 첫째는 자애이고, 둘째는 검약이며, 셋째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자애가 있으므로 용기가 있을 수 있고, 검약하기 때문에 널리 베풀 수 있으며,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능히 만물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지금 사람들은 자애를 버리고 용감함을 추구하며, 검약을 버리고 크게 지출하고자 하고, 뒤에 있지 않으면서 앞에 나서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곧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자애로써 전쟁을 치르면 곧 승리할 수 있고, 또 그로써 지키면 견고하다. 하늘이 어떤 사람을 도우려 할 때에는 자애로써 그를 보위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몸속 어딘가에 새겨두고 싶은 구절들뿐이지만, 도덕경의 핵심 키워드를 몇 가지 꼽아보자면 첫 번째는 '도(道)'이다. 노자는 도를 우주 만물의 근원이자 질서의 원리로 보았다. 1장에서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는 말해질 수 있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도가 아니다. 명은 말해질 수 있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명이 아니다.'라고 했다.


두 번째는 '무위(無爲)'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다. 통제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고, 스스로 운행하고 활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37장에서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도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무위이지만 행하지 아니함이 없다’고 했다. 또 57장에서 '아무위이민자화 아호정이민자정 아무사이민자부 아무욕이민자박(我無爲 而民自化 我好靜 而民自正 我無事 而民自富 我無欲 而民自樸), 내가 무위를 행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순화되고 내가 고요하면 백성들은 스스로 바르게 된다. 내가 백성을 괴롭히지 않으면 백성들은 자연히 풍요로워지고 내가 욕심을 내지 않으면 백성들은 자연히 순박해진다'라고 했다.


세 번째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 '상선약수(上善若水)'이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8장에서 '상선약수 수선이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최고의 선, 가장 높은 덕성은 마치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할 뿐 다투지 않는다.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라고 했다.


네 번째는 '부쟁(不爭), 다투지 않음'이다. 노자는 싸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22장에서 '부유부쟁고천하막능여지쟁(不唯不爭故天下莫能與之爭) 성인은 명성에 집착하여 다투지 않는 까닭에 천하에 그와 다투는 것이 벗다'라고 했다. 이기려고 들면 상대가 생기지만, 경쟁심리를 내려놓으면 싸울 이유가 없어진다. 싸우지 않음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저자는 ‘상선약수, 천장지구, 공성신퇴, 소국과민’ 등 금언과 좌우명이 될만한 문장들을 읽는 즐거움 역시 독자의 몫'이라고 했다. 상선약수는 앞에서 얘기했고, 천장지구(天長地久)는 7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영화제목으로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천지는 장구하게 존재한다'. 뒤에 나오는 구절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천지가 그렇게 장구하게 존재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의 모든 운행과 존재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자기중심적 욕망에서 벗어날 때 장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성신퇴(功成身退)는 9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공성신퇴 천지도(功成身退 天之道) 공을 이루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소국과민(小國寡民)은 80장 첫 구절이다. '작은 나라에 백성의 수도 적다.' 노자는 지나친 욕심과 경쟁을 버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다투지 않는 작은 나라를 지향했다.


저자의 말처럼 '노자의 <도덕경>은 삶의 무게에 짓눌린 채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과연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지혜의 길라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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