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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Oct 03. 2021

그런데 날씨 때문에 못살겠어요.

나는 확신한다. 멜버른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는 결코 될 수 없다. 문화, 스포츠, 인프라, 공항과의 거리, 녹지 비율, 교통, 행복지수, 교육. 그 무슨 조건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안된다. 그렇게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살기 좋다고 말하기에는 이곳의 날씨는 너무 힘들다. 사람을 너무 괴롭게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불평을 해보자면, 일단 너무나 변화무쌍하다. 춥다, 덥다, 바람 불다, 폭우가 오다, 금방 우박이 내린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찢어질 듯 쨍- 한 날씨가 다시 펼쳐진다. 이곳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멜버른은 하루 안에 사계절이 다 있어'하는데 그 말이 딱 맞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정말 짧은 시간 안에 모두 느낄 수 있다.

어느 정도냐면, 불과 차로 10분 거리에는 우박이 떨어지는데 내가 있는 곳은 해가 쨍쨍하기도 다. 가끔은 별생각 없이 나들이를 나섰는데, '재난 정보 어플'에는 바람이 너무 불어 몇몇 지역에 나무가 꺾였다고 한다. 정말 나들이 길 곳곳에 집채만 한 나무들이 도로에 누웠다. 우리나라였다면 울타리를 치고, 보호받을 법한 크기였다. 차를 돌려야만 했다.


날씨의 변덕이 가장 극심한 건, 바로 겨울이다.

멜버른의 겨울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서늘함이 잔뜩 묻어있다.


지표로만 본 멜버른은 연중 온화한 날씨가 맞다. 한 겨울에도 온도가 영상 10도 이하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일부 산간지역을 제외하고는 눈도 오지 않고, 사계절 내내 색이 다른 꽃이 핀다. 영하 15도쯤은 우습게 떨어지는 우리나라의 겨울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따뜻해야 하는 게 맞다. 분명 숫자로만 보면 그렇다.


그런데 너무나 지긋지긋하고 맵고 끈질기게 춥다. 폭우가 쏟아지고 나면 한기가 도시 전체를 에워싸고, 바람은 또 어찌나 거칠게 불어대는지. 패딩 중에서도 가장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어도 오들오들 떨리는 날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불규칙적으로 자주 찾아온다. 손이 어는 것 같은 추위가 아니라, 비바람에 시달리는 느낌의 추위가 겨울 내내 계속된다.


실제로 온전히 날씨 때문에 멜버른을 포기하고 떠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입을 모아

"멜버른은 정말 좋은 도시죠. 시드니 보다 전 더 좋은 거 같아요. 그런데 날씨 때문에 못살겠어요." 했다.

피하지 않고 이곳에서 온전히 멜버른의 날씨를 견뎌내고 있는 이들조차도 '언젠간 따스한 퀸즈랜드로 가서 살고야 말겠다'라고 겨울 내내 입버릇처럼 말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곳의 건물들은 한 번도 겨울을 겪어본 적 없는 것처럼 지어졌다.

바로 우리가 사서 지금 막 레노베이션을 시작한 '우리 집'처럼.


주방 캐비닛을 뜯어낸 자리가 그토록 허전했던 이유는 아주 조금의 단열재도 없었기 때문이다. 라멘구조든, 벽식 구조든 상관없이 마감 전에 단열재를 넣어 열이 빠져나가는 걸 막아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을 몽땅 생략했다. 집 벽을 뜯어보기 전까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던 문제였다.

[벽돌벽 / 나무 기둥 / 플라스터]가 집 벽의 전부였다. 외풍을 막을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낡아 벌어진 나무 창틀을 통해서도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데, 단열재 한 겹 없는 얇은 벽은 마음까지 시리게 했다. 파카 잠바를 입고 집 안에 앉아 있어도 '소름 끼치게 추운' 느낌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


물론 살면서 히터를 아끼지 않고 틀면 추위를 밀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또 집안에서도 옷을 입고 신발까지 신고 생활한다면 춥지만 겨울을 견뎌내기에는 문제가 없겠지. 호주인들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고, 이 집의 전 주인과 세입자들도 그렇게 겨울을 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싫었다. 내내 기계를 돌리지 않아도 온기를 품고 있는 집안이 그리웠다. 우리나라처럼 온돌이 지글지글 끓는 느낌까지는 아니어도 푸근한 느낌이 금세 퍼지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살아가는 집은 그랬으면 싶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벽돌로 된 외벽과 플라스터 사이에 촘촘히 단열재를 넣으면 된다. 보통 나무 프레임 사이를 유리섬유(Glass wool)로 채워 넣는다. 호주 대부분의 신축 건물들은 이 과정을 거쳐 라멘 구조로 지어졌음에도 외풍이 차단된다.

단지 우리가 마주한 어려움은 기존에 지어져 있는 집(Existing house)에 단열재를 추가하는 작업을 해주는 업체가 없다는 점이었다. 멀쩡히 잘 붙어있는 벽을 모조리 다 뜯어서 새로 벽 작업을 해야 한다. 돈은 전체 예산에 15%에 달할 정도로 많이 드는데, 막상 해놨을 때 비포 에프터가 겉으로 도드라지지 않는다. 작업량은 많고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만족감을 주긴 어려운 작업이 분명했다. 업체들이 기피했다.

보온재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플라스터 작업(내부 벽 마감)을 함께하지 않았다. 혹은 신축에 한해서만 작업을 진행한다고 선을 그었다. 따로따로 업체들을 계약하면 작업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미 계약한 업체 수만 열 군데가 넘는데, 조율해야 하는 회사의 수가 최소 두 군데 이상 늘어날 위기에 처했다.


그즈음 우리는 구세주 '벽 아저씨' 닐(Neal)을 만났다. 조금은 KFC 아저씨처럼 생긴 장난꾸러기 닐은 우리 집이 지어진 1990년 즈음부터 '벽'만을 다뤄왔다고 했다. 회사 이름도 Wall removalist 였다. 구조변경, 창문을 넓히거나 새로 만들기, 벽에 구멍을 뚫어 문 달기가 그의 전문 분야였다. 우리도 처음엔 내력벽 제거를 위한 구조계산, 공사 허가, 그리고 벽 철거와 새 벽을 만드는 작업을 위해 그와 계약을 맺었다.


보온재 문제를 발견했을 즈음 닐은 부지런히 엔지니어링 구조 계산을 마쳤고, 이를 바탕으로 공사 허가(Building Permit)를 득했다. 공사 허가가 나오자, 정식 공사 계약서를 썼다. 30장 정도 되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 좀 제대로 된 '공사다운 공사'가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증인으로 친구 둘까지 사인을 마친 두둑한 계약서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차분히 앉아 집 공사부터 호주 삶 전체를 아우르는 심도 깊은 수다를 나눴다. 물론 보온재 얘기도 나왔다. 맡아 작업해줄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우리 이야기에 닐은,

"응! 내가 해줄게" 했다.

물론 추가로 돈을 내고 진행하는 일이었지만, 우리에겐 말라 갈라진 땅에 기다렸던 단비 같은 말이었다. 구조변경, 외벽을 모두 뜯어내고 보온재를 넣는 일, 그리고 플라스터 마감을 한 업체에서 진행할 수 있었다.


휴우, 한시름 덜었다.


물론 작업도 멋지게 마무리했다. 촘촘하게 채워진 단열재는 마음까지 푸근하게 만드는 핑크빛이었다. 드디어 멜버른의 겨울이 무섭지 않았다.

 

이후로도 30년 경력의 벽 아저씨는 많은 문제들을 슥슥 쉽게 해결해줬다.


가장 큰 이슈는 창문이었다. 회사에서 추천받은 창문 업체는 새 아파트나, 상가 창문을 전문으로 한다고 했다.

"일반 가정집보다 아파트 창문들이 훨씬 좋은 재질이야! 알지?"

설치가 완료된 지금 보면, 이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만만하던 창문 재질과는 달리, 그들은 설치 마감은 전혀 할 줄 모른다는 걸 설치를 시작하고서야 알았다.

그들은 우리 집이 30년이나 된 오래된 건물이라는 걸 간과했다. 신축 건물과는 달리 오래된 집은 창문을 설치하기에 좋은 마감이 되어있지 않다. 기존에 달려있던 창문을 뜯어내고 난 자리가 고를 리 없다. 그래서 보통 오래된 나무 프레임은 창문을 제거하면서 같이 뜯어낸다. 그러면 플라스터와 집을 지탱하는 나무 기둥이 창문 둘레로 헐겁게 짜인 상태로 노출된다. 나무로 된 기둥들은 하중을 받치기 위함일 뿐, 밖으로 보이는 부분이 아니다. 마감도 되어 있지 않고, 정확히 중심을 맞춰 설치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창문 담당자는 계속해서 이 나무 기둥에 창문 프레임을 나사로 고정하고, 틈을 실리콘으로 쏘기만 하면 설치가 완료되는 것이라고 우겼다.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그러면 창문이 삐뚤삐뚤 해지고, 뜨는 공간이 생길 텐데 그게 맞을 리가.

우리는 또 해결사 닐에게 쪼르르 찾아갔다. 역시나 그는 정답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은 창문용 프레임 안팎으로 reveal이라는 부분을 덧댄다고 했다. 구글을 열심히 뒤져 관련 이미지들을 찾았다. 닐과 얘기하다 창문 담당자까지 현장으로 불러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영어가 서툰 중국인 담당자는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려다 그냥 "yes"해버렸다. 석연치 않았다. 어딘가 막혀있는 게 분명했다.

그때 닐 아저씨는 저벅저벅 걸어 나가더니, 잠깐 기다려보라며 자리를 비웠다. 그는 어디선가 창문 마감(reveal) 샘플을 가져와 각도별로 어떻게 마감할 예정인지 직접 보여줬다.

- "여기는 이렇게 덮여야 하고, 이곳은 그대로 노출돼도 되는데 페인트로 색은 맞춰줘야 해."

그제야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창문 업체가 멋대로 건너뛴 공사 단계가 눈에 쏙 들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골칫거리였다. 창문 업체가 이제 이해는 했는데, 본인은 해본 적 없어서 못한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아니! 그럼! 창문은 어떻게 달라고!! 화가 머리끝까지 차려던 순간 닐이 웃으며 말했다.

- "그래? 그럼 내가 해줄게"


그는 간단한 작업은 추가로 견적을 받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해줬다.

"혹시 이 녹슨 난간 떼줄 수 있니?"

- "응! 바로 해줄게"


"혹시 여기 벽을 조금 더 세워서 가구 옆면이 안 보이게 막아줄 수 있니?"

- "응! 벽 마감할 때 같이 해줄게"


"마당으로 나가는 창문에 턱을 없애고 싶은데, 여기 벽돌벽 좀 없애줄 수 있니?"

- "응! 문제없어"

흔쾌히 OK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눈물 나게 고마웠다.


가끔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까지 알아서 챙겨주었다.

- "차고 쪽으로 새로 만든 문 말이야, 높이차가 꽤 있어서 계단을 설치해야 할 것 같은데."

"아, 그래? 어쩌지?"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 거리자 그는 또 흔쾌히 답했다.

-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자재로 하나 만들어줄게!"

언제나 그는 유쾌했다.


건설사 없이 하는 인테리어는 멜버른의 겨울 같았다. 매일매일 자잘한 비바람 같은 문제들이 새로 발생했다. 풀었다 싶으면 또 터지고, 해결했다 싶으면 또 무언가 잘못됐다고 전화가 왔다. 타일 수량이 안 맞거나, 치수가 틀렸거나, 견적이 두배씩 뛰어버리거나, 잘못된 물건이 배달됐다. 손이 얼 것 같은 추위는 아니었지만, 지치는 비바람이 매일 부는 멜버른의 추위처럼 딱 그랬다. 수습할 수 없는 큰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자잘한 문제들이 툭툭 불거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잠깐잠깐 쨍하게 해를 내어주는 봄 같은 '벽 아저씨' 닐이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겨울 같던 인테리어도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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