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퇴사일지 1

by Juas

버스에서 내리기 귀찮아서 계속 앉아 있었다. 전혀 모르는 곳으로 데려갈 줄 알았는데 가는 길이 모두 낯이 익다. 길을 잃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문득 첫 배낭 여행길이 생각난다. 길을 잃을까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몇 번이나 복기하고 수줍음 많은 성격은 온데간데없이 낯선 사람에게 성큼 다가가 길을 묻곤 했다. 가진 건 시간밖에 없는 가난한 여행자에게 길을 헤맨다는 건 다리가 무지 아플 것임을 예고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친구에게서 몽마르트르 뒷골목에서 한 흑인 장사치에게 얻어맞았다는 엄청난 경험담을 듣고 출발한 터였다.


그렇게 도착한 목적지엔 이미 알고 있는 오래된 유물들이 수많은 인파 속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 뻔한데도, 직접 보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기대감이 여행 내 발길을 재촉했다. 공교롭게도 전공 필수 과목인 바람에 4년 내내 나를 괴롭혔던 미학 수업도 나름의 믿는 구석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사람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는 작품을 마주했을 때, 오는데 온 힘을 소진한 여행자에겐 무얼 갖다 놔도 예쁜 돌덩이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됐다. 곰브리치가 뭐라고 썼건 좀 앉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총 30일간의 여행 기간 중 20일 이상은 목적지로 가는 길을 찾느라 온 신경을 쏟았고 집으로 돌아갈 즈음이 되어서야 걱정했던 것보다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음을 알고 긴장을 풀 수가 있었다. 물론 그 시점에서 소매치기를 당하긴 했지만 말이다.


경계를 풀고 낯선 골목을 바라봤을 때 서툰 공놀이를 하고 있는 동네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이 보였다. 낯선 곳에서 낯익은 장면을 보면 마음이 느슨해진다. 해외여행 온 어르신들이 여긴 어디 같고 저긴 어디랑 비슷하다는 김빠지는 소리를 하는 건 익숙한 것을 찾아 두려움을 없애려는 본능이 몇 살이 되건 계속 남아 있어서가 아닐까.


그렇게 겨우 낯선 도시를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을 때, 해 질 무렵 강가에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것 같아, 근데 또 너무 아름다워. 다음엔 같이 와요.’


이 후로는 비행기 표만 끊고 발길 가는대로 여행했다.

길을 잃은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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