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지 않으면 여전히 어려운 수직문화
1년 정도 꾸준히 개인 면담을 통역해 온 업체가 있었다.
본사가 일본이었으나 미국 회사로 인수 합병되며 아시아 담당 지사장은 일본인에서 네덜란드인 루카스(가명)로 바뀌었다.
미국인인가 착각할 정도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루카스는 홍콩에 거주하면서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직원들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한국 직원의 개별 면담을 진행하고 나는 통역을 지원했다.
회사의 큰 변화에 불안과 기대를 함께 하는 직원들과의 개인 면담은 상당히 중요하다.
루카스는 직원 개개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면담을 통해서 그들의 불안함을 해소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정말 놀라웠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은 표정으로 회의실에 들어오는 직원도 면담이 이어지고 질문을 거듭하며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루카스의 질문력은 정말 대단했다.
개별 면담을 마치고 어떻게 그렇게 한국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질문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루카스의 질문력은 바로 문화의 이해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한국은 고맥락 문화(high context culture)라 질문을 잘해야 대화를 잘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했다.
루카스는 놀라울 만큼 문화에 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시아 지사장을 맡으며 아시아 문화 이해에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럽인이 한국인의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을 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지사장으로서 그 지역 이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루카스는 정말 멋진 리더였다.
개별 면담을 통해서 회사 내 오래 근무한 기존 직원과 인수 합병 이후에 새로 영입된 한국 지역 부장과의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루카스는 그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주었다.
질문을 통해서 그들이 느끼는 부당함과 새로운 관리자의 태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들이 느낀 억울함에 대하여 하소연할 수 있도록 대화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인터뷰 후 루카스의 조언은 아주 명확하고 직접적이었다.
여러분은 성인입니다. 성인이면 충분히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다음번에는 좋은 소식을 듣기를 바랍니다.
‘성인들의 대화’라는 말에 마치 우리가 제대로 대화를 하지 못하는 아이 같다는 의미로 들려서 통역을 하면서도 좀 부끄러웠다.
과연 네덜란드인 루카스가 기대하는 성인들의 대화는 어떤 의미일까?
네덜란드인은 대화 문화는 상당히 직접적이다.
갈등을 대화로 풀고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네덜란드의 수평적인 문화에서는 성인들의 대화와 소통은 갈등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루카스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충분히 보면서 자랐을 것이고 대화와 소통에 대한 긍정적 경험이 풍부할 것이다.
아시아의 문화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지식을 보유한 루카스는 많은 질문으로 아시아인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끌어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대화와 소통이라는 좋은 방법을 조언한다.
갈등과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 수평적인 관계에서는 상당히 좋은 접근법이다.
수직적인 문화에서 과연 가능할까? 과연 아랫사람이 상사와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여 성공한 사례를 우리는 보아 왔는가?
한국 직원들은 루카스의 조언대로 소통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자 가능한 작은 시도들을 하기 시작했다.
점심을 같이 먹기 위해 기다린다거나, 웃으며 아침에 인사를 건 낸다거나 등 여러 가지 상사에게 할 수 있는 시도들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제대로 된 대화까지 이르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고 새로 온 상사에 대한 결국 서운함과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부하직원이 상사와 대화로 갈등을 풀어보자고 접근한다는 것은 뭔가 큰 도전처럼 느껴진다.
상사의 의견에 하나도 동의할 수 없고 나랑은 완전히 다른 생각이라면 우리가 보여주는 상사에 대한 예절은 그냥 듣고 다름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다.
함부로 반대의 의견이나 문제점을 제시하여 상사나 연장자의 체면을 구기기라도 한다면 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 상사보다 내가 더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갈등을 풀고자 달려들다 더 큰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참 많이도 경험했다.
대화의 창구가 부족한 회사에서 유일한 대화는 일을 마치고 하는 회식 때뿐이다.
그마저도 혹 꼰대라 불리는 상사가 참여하면 일의 연장이다.
회사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그 사람을 내 금쪽같은 시간 1분도 나누어 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결국 회사 내 갈등 해결은 루카스가 생각하는 성인의 대화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루카스는 정말 인내심 있게 질문하고 그들의 힘든 사정과 갈등에 대한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고자 노력했다.
분기별로 한국을 방문해 면담을 할 때마다 그 갈등은 나아지기보다는 더욱더 깊어져 갔다.
이런 인터뷰를 마친 직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나의 어려움에 대해 충분히 어필했으니 회사 차원에서 뭔가 갈등 해결을 위해 애를 써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회사 차원에서 날을 잡아 워크숍을 준비하거나 회식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이벤트가 마련되기를 바라게 된다.
이런 개별 면담 후 상사와의 갈등은 회사 차원에서 혹은 상사가 먼저 손을 내미는 방식의 하향식(top down) 시도를 기대하게 된다.
회사 차원에서 뭔가 해결책 마련을 기대한 직원은 아무런 조치가 없자 실망하기 시작한다.
새로 부임한 상사와의 갈등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직원은 두 가지로 나뉜다.
상사가 나가기를 기대할 수 없다며 내가 나가야겠다는 생각.
열정을 다해 일하던 직원도 상사와의 갈등을 견뎌내며 열정을 퍼붓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오랫동안 일을 하던 직원들을 퇴사를 꿈꾸게 된다.
회사가 인수합병을 하면 조직의 관리자를 새롭게 임명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의 변화와 혁신을 꿈꾸는 새로 부임한 관리자는 대부분 야심 차다.
새로운 관리자는 오랫동안 존재하던 업무 방식에 혁신을 시도하고 더 큰 성과를 보여 주기 위해 아랫사람을 더욱 푸시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기존의 업무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그들이 이루어낸 업적을 무시한다면 한마디로 보석 같은 직원들이 퇴사하는 결과를 가져오거나 상사임에도 왕따를 당하게 된다.
기존 업무 문화를 무시한 혁신은 직원들의 텃새를 더욱 부추긴다.
그렇게 루카스가 기대한 성인간의 대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루키스는 한국의 문화에 대한 많은 지식을 보유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내가 가진 문화적 배경은 상대의 행동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루카스는 유럽인으로서 한국의 정서에 맞는 접근법을 시도했지만 이후 해결 방안에 있어서는 여전히
네덜란드 식 수평 문화를 기반으로 해석해버렸다.
실질적인 한국의 업무 문화에 대한 상황을 진정으로 공감하지는 못했다.
영어에서 공감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sympathy와 empathy 두 가지가 나온다.
하지만 영어에서 sympathy와 empathy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좀 더 깊이 있게 따져 본다면 sympathy는 연민이나 동정심을 가지는 것이다.
루카스의 조언은 “너 힘들었구나? 어쩌냐? 그래도 해결할 방법이 있을 거야! 괜찮아! 할 수 있어. 한번 대화해봐”라는 방식의 sympathy에 가깝다.
하지만 충분히 공감(empathy) 하지 못한 루카스는 한국의 수직적 조직 문화에 뛰어들어 함께 해결책을 고민해보지는 않았다.
크리스토퍼 얼리(Christopher Earley)가 정의하는 문화 지능(CI)에는 세 가지 구성 요소를 보자.
인지적 요소(head)
신체적 요소(body)
감정적 요소(Heart)
문화를 머리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 함에도 불구하고
감정과 정서적인 (Heart)가 만족되지 않으면
결국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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