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들에게 내 커리어를 조잘조잘 설명했다. 사용했던 툴, 따둔 자격증, 프로젝트의 특성, 그 안에서 내 역할. 단순히 이력서를 공유하는 것 이상으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면접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솔직히 털어놨다.
"난 말이야. Attention to detail이란 말이 참 무서워. 대체로 일할 때 꼼꼼한 편이긴 해. 누가 최선의 답을 가지고 있을지, 자료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잘 기억하는 편이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지워 나가는 것도 참 좋아하거든? 이런 것도 디테일에 강한 게 분명 맞잖아.
근데 숫자를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맞추는 게 참 어렵다. 옛날에 화공 양론 수업을 듣는데, 친했던 조교언니가 시험 끝나고 나한테 그러는 거야. '난 너랑 나름 친하다고 소수점 다섯째 자리까지 채점해야 하는데, 넌 소수점 셋째 자리쯤에서 봐줘야지 했거든? 근데 넌 왜 그래도 맞는 게 없냐?'
나 사실 알고 있었어. 공학용 계산기를 넣을 때마다 다른 숫자가 나오는데, 그게 맞을 리가 없잖아. 난 이런 종류의 디테일은 참 버거워. AI 시대에 이런 단점은 어떨까?"
하는 식으로 물었다.
그러면 AI는 '이런 건 앞으로는 문제가 안 되는 이슈예요'하는 식으로 답을 줬다. 꼼꼼함이란 한 단어 같지만, 관리자적 꼼꼼함과 수치적 혹은 기술자적 꼼꼼함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고. 마지막 결과가 정확히 떨어지지 않는다고 신뢰를 잃는 세상은 지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런 영역은 기계가 담당하고 인간은 흐름을 읽는 쪽에 치중하게 될 것이라고.
앞으로 내가 더 갖춰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AI들은 입을 모아 내가 앞으로 숫자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찾아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숫자를 맞추고, 패턴을 찾아내는 일을 AI가 해내면, 그 사이에서 sensemaking(의미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동안 AI와 매일 이런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이력서 한 줄 한 줄, 경력 하나하나를 곱씹었다.
AI가 꼽은 내 커리어의 강점은 다양한 경험이었다. 1억 원 상당의 2주짜리 가게 인테리어 프로젝트부터 1조 2천억 원짜리 인프라 공사까지 '공사에 기반을 둔 경험'이 다양했다. 화학공장, 철도, 상업 가게, 일반 건설 프로젝트를 여러 나라에서 수행한 덕에 활용 범위가 넓다고 높게 평가했다.
이런 대화를 기반으로 가능한 로드맵을 설계했다. 여러 가지 옵션이 떠올랐다.
Option A. Tech-enhanced Cost/Project Engineer
Option B. Digital Transformation PM
Option C. AI 도입 컨설턴트 (건설/엔지니어링)
한 AI가 이런 목록을 만들면, 이 결과를 다른 AI(Perplexity나 , Gemini, Copilot)에게 가져가서 다시 상담했다.
이런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첫 번째 옵션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엔지니어를 준비해 가면서, 옵션 C (AI 도입 컨설턴트)로 커리어를 확장해 가자고 결론 내렸다.
방향이 정해졌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늘 해오던 내 특기들을 활용했다.
목표를 위해 필요한 일들을 나열했고,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매겼다. 그리고 소요될 예상 시간을 부여해 계획을 완성했다. 2주, 한 달, 세 달, 6개월로 기간을 넓히는 액션 플랜을 짰다.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이 정해졌다.
이제 망설일 것 없이 실행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 공부해야 하는 순서로
Python -> Power Bi -> Notion, Slack, 혹은 JIRA를 공부하라고 추천했다.
구미가 확 땅기는 제안이었다. 마침 Power BI(파워비아이) 툴을 아주 잘 알고 싶다는 욕심이 있던 차였다. 조금씩 깨작깨작 사용해 오던걸, 작년 사업주의 요청으로 처음부터 Power BI리포트까지 만들어가는 과정 전체를 경험했다. 이참에 제대로 공부해서, 외부의 도움 없이 내가 이런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수 있게 깊게 파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Power BI 대표 시험인 PL-300을 등록했고, 다시 그에 대한 세부 계획을 세웠다. 아이를 재우고 주어진 매일 밤 2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유난히 피곤하거나, 다른 해야 할 일들이 생기는 변수가 꾸준히 발생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15문제는 푼다는 규칙도 세웠다.
그렇게 처음 PL-300이라는 시험의 존재를 알고 첫 시험에 간발의 차로 떨어질 때까지 거의 두 달이 흘렀다. 자격증 하나를 취득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면, 그리 긴 시간을 쓴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이 출발점이 비슷했던 남편은 전혀 다른 곳에 도달해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 만큼의 큰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