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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Sep 07. 2021

시누이가 집을 잘 팔자, 무서웠다.

아파트 매매가 완료되자, 통장은 잠시 부자가 되었다. 현금을 이렇게 깔고 앉을 날이 또 있을까 싶었다. 금방 나갈 돈 인걸 알았지만, 괜히 든든했다. 하지만 동화 같은 통장 잔고와는 별개로 현실은 찬바람이 쌩- 몰아쳤다.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가 않았다.


코로나로 한동안 하우스 가격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면 집값이 떨어진 게 아니라, 집 매매 자체가 눈에 띄게 줄어든 걸 알 수 있었다. 당장 집을 보러 가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됐다. 집 밖을 벗어나도록 정부가 허용해준 다섯 가지 항목에 '살지도 모르는 집을 구경하러' 가는 건 포함되지 않았다. 몇억짜리 집을 사면서 가보지도 못하고 살 위기에 처한 것이다. 부랴부랴 부동산들은 동영상을 찍고 3D virtual tour를 준비하며, 부동산 시장을 굴려보려 애썼다. 하지만 판매자도 구매자도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당장 팔아야 하는 사연 많은 집들만 헐값에 팔리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빅토리아의 확진자 수가 0을 연거푸 찍던 어느 날. 드디어 규제가 (잠시, 몇 달) 풀렸다. 사람들은 해방감에 밖으로 쏟아져 나왔고, 집값은 폭등했다. 반등 정도가 아니라, 폭등했다. 그 모양새가 코로나 초기에 두려움으로 슈퍼에서 휴지를 쓸어와 쟁여두던 것과 비슷했다. 뭔가 이글이글했다. '난 마당 있는 외곽 집으로 나가고야 말겠어! 그런 집을 사고야 말겠어!' 사람들의 의지는 집값에 그대로 투영됐다.


그즈음 시누이네도 집을 팔아야만 하는 복잡한 서사가 생겼다.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고 했다.

파는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집을 광고하는 몇 주 사이에도 락다운은 또 생겼다 없어졌다를 반복했다. 결국 경매도 원래 일정에서 2주 정도 밀린 뒤 마침내 열렸다. 하지만 그 결과만큼은 엄청났다.

애초에 부동산이 '이 정도가 아마 최대 가격일 거야' 하고 파는 이들에게 알려준 금액이 있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이 이상은 힘들다고 못을 박았다고 했다.

하지만 경매에서 그 가격에 2억이나 더 비싸게 집이 팔렸다.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다른 주에서 멜버른으로 이사 올 예정이어서 집을 구매하는 커플과 옆 옆집에 월세를 살던 가족이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집값을 올렸다고. 전자는 이 집이 아니면 또다시 집을 구매하기 위해 몇 주간 여행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후자는 살면서 동네에 반해 시누이네 집이 매물로 나오자마자 본인들 집이라고 점찍어 뒀다고 한다. 치열한 승부에서 승자는 동네 주민이었다. 집을 사지 못한 커플은 거의 울듯이 돌아갔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2억을 더 벌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하지만 난 시누이가 집을 잘 팔자, 공포감이 들었다. 언제나 그랬듯 집을 매매하며 몇 억을 벌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았다. 모두 '누구'인지 주어가 생략된 A동네 사는 B 씨 같은 느낌이었다. "내 사돈에 8촌에 친구가 말이야"처럼.

하지만 매일 만나 이야기하는 시누이가 집을 너무 잘 매매했다. 나만 모르는 특별한 비법 같은 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집값이 폭발하고 있었다. 우어. 우리도 당장 집을 사야 하는데. 이래서는 과연 내 집이 있을까 싶었다.


 사이 우리도 부지런히 집을 보러 다니면서 두어 번 경매에 참여했다. 그리고 참패했다.


첫 번째 경매는 특히 비장했다. 친구네 커플까지 스파이로 심어두며 분위기를 살폈다. 그만큼 남편이 사고 싶어 했던 집이었다. 필승을 위해 처음부터 부동산이 범위로 정한 금액 끝에 2억쯤 더 주머니에 넣어 갔었다. 그때까진 꽤 괜찮은 승부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경매에 구경 갈 때마다, 늘 궁금하던 것이 있었다. 손을 들어 경매에 참여하면, 부동산 직원들은 그들 옆으로 스르륵 달려가 뭔가를 열심히 코칭한다. 그때마다 대체 뭘 그리 부지런히 써대나 궁금했었다. 드디어 그 궁금증이 풀렸다. 경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부동산 직원 하나가 우리 옆에도 붙었다. 그들은 다음 부르면 좋을 금액을 부지런히 써서 보여주고 있었다. 귓속말도 했다. '이거 부르면 재네는 분명 나가떨어질 거야.' 나가떨어지긴 개뿔. 상대는 맹렬한 기세로 다음 금액을 불러댔다.

우리가 백만 원을 올리면 상대는 이백을 올렸다.

다시 우리가 삼백을 올리면 상대는 백오십만 원을 올렸다.

경매 금액은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그렇게 여비로 준비해 간 돈까지 순식간에 동이 났고, 슬슬 우리도 한계가 왔나 싶었다. 그때 반대쪽에 심어둔 스파이 친구가 문자를 보냈다.

'누나. 지금 저 커플 정말 큰 한숨 쉬었어요. 조금만 더 부르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오 그래?'

곧바로 다음 금액을 얼마를 부를까 남편과 속삭였다. 심장이 졸여지는 것 같았다. 포커페이스를 해보려 태연한 척 웃었다. 그런데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바로 그때, 전혀 다른 반대쪽에서 숨은 고수가 손을 들었다.

"응. 3백 받고 이천만 원 더!"

경기는 끝났다. 새로운 고수가 멋지게 경기를 KO 시켰다. 우린 멋쩍게 뒤통수를 긁으며 경매장을 빠져나왔다. 다리에 사이다가 찬 것처럼 긴장됐던 첫 경매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졌다.


두 번째 경매는 사실 참여했다기보다는 이용당했다.

첫 경매 집의 맞은편에 아주 비슷한 매물이었다. 집을 보러 가긴 했는데,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나쁘지도 않은데 또 막 우리 집 같지도 않았다. 주방 앞 공간을 넓게 쓰면서 방이 좀 좁았다. 또 마당이 두 개로 갈라져 활용도가 떨어질 것 같았다. 처음엔 경매에 구경이라도 갈까, 하다가 말았다. 마침 아파트 판매를 마무리하고 월세집으로 이사 가는 주에 겹쳤다. 아이까지 데리고 움직여야 하는데 무리하지 말자 싶었다.

그런데 경매 전날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너희 포기하지 마. 이번 집이 진짜 기회인 것 같아. 사실 경매를 하는 이번 주말이 유대인들 명절이거든. 경쟁자가 정말 없어. 절대적인 기회야. 알았지? 포기하지 마."

종잇장 같은 마음이 세차게 흔들렸다. 싸게 살 수만 있다면, 잘 고쳐서 괜찮은 집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폭우가 쏟아져 집 안에서 경매를 진행했다.

다음날, 과연 경매에 들어온 사람들이 눈에 띄게 적었다. '오! 우리 그날 인가?' 싶어 온통 들떴다.

결과는 좀 미적지근한 온도에서 패배했다. 또 졌다.

우리 말고 경쟁자는 딱 한 커플이 더 있었는데 그들의 사고자 하는 의지가 경매 초반부터 느껴졌다. 처음 몇 번 열심히 랠리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맞은편 집 판매금액을 조금 넘기자, 우린 바로 기권했다. 더 마음에 들었던 앞집보다 비싸게 주고 사는 건 아니다 싶었다. 별다른 이변 없이 경쟁자가 집을 사 갔다.

집을 나오면서 어쩐지 쫌 찜찜했다. 장기짝이 된 것 같았다. 원하는 만큼 집값을 올려 팔기 위해 수완 좋은 부동산은 우릴 꾀어낸 게 분명했다. 중고차 딜러보다 더 장사 속이 좋다는 부동산 직원들은 이미 우리를 낱낱이 꿰뚫어 보고 있었다. 보기 좋게 이용당했다. 뭐 손해 볼 것도 없었지만, 좀 헛헛했다.


그리고 또다시 집을 찾아 헤매는 시기가 계속됐다.

그냥 집을 보러 다니는 것도 힘들었는데,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건 진짜 정말 너무 힘들었다. 보통 토요일마다 원하는 지역에 집들을 30분 단위로 구경하게 된다. 10분 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 내리고 10분 집을 둘러보고 다시 10분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 반복됐다. 그러다 보면, 우리 순하디 순한 딸도 반항을 시작했다. 포도, 수박, 과자, 요구르트. 아이를 홀릴만한 장난감까지 잔뜩 갖고 움직여도 소용없었다. 마지막 집을 둘러볼 때 쯔음에는 눈물바다였다. 아.... 아이 없이 집을 보러 다니던 시절이 얼마나 편했던가.


솔직히 주에 7채쯤 비슷한 동네에 비슷한 집을 보러 다니면, 그 집이 그 집 같아지는 시기가 온다. 지친다.

이제는 제법 학군도, 교통편도, 부동산 판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 충-  알아 수월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우리 빼고 다 부자라 남들은 거침없이 집들을 막 사들이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즐거움이 있다면, 이따금씩 스파이를 봐주던 친구네가 놀러 와 함께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이 유일했다. 친구네 커플은 우리보다 서너 달에서 6개월쯤 앞서 똑같은 일정을 소화했었다. 우리보다 조금 일찍 외곽에 아파트를 샀고, 우리보다 조금 일찍 그 집을 팔았다. 그리고 우리보다 몇 달 앞서 그들의 두 번째 집을 샀다. 관심사가 비슷해 말이 통했다. 서로 정보도 많이 주고받았다.

그날도 비슷한 집들을 다섯 채쯤 보고 마지막 집에 들어왔을 때, 친구들이 놀러 왔다.


함께 본 그 집은 유난히 인기 없는 집이었다.


호주에는 경매 전, 집에서 빵을 구으라는 말이 있다. 그 달달하고 푸근한 냄새가 풍기면 사람들의 마음이 동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고. 그만큼 경매는 직접 집을 보러 왔을 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그 집에서의 행복한 삶을 꿈꾸게 만들면, 사람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그 집을 사게 된다.

그래서 렌트를 주던 집도 일단 팔고자 하면, 보통 세입자부터 내보낸다. 1년 단위로 세 들어 살면서 '내 집'처럼 공간을 꾸미고 살 가능성은 희박하다. 청소도 안 하고 짐을 쌓아두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일단 집을 깨끗이 비우고,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경매 전문 가구를 들인다. 평생 걸지 않을 것 같은 명작들도 걸어둔다. 분양하는 아파트들이 모델하우스를 신경 써서 꾸미듯 집을 그럴듯하게 치장한다. 그 비용이 몇 백만 원 들더라도, 그렇게 해서 경매에서 1억만 더 받을 수 있다면? 분명 아쉽지 않은 투자니까.


하지만 그날 방문한 그 집은 이상하리만큼 신경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아직 살고 있는 세입자는 그 자리에 4년이나 살았다고 했다. 짐이 엄청났다. 거실을 둘러 책장이 여섯일곱 개쯤 놓여 있었고, 낡은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취미로 하는지, 천장에는 카약 서너 개가 걸려 있었다. 그 책장과 카약들 만으로도 이미 집이 좁아 보였다.

아이들이 쓰는 것 같은 방들에는 각자 취향대로 연두색, 오렌지색 페인트가 덕지덕지 칠해져 있었다. 직접 칠한 것처럼 울퉁불퉁했다. 결정적으로 창틀에는 감옥에나 달만한 두툼한 철장이 빼곡하게 둘러져 있었다. 한마디로 너무 답답했다.

그즈음 나는 드디어 공장 짓는 엔지니어를 탈출해 인테리어 업계에 몸 담은 지 몇 달이 지났다. 친구들에게 풍월을 읊는 척하기 위해 팔짱을 딱 꼈다. "하이고, 욕실 바꾸는데 2천만 원, 바닥 바꾸는데 천오백만 원"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너스레를 떨어봤다.


그곳이 그날의 마지막 인스펙션이었기에 친구들과 카페에 가 수다를 좀 떨다 헤어졌다.

고단한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고 돌아오자 남편은 그 마지막 집 사진을 다시 꺼냈다.

"너 이 집 다시 봐. 다시 똑바로 봐봐"

그저 똑같아 보이는 집들 중에서도 낡고 매력 없는 집이었다. 현장에 있을 때도 친구들과 노느라 대충 봐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이 집 왜?" 했다.

남편은 침착하게 이 집을 우리가 사야 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꼽았다.

1. 학군이 좋고 2. 대중교통이 좋고 3. 동네 평균 집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쌌으며 4. 경쟁자가 없었다.

그 말을 듣자, 순간 나도 '어?' 하며 다시 고쳐봤다. 지도도 펴 위치를 확인했다. 학군 랭킹, 매매 이력을 볼 수 있는 사이트 등 부동산 참조 사이트들도 모두 열었다. 그 집에서 5분 거리에 큰 공원이 두 개나 있었다. 대형 마트도 걸어서 충분히 수 있는 거리였다. 대중교통도 시간이 불규칙한 버스가 아니라, 통행량이 많은 기차역이었다. 학군이 최고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만하면 더 바랄 게 없는 랭킹 좋은 초중고등학교를 (Primary and secondary school) 모두 끼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어?', '어?' 했다.


다시 지표로만 둘러본 집은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아니 상당히 좋은 집 같았다. 숨어있는 보석이었다.


당장 다음 주에, 그리고 그다음 주에 다시 집을 찾아 꼼꼼히 살폈다.

여전히 인상이 좋은 집은 아니었다. 철창살과 책꽂이로 좁아진 거실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집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벽도 마음에 안 들었다. 90평 정도 되는 땅에 꽉 차게 지은 집인데, 그 벽 때문에 활용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집을 고쳐 살자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어설프게 칠해진 색색의 페인트야 다시 칠하면 된다. 낡은 주방도 어차피 우리 입맛대로 다시 설치하자고 말했던 터였다. 저 집 한중간을 가로지르는 벽도 (아, 어떻게 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은 지 30년이나 된 낡은 집인 건 여전히 틀림없었다. 하지만 최적의 장소에 위치했다.

결정적으로 코로나가 낳은 비정상적인 집값 과열 속에서 홀로 유유자적 경쟁자가 없었다.

우리만 알고 싶었다. 누가 이 집을 눈치챌 세라 무서워 서류 점검을 서둘렀다.


경매를 일주일 앞두고 우린 미리 오퍼(구매의향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48시간이 지나 판매자는 우리의 오퍼를 받아들였다. 인기 없는 집 하나가 방금 얻어걸렸다. 앞으로 20년은 살게 될 거라고 내내 말한 우리의 두 번째 집은 그렇게 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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