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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Sep 18. 2021

물론 오판이었다.

구매의향서 (Offer)가 수락됐다. 앞서 긴장감 넘치던 경매들에 비하면 꽤 시시하게 집을 샀고, 그래서 좀 실감 나지 않았다. 우리에겐 60일이 주어졌다고 했다. 판매자는 지금 살고 있는 세입자의 이사 일정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지만, 60일 만에 집 매매를 완료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집은 1989년에 지어졌다.

대지는 309m2. (93평 정도)

단층이 같은 번지수를 공유하는 뒷집이 하나 더 있다.

매매 기록도 거의 없었다. 집이 지어지고 처음 1989년에 매매된 이후로 거래가 없었다. 기록을 지운 건지, 정말 지어진 이후로 단 한 번도 매매가 없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주어진 평면도, 그리고 주소만 가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위치 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집에 대한 정보는 이 정도뿐이었다. 그리고 인테리어를 실제로 시작하기 전까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집에 대해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열쇠를 받기 전까지 남편과 '이 집에 살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일단 좀 널찍한 거실이 필요했다. 남편이 결혼 전 가지고 있던 가구들 중에는 2인 가구 답지 않은 큰 가구들이 좀 있었다. 예를 들면 6인용 식탁, 65인치 티브이, 그리고 1500리터 냉장고. 20평을 간신히 넘길까 말까 한 아파트에 한두 개 큰 살림들을 구겨 넣자 공간이 부족했다. 거기다가 고맙게도 시누이에게 받아 쓴 덩치 큰 아이 장난감들까지.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보행기를 잡고 돌아다닐 무렵, 세네 걸음을 뗄 때마다 짐이나 벽에 부딪혀 매번 아이의 걸음마 방향을 돌려줘야 했다.


아이가 놀만한 널찍한 공간이 확보되면 정말 좋겠다고 내내 생각했다.


하지만 새 집 거실은 좁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넓지도 않았다. 화장실이 집 중간에 위치하고, 주방을 가로지르는 벽이 있어 공간이 제한됐다. 각각의 공간은 꽤 넓은 편이었지만, 마음이 탁 트이는 널찍한 장소는 집안 어디에도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리에겐 첫 번째였다.


1. 차고를 불법 개조한다?

: 호주 집들을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재밌는 점 하나가 생각보다 차고를 방으로 많이 바꿔놨다는 사실이었다. 집 앞에 주차를 하면 되니, 굳이 지붕이 달린 주차장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게 분명하다. 차고를 방으로 바꾼 집도, 거실로 바꾼 집도 더러 있었다.

차고를 거실로 바꾸면서 거실이 있던 자리는 엄청나게 큰 주방이 됐다. 큼직한 주방이 두개나 있는 인상적인 집이었다.

우리도 차고를 고쳐 거실로 활용하는 방안을 염두에 뒀다.

문제는 이 집들이 건축법의 테두리를 아슬아슬하게 넘나 든다는 점이다. 일단 집마다 최소 하나의 주차공간(off street parking)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위반한다. 그리고 호주 건축법 (BCA, Building Code of Australia)은 건축물을 용도에 따라 총 10가지로 구분하고 각각에 다른 규정들을 적용한다. 만약 비 거주를 전제로 하는 주차장(Class 10a)을 거실, 방 등의 거주구역(Class 1a)으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바꿔야만 한다. 최소 높이도 다르고, 창도 새로 내야 하고, 외벽에 사용하는 자재의 소방등급 등이 달라지면서 보강공사도 꼭 필요하다.


'내 집 내가 고치는데, 건축법 좀 어기면 어때!' 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불법 공사를 많이 하기도 한다.


문제는 사고가 났을 때 발생한다.

화제 등 큰 사고가 났을 때, 불법 개조 부분이 문제가 된다면 보험을 청구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건축법을 따르지 않은 부분이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험 회사와 맞서는 건 살면서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 중 하나다. 그들은 너무 똑똑하다.


우린 그저 좀 널찍한 공간을 원했을 뿐인데, 너무 많은 것들까지 상상하게 돼버렸다. '아. 불이 나서 집이 전소됐을 때, 보험금을 못 받을 수도 있겠구나. 아... 집이 전소되는 상황까지 생각해야 하는구나.. 안 되겠다.'  


마음 편하기 위해 원래부터 보기에 없던 답 인척 했다. '니야. 원래부터 큼직한 차고에다가 짐도 좀 넣고, 어? 아기 자전거도 넣고, 어? 거 좀 유모차도 넣고, 하려고 했었어' 해버렸다.


2. 2층을 중측 하면 어떨까?

2층 중측을 전문으로 하는 건설사 몇 군데에 전화해 물었다.

'2층에 안방과 화장실 정도를 올려 보내고 원래 그 공간을 활용해서 거실로 써보려고!'

대부분의 업체들은 집 주소나 사진을 보기도 전에 기본 견적 3억을 제시했다. 게다가 그건 시작가였다. 화장실을 올리느냐, 작은 거실을 2층에도 두느냐, 하는 옵션 하나하나마다 추가 견적이 무서운 금액으로 따라붙었다.

응, 그 돈이면 새로 지어야지. 아무렴.


3. 그냥 중앙에 있는 화장실을 좀 옮기고 벽을 트면 거실을 넓게 쓸 수 있지 않을까?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이었다. 하지만 아마추어의 상상력은 몇 걸음 가지도 않아 그 바닥이 드러났다. 그 한계가 마치 가구로 가득 차 있는 좁은 집에서 하는 우리 아이 걸음마 같았다. 세 걸음마다 부딪혀 방향을 돌려야만 했다.


장실을 집 가운데서 들어내면, 떼낸 그 화장실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랐다.

이쪽저쪽 벽을 밀어도 보고 붙여도 봤다.

세탁실을 차고로 빼기도 했고, 그렇지 않아도 좁은 뒷마당에 쉘터를 짓는 상상까지 했다.


어떻게 옮기고 나면 터무니없이 넓은 운동장 같은 거실만 덩그러니 남고, 다닥다닥 방들이 붙어버렸다.

또다시 옮기면 '그래서 원래 디자인과 다른 게 뭐야?' 싶은 원점으로 돌아오기도 했고,

또 이리저리 옮기다 보면, 재건축 수준의 큰 공사가 되기도 했다.

'역시 디자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지난 회사를 다니면서 한 달 속성 코스로 배운 Revit을 켜서 구조를 무한히 옮기면서 부족한 상상력을 총동원했다. 그 옛날 인적성 시험 이후로 처음으로 내 모자란 공간 지각 능력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두 달을 고민해 만든 우리의 구상은 대충 이랬다.



내 허접한 Revit 실력만큼이나 허접해 보이는 결과물이지만, 일단 원하는 건 모두 이뤘다.

- 꽤 넓은 거실과

- 독립된 남편의 홈 오피스

- 아기 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욕실

- 그러면서도 이동을 최소화한 디자인


꽤 그럴싸하다고 생각했고, 크지 않은 공사라고 판단했었다. 물론 오판이었다.

이전 15화 나도 나름 계획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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