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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Sep 27. 2021

와아! 집이 쿵쿵 울리는구나

집을 산 처음부터 '집 열쇠를 받기 전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해놔야지' 했다. 일단 소유권이 넘어오면, 살고 있는 월세집과 새로 사게 될 집의 이자까지 이중으로 돈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뭐든 '당겨서' 결정해놓고, '후다닥' 인테리어를 마쳐 '빨리' 입주해야지 싶어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마음만 급할 뿐,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1. 우린 빌더(건설사)와 계약하지 않기로 했다. 회의적이었다. 물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몇 건설사를 연락해봤지만, 우리가 지불할 돈에 비해 그들이 주는 견적서는 지나치게 단출했다. 두루뭉술하게 적힌 작업 내역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 건설사에 10년 넘게 일하면서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물론 믿을만한 건설사를 알고 있다면 두장짜리 견적서로도 상관없겠지만, 우린 아직 호주에 '안다'라고 부를만한 건설사가 없었다. 홀랑하게 채워진 건설사들의 견적서 행간에는 거품이 보글대는 것처럼 보였다.


2. 건설사 없이 레노베이션을 진행하려면 직접 타일, 배관, 벽, 페인트, 전기, 창문, 바닥, 에어컨 업체들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서 작업을 조율해야 한다. 회사에 함께 일하는 업체들과 구글에서 찾아낸 업체들에 쭉 한번 전화를 돌렸다. 혹시나 '어림잡아 만든' 가견적이라도 줄까 싶어, 공종별로 서너 페이지 분량의 견적 요청서도 만들었다. 두루뭉술하게 완성된 평면도에 치수를 넣었고, 섹션별로 번호를 매겨 참조할만한 이미지들을 넣었다.


하지만 견적 요청서를 보낼 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았다.

"우린 실측이 필요합니다." - 30년이나 된 늙은 주택이 안고 있을 어떠한 위험도 예측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업체들이 있었다. 집을 어떻게 관리해왔느냐에 따라서 큰 공사가 될 수도, 생각보다 쉬운 작업이 될 수도 있다고.

별 수 없이 공종별로 두 세 업체씩 전화해 30분에서 1시간 단위로 현장 방문을 요청해 뒀다. 집 열쇠만 받으면 '준- 비!, 시-, 작!'하고 달려갈 참이었다.


3. 'Owner builder(오너 빌더)'도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됐다. 레노베이션을 진행할 때 licensed builder(허가된 건축업자) 없이 일을 하려면 집주인이 모든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 한다. 알맞은 보험도 들고, 작업자들과 계약할 때 금액에 따라 허가된 작업자를 써야만 할 수도 있다. 건설 안전에 대한 기본 내용, 보험 등의 요구사항, 작업자들과 문제 발생 시 대처 방법 등에 대해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호주 정부가 제시한 Owner builder(오너 빌더) 자격을 우선 충족했다.


이 정도가 우리가 미리 당기고 당겨 선행으로 마쳐놓을 수 있는 작업의 전부였다.


집 계약서를 쓴 후 소유권이 넘어오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까마득하게만 느껴졌었다. 근데 또 은행과 변호사, 부동산 사이를 바쁘게 조율하다 보니 어느새 지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60일 후, 모노폴리와 와인 한 병, 그리고 초콜릿이 든 상자와 함께 열쇠 꾸러미를 전달받았다.


세입자가 나가 텅 빈 집에 들어가 남편과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쿵쿵 뛰어보는'것이었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집 레노베이션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은 받은 질문이었다.

"집에서 뛰었을 때 텅텅 울리는 것 같아? 아니면 단단한 거 같아?"

"아..... 단단한.... 것 같은데요?"

"확실해?"

아니, 확실할 리 없었다. 우리가 집을 보러 다닐 때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은 문제였으니까.


이 질문은 사실 건설 방식 중에 '벽식구조'를 택했는지, '라멘구조'를 택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우리나라 집들은 대체로 철골 구조물에 거푸집을 대고 콘크리트를 부어 완성하는 벽식구조를 택하고 있다. 훨씬 안정감이 드는 탄탄한 느낌이지만, 사실 유지보수를 하기에는 쉽지 않다. 파이프들이나 유틸리티 선들이 콘크리트 구조물에 매립되어 있어 보수를 하려면 콘크리트를 다 벗겨내고 수리해야 한다. 구조를 변경하려 해도 공사가 커진다. 화장실 정화조 배관은 옮기려면 원하는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아예 이동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도록 높이차를 줘야 하는데(free drain), 그 각도를 만들기 어려운 경우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면적을 훨씬 더 깊게 파내야 할 수도 있다고.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레노베이션을 준비하던 시누이네는 집 중앙에 위치한 화장실을 옮기는데 실패했다. 시누이네가 살고 있는 집이 벽식구조이다. 견적을 주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과연 그 큰돈을 들여 번거로운 작업을 할 만큼의 효과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반면 호주 많은 집들이 택하고 있는 '라멘 구조'의 경우 골격만 나무로 프레임을 짜두고 중간은 비워버린다.


이 위에 플라스터를 덧대고, 페인트를 칠하는 게 전부다. 외벽은 Weatherboard(비막이 판자)나 벽돌로 마감을 하지만, 우리나라의 벽돌벽처럼 하중을 받는 구조가 아니다. 장식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의 한 겹짜리 벽돌 마감이 붙는다. 바닥도 마찬가지다. 나무 프레임을 덧대고, 그 위에 나무판자를 얹어 고정하고 마감한다. 우리에겐 낯설고 허술해 보이는 건축방식임에 분명하다. 우리 집 구조 사진을 본 한 친구는 "오함마로 확 찍으면 무너지겠다"라고 표현했다. 딱 그 정도의 첫인상이었다.


호주에서 건설방식으로 라멘구조와 나무 프레임을 선택한 이유는 sustainable(지속 가능하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의아했다. 나부터도 나무 프레임의 첫인상은 모닥불을 피울 때나 쓰는 장작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저 구조물이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 불이라도 나면 홀랑 타버리는 거 아니야?" 했다. 하지만 나무 구조물은 우리가 생각보다 화제에 오래 잘 견딘다고 한다. Charring rate (화기로부터 노출되었을 때, 시간당 손실되는 정도)가 0.7mm/min로 그렇게 우습게 타들어가지는 않는다고 한다. 호주 건축법에서는 사용하는 자재의 FRL(Fire Resistance Level, 내화성 정도)를 규정해두고 있는데,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건축물은  FRL이 60/60/60이다. 해석하자면 불이나도 최소 60분까지는 계산된 하중을 바치고, 무너지거나 화기, 열을 전달하지 않고 버텨야 한다는 뜻이다. 나무 프레임은 이 기준을 거뜬히 넘는다고 한다. 신기하기도 했고, 여전히 진짠가? 싶어 반신반의했다.

호주 건축법이 설명한 또 다른 이유는 화재나 붕괴 등 파손이 생겼을 때, 다시 재건하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한다.

나무를 잘라내면 환경을 파괴하는 것 아니냐는 공격적인 질문에도 성실히 답했다. "물론 나무를 잘라낸 만큼 다시 심어야 하지만, 콘크리트 폐기물처럼 폐자재를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환경친화적인 방법이다."가 그들의 결론이다.


우리 집도 '라멘구조'였다. 집에 가서 뛰자마자 바닥이 텅텅 울렸다.

함께 간 아이와 강아지까지 함께 신나서 뛰어댔다.

"우와! 우리 집이 쿵쿵! 울리는구나!"

집이 울리는 걸 확인하자마자, 일단 기뻤다. 우리가 원하는 구조 변경을 하기 위해 공사기간도, 공사 비용도 일단 확실히 줄었다. 이 울림이 나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조금도 알지 못했지만, 당장 눈에 보이던 걱정거리가 사라졌다.


그때부터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아침 10시, 집 열쇠를 열고 들어간 순간부터 오후 4시까지 한 번에 많게는 두 팀까지 30분 단위로 업체들이 밀려들어왔다. 시장판 같았다. 한 손에 아이를 들쳐 매고 내가 한 팀, 남편이 한 팀씩 붙들고 우리가 두 달 동안 고심해 결정한 인테리어 콘셉트들을 설명했다.

처음 인테리어를 해보는 우리의 설명은 어설펐고, 역시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한 시간 텀을 두고 예약을 잡은 두 창문 업체가 30분 늦게 오고 30분 빨리 도착하면서 경쟁사들이 어색하게 현장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열 팀쯤 현장을 방문하자 어느 업체가 어느 업체인지 헷갈렸다. 견적을 독촉해야 하는데, 누가 왔다간 업체인지 다음 주에 올 업체인지 혼돈스러웠다. 


일을 쉬는 매주 수요일. 업체 미팅이 모두 끝나는 4시 반 5시쯤이 되어 집에 도착하면 상온에 하루 종일 내놓은 야채처럼 지쳤다. 시들시들해졌다. 아이에 강아지까지 대동해, 우리가 원하는 집의 모양을 설명하는 일은 목이 쉴 정도로 바쁘고 힘든 일이었다. 확실한 도면과 스펙이 찍혀 나오던 회사의 견적서들이 눈물 나게 그리웠다.


첫 업체 선정까지 무려 3주나 시간이 걸렸다. 


일단 가격이 너무 천차만별이어서 한두 업체만으로는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창문을 예로 들면, 똑같은 창문을 똑같이 실측해 갔는데 설치비를 제외한 물건값만 네 배 차이가 났다. 마치 피겨스케이팅 심사라도 하듯이, 젤 싼 업체와 젤 비싼 업체를 제외하고 나머지 견적에서 평균값을 구해야 대략적인 공사 금액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다.


시간을 조율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리는 마음이 급한데, 견적서 하나를 받는데도 일주일씩은 걸렸다. 가끔은 리마인드에 리마인드 메일을 보내면서 '혹시 우리 집 잊은 거 아니지?' 해야만 했다.

물론 행동이 잿 빠른 업체들도 있었다. 게 중 한 업체는 서두르는 우리보다도 속도가 빨랐다. 구조변경을 하는데, 구조 계산도 허가도 필요 없다고 말했다. 일단 하중을 받는 내력벽에 '의도적으로' 흠집을 하나 큼직하게 내놓은 다음, 카운실에 '응급 구조 변경 요청'을 내면 된다고 했다. 내력벽인지 몰랐는데 아뿔싸! 깨보니 내력벽이었다고 우기겠다는 심산이었다. 위험은 본인들이 모두 부담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일이 벌어져 버리면, 안전에 이상이 생겼을지도 모름을 전제로 한다. 곧바로 카운실 구조 담당자가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하루 이틀 내로 서둘러 허가를 내준다고. 하마터면 솔깃해서 내일 당장 망치질을 해버리자고 말할 뻔했다. 집에 돌아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릴 때까지 얼렁뚱땅 빨리 해치우고 싶은 유혹을 꾹꾹 눌러대느라 숨이 찼다.


열쇠를 받고 3주 반이나 지나서야 첫 공사의 삽을 떴다. 일단 구조계산과 별도의 허가가 필요 없는 욕실 인테리어부터 한 업체에서 뚝- 떼 가서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업체는 한국인 사장님이었다. 말주변이 좋은 우리의 '욕실 사장님'은 전체 공사규모를 천천히 듣더니 허가가 필요 없는 철거작업(demolition)까지 추가로 맡아주기로 했다. 주로 주방 장, 세탁실 케비넷, 그리고 바닥에 깔린 카펫을 제거하는 작업이었다. 남편도 나도 출근하는 날이어서 첫 공사 날에는 가보지 못했다. 대신, 이틀 동안 철거작업이 진행되는 내내 실시간으로 '어디까지 일했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


그 주 주말. 그렇게 열쇠를 받고 한 달 만에 드디어 공사가 시작된 집을 찾았다. 그 한 달 내내 주말과 일을 쉬는 날마다 견적을 받기 위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공간이 익숙해진 덕분에 철거가 시작되자, 낯섦이 도드라졌다. 

'아 드디어 무언가 시작되었구나'

뿌듯하기도 했고, 공사판이 되어버린 집이 좀 심란하기도 했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 사진을 찍으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슬 둘러보고 집을 떠나려던 순간, 주방 장이 떨어져 나간 벽이 좀 이상했다.

허전했다. 있어야 될 것들이 없는 것 같아 계속 눈에 밟혔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벽돌 사이에 접합시켜 놓은 시멘트가 낡아 떨어지면서 틈이 생겼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집 바깥이 그대로 보였다.

'응? 원래 플라스터를 떼냈다고 집에서 바깥이 바로 보이나?'

뭔가 빠졌다. 분명 이상하다.

그날도 피곤에 짓이겨진 풀처럼 멍해진 머리로 집 안에서 밖이 내보이는 구멍을 한참을 들여다봤다. 망치라도 한대 두드려 맞은 것처럼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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