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문 May 03. 2024

내 눈을 멀게 하는 것은?

호르몬과 편견

아이가 한두 살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딸을 데리고 안과 검진을 받아볼 것'을 권했다. 아이의 시선방향이 약간 어색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엄마인 내 눈에는 한 순간도 아이가 이상해 보인 적이 없었다. 마냥 예쁘기만 했다. 친구가 의료계 종사자도 아니었기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갔다가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보고서야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사진 속 아이의 눈동자 방향이 분명 어색해 보였다. 부랴부랴 안과를 찾았고, 진단 결과는 조금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눈근육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서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다행히 자라면서 아이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지만, 지금도 가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맞을까?' 생각해 보게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믿는다. 그런데 눈 자체가 썩 믿을 만한 게 못된다. 내 자식을 마냥 예쁘게 생각했던 그 마음 때문에 아이의 시선 방향이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처럼, 사랑의 콩깍지가 씌면 연인이 문어다리 작업을 펼치고 있어도 보지 못한다. '도파민, 엔도르핀, 페닐에틸아민' 등의 호르몬 분비가 늘어나는 시기에는 연인의 발뒤꿈치마저도 마냥 예뻐 보인다.  


어디 그뿐일까? 당장 눈앞의 이익에 때문에 멀리 내다보지 못할 때도 있고, 네 편 내편 편을 가르느라 전체를 보지 못할 때도 있다. 또 자존심을 앞세운 탓에 자신의 허물이나 부족함을 보지 못할 때도 있다. 

 

코치로부터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골프 기초 중의 기초는 스윙할 때 머리를 들지 않는 겁니다. 근데 제가 연습 스윙을 하고 나면 그때마다 코치는 머리 들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는 거예요. 처음엔 알겠다고 했는데 계속 같은 말을 들으니 저도 짜증이 나서 "나, 머리 안 들었어요!"라고 쏘아붙였죠. 그랬더니 코치가 제게 동영상을 보여주더군요. 제가 연습 스윙하는 걸 쭉 찍은 건데, 그걸 보니 '꼼짝 마라'였습니다. 머리가 들리는 건 물론이고 몸도 벌떡벌떡 일어나고 있었어요. 제 자세가 어떤지를 알고 난 다음부턴 머리를 들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됐습니다. 어떤 걸 바꾸거나 개선할 때의 시작은 자각입니다. 자신이 어떻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죠.
                                                         - 최인아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중에서


멀쩡한 시력을 가지고 있어도 특정 호르몬이 마구 분비되면 또 편견이나 고정관념, 사심을 갖고 있으면 제대로 보지 못한다. 물론 호르몬의 작용이 없어도, 특별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어도 제대로 보지 못할 때도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나 후배, 혹은 이웃을 '참 괞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나름 그에게 잘해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뒤통수를 맞게 될 때가 있다. 상대방이 자신을 잘 포장해서 잘못 보도록 유도했기 때문에 잘못 볼 수밖에 없다.  


뭔가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눈은 자신에게 전혀 엉뚱한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확하게는 뇌가 그렇게 인지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자기 눈에게 속지 않고,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눈은 믿을만한 게 못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자신과 상대방을 그리고 세상을 바르게 보고 있는지 자주 점검해야 한다.

 

[매일 자기 인터뷰]

https://www.instagram.com/hyomoon20?igsh=NXd6eWZvZndkMzc=  


이전 11화 자신의 죽음, 결정할 권리가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