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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Sep 09. 2021

나도 나름 계획이 있었다.

"따라 따라 딴 - 딴딴 따다"

익숙한 음악과 함께 찾아오던 신동엽 씨의 러브하우스는 내 주말 저녁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프로그램은 늘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극단적으로 지저분하거나, 위험한 집에 살던 이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연거푸 휩쓸고 지난다. 그러고 나면 성우의 "과연 어! 떻! 게! 바뀌었을까요?" 하는 소개와 함께 뽀샤시 처리된 집이 나온다.

언제나 공간은 거짓말처럼 변했다.

인테리어라는 분야에 관심이 생긴 건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다지 예쁠 것도 그다지 초라할 것도 없는 평범한 집에 살던 때였다. 신동엽 씨와 건축가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언제나 티브이 밖 체리목으로 둘러싸인 집과 선명히 대조됐다. 마법 같다는 말이 어울렸다.


그들만의 리그 같던 '인테리어'라는 분야가 대중화된 건 10년쯤 전이었다. 셀프 인테리어, DIY 같은 키워드가 인터넷을 휩쓸면서 누구든 직접 집을 꾸밀 수 있다고 했다. 

"조명과 페인트만 바꿔도 집이 이렇게 변해요, 여러분!"

사람들은 블로그에 집의 비포 애프터 사진을 올리기 바빴고, 인테리어라는 전문분야는 한걸음 내려왔다. 

그때도 난 원룸 집을 꾸미는 데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관심은 좀 있었는데, 열심히 움직일 필요성을 못 느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가구를 적당히 조립해 쓰는 것만으로도 집 꾸미기는 충분했다. 마뜩한 장비가 없어 조립한 책상이 조금 삐걱거렸지만 상관없었다. 거기서 하는 일이라곤 맥주를 한 캔 따서, 열을 올리던 여행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전부였으니까. 


시간은 또 흘러, 난 호주로 건너왔다. 그리고 1년쯤 전부터는 인테리어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언제나 시방서(specification)와 기능(function), 그리고 성능(performance)에만 집중하는 공장 짓는 엔지니어였던 내게 인테리어 회사는 신기했다. 조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했다. 

Safety requirement, permit works, drain point, HVAC, structure, invoice, power distribution boards, plumbing pipe, schedule, milestones 어쩌고 저쩌고. 

분명히 늘 들어오던 현실적인 단어들이 모두 나열되어 있는데, 조금씩 비 현실적이었다. 크기가 제멋대로인 앨리스의 문이 떠올랐다. 늘 보던 익숙한 문과 하나도 다를게 없이 생겼는데, 크기가 제각각이라 낯설어졌다. "Drink me!" 난 아직 문을 통과하기 위해 마셔야 하는 음료를 삼키지 못했다. 

한 번은 디자이너가 시공팀에게 마무리된 디자인에 대해 설명해 주는 미팅이 있었다. 나무 합판과 알루미늄으로 된 이종 접합 부분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이런저런 의견이 복잡하게 오고 갔다. 언제나 이종접합은 골칫거리다. 잘 안 붙기도 하고, 붙여놔도 문제가 생기기 일쑤다. 우리나라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이종접합 배관 때문에 일정이 지연돼 아주 고생한 기억이 있었다. '오! 골치 아픈 녀석이 저기 하나 있군!' 하며 관심 있게 미팅을 들었다. 

그러다 정말 몰랐기에 작은 소리로 옆에 있던 팀장님께 소곤소곤 물었다. 

"아니, 근데 저기서 저기로 재질이 왜 바뀐 건데요?"

2008년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례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쁘잖아요." 

머리가 쨍 울리는 것 같았다. 아무 기능이 었는데, 바꾸지 않아도 되는 재질을 바꿔서 굳이 저 고생을 하다니. 

다 익숙한 것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난 아직도 이 이상한 나라에 적응 중이다.




집을 구매할 때의 평면도 

솔직히 30년 된 주택을 구입하면서도 그곳에서의 삶보다는 집값과 실용성을 생각했다.

위치, 학군, 교통, 공원, 쇼핑 등을 포함한 인프라. 그리고 대지 면적을 고려했고, 그런 조건들 대비 저렴한 집을 골랐다. 집을 고치는 건 대충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다. 

10년째 수많은 블로그와 핀터레스트의 비포, 애프터 사진들을 봐왔었다. 가구들이나 집을 간단히 수리하는 유튜브도 많이 찾아봤다. 그들은 언제나 밥 아저씨처럼 내게 질문을 던졌다. "참 쉽죠?"


게다가 난 지금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고 있지 않은가. 회사의 장부만 봐도 집 고치는 견적이 나오는 것 같았고, 레퍼런스 사진만 봐도 이 정도는 구현할 수 있겠지 싶었다. 회사의 인맥도 십분 활용할 생각이었다. 현장에 나갈 때마다 조금씩 담소를 주고받던 업체 사장님들 위주로 넌지시 언질을 넣었다. "저희 집 공사 시작해요. 나중에 한 번씩 와서 봐주세요."


수월하게 금방 잘 풀릴 거라 생각했다. 

열쇠를 받고 한 달 반쯤 뒤면 새 집에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겠거니, 했다. 


나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다. 인테리어의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 게 많지는 않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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