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이상하죠. 그렇지만 사실입니다. 읽어보십시오.
다 읽고나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와와와!! 이거, 이게, 드디어!! 대박!!”
이 외침은 대체 뭘까요?
주식창을 열어보고 미쳐버린 내 목소리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연을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좀더 되돌려봐야 한다.
좀 오랜 전으로 간다. 미혼일 때로.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냉혹한 주식 세계.
입사하고 몇 년 안된, 사회초년생 딱지를 막 벗을 무렵이었다.
사수였던 선배와 점심 먹고, 이를 쑤시며 증권사에 발을 들인 게 시작이었다.
신한증권이었나, 삼성증권이었나, 아무튼.
선배 왈.
“이김정. 증권 계좌 있쪄?”(이 쑤시며 말하는 거라 발음이 샌다)
“없쪄.”(나도 이 쑤시기 때문에 발음이 샜다)
“그럼 만드러.”
“알았쪄.”
“근데 말이 짧다.”
“이 쭈시잖아.”
“......”
“요.”
그땐 증권 객장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모바일 시대는 아직이고, 홈트레이딩이 갓 적용될 때다.
중절모 큰손께서 은둔 고수처럼 팔짱끼고 앉아있는 풍경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매수매도 주문표를 들고 사람들이 이리 저리 왔다갔다, VIP가 오기라도 하면 점장이 나와서 허리 구십도로 인사하고 은밀한 방으로 이끈다.
“요 회사가 말입니다, 어르신께만 말씀드리는 건데, 씨비 쪽으로...”
증권 객장이 이런 곳인가, 했다.
눈이 돌아갔다.
“야! 정신 차리고, 계좌 트자.”
선배가 내 등을 탁 쳤다.
그렇게 시작했다.
계좌부터 트고, 주식 시세판이 무슨 별세계인 것마냥 눈이 박힌 사람들이 우르르 서있는 걸 구경하고, 증권사 직원을 기다릴 동안 본격적인 금융의 세계에 발을 들인 느낌이었다.
이런 거구나.
사고, 오르면 팔고. 돈을 버는 거고. 간단하네.
벌써 부자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사면 다 오를 것 같은 기분.
여길 이제야 오다니.
핀터린치, 워렌버핏, 찰리멍거. 시대를 풍미한 부자가 되자고,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오년 뒤, 그 선배는.
주식 투자로 부산 수영만에 요트도 한척 있고, 갑판에 누워 한병에 천만원 밖에 안하는 빈티지 와인을 집사가 따라주면 거만하게 홀짝이며, 수영 빤쮸에 선글라스 끼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니고.
쫄딱 망했다.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흐른다.
이번엔 내 차례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하죠. 저도 그렇습니다만. 이번엔 잘 될지도 모르니 한번 믿어보시죠.
난 어느날.
A라는 주식으로 돈을 벌게 된다.
설마. 정말?
정말이다.
그것도.
100% 올랐다. 투자한 돈의 2배. 따블이다.
화끈하죠.
돈 놓고 돈 먹기죠.
근데 여기엔 아무도 상상조차 못할 흑막이 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우선 입이 근질근질했다.
왜냐고.
자랑하고 싶어서.
회사 동료들에게 이걸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거다.
바야흐로 경쟁 사회이고, 나 잘난 사회잖아요. 인스타 보세요. 어떤지.
“너네들 나좀 마구마구 질투좀 해줘잉.” 이런 거.
그러니 자랑해야 한다.
나, 따블 먹었다고.
그렇게 기회를 엿보던 어느날.
출근하고 아침, 아는 동료들끼리 커피를 마시며 모여앉았을 때다.
전문 용어로 땡땡이 치고 입 터는 시간이다.
마침 누군가 주식 얘기를 꺼냈다.
‘어찌 내 맘을 알고. 요놈 참 이쁜 놈일세.’
그 이쁜 놈이 증권사 다니는 친구가 추천해줘서 주식을 샀는데, 손실중이라 우울하다는 뭐 그렇고 그런 푸념을 했다.
쯧쯧. 증권사 추천받고 그러면 그렇게 되는 거야. 이 양반아.
“이야, 어떻게 하나 우쭈쭈.”
“조금 있으면 우상향하겠지.”
“증권사 친구가 알려줬으면 확실한 거니까, 기다려봐봐.”
라고 위로들은 하지만.
속마음은.
‘혼자만 정보받고 안알켜주더니, 쌤통이다. 요놈아.’
‘상장폐지까지 화끈하게 가보자. 가즈아!’
‘너 잘되는 꼴은 내가 못보지. 지난번 부탁한 거 나 몰라라 했지.’
그런데 이때.
“내꺼는 아닌데.”
난 틈을 노려 툭 던졌다.
일순 좌중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엉? 이김정? 니꺼는 아니라니? 뭔소리야?”
궁금들 하시구나. 그럼 알켜줘야지 큭큭.
그렇게하여 나는 열라 궁금해진 좌중을 향해 썰을 쏟아부었다. TV에서 아빠가 명예퇴직하면 엄마랑 아들이랑 둘만 떠나는 세계여행에 가끔 나오는 나이아가라 폭포수처럼.
(퇴직한 아빤 어딨냐고? 나도 모르지. 당구장 있겠지.)
이렇게 자랑질을 좀 해야 살 맛이 난다.
이게 인생이다.
인생 뭐 있나.
인생 별 거 없습니다. 어렵게 살지 마세요. 할 말 다하고 사세요. 죽으면 남는 거 없다고요. 내가 죽었다고 누가 대신 말해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다 듣던 동료들이 한턱 쏘라며, “주식의 신이네.” “은둔 고수의 비기네.” “잔재주가 남다르네.” “작전세력이 여기 있었네.” 난리가 났다.
“알았어. 내가 나중에 거하게 한턱 쏘지, 뭐.” 라고 나는 말했다.
그로부터 십몇년이 지난 지금도 쏘지 않았다. 앞으로도 쏠 일은 없다.
왜냐면.
회사에서 나중에 쏜다는 건 안쏜다는 얘기다.
아무튼 그런데, 이다.
실눈을 뜨고 있던 한 녀석이 이렇게 묻는다.
“근데 얼마나 투자했는데? 지금 당장 피씨 열어보면 바로 알겠네. 투자의 귀신님.”
하여간 살다보면 저렇게 말하는 놈이 꼭 한명 있더라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따블쳤다면 친 줄 알아야지, 알고싶어도 꼭 저런 걸 물어요.
못믿겠다. 계좌 까라. 인증 해봐라. 블라 처리해서 사진으로 보여봐라.
알았다. 알았어. 까주지. 그놈의 인증. 참 사람 말을 못믿어요. 대한민국 이래서 발전하겠습니까.
“얼마나 투자했냐 하면, 거금.”
“거금?”
“오십만원.”
“오, 오십만원?”
(조~용)
“하. 하. 하. 이야. 엄청난 돈을 투자하셨네. 정말 이야네. 이야하. 너무 어마어마한 돈이잖아효. 아이 무셔라. 여의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들썩들썩하겠는 걸효. 들썩. 들썩.”
썩을 놈.
투자액이 뭐가 중요하다고. 수익률이 중요하지.
만약 내가 억 단위로 집어넣었으면 어떡할 뻔 했어.
‘여기 모인 니들 모두 배가 아파서 구급차 부르고 병원 실려가고 다 뒤졌겠지.’
자, 그럼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있겠죠.
기적의 수익률.
제가 갑자기 100% 수익률을 올린 비결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거죠.
오십만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제부터 이걸 밝혀보겠습니다. 잘 들으세요.
일단 나는 주식 계좌를 튼 이후로 크게 이익도 없었고, 손실도 없었다.
하지만 옆에서 떡상이네 뭐네, 할 때 손가락만 빠는 상황이 되면, 난 왜 저런 떡상 종목이 안걸리지, 대체 뭐가 문제야 하고 투덜투덜 했다.
그러던 차,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점심 먹고 일찍 들어와 한산한 사무실 책상에 앉아 피씨로 주식 시세판에 멍 때리던 중.
그때.
갑자기 코가 간질간질하더니 재채기가 나오려고 했다.
먼지가 많나.
“에, 에, 에.”
이게 나올락말락하며 사람 애간장을 녹였다.
나오려면 그냥 우렁차게 나오든지.
그러다 결국.
“에이취!! 에헤히!!”
오질나게 콧물이 튀었다.
책상 위는 범벅이고, 자판에도, 탁상 달력에도 튀었다.
아무도 없길래 망정이지.
서둘러 휴지로 닦았다.
그리고 피씨에도 튄 것 같아 쓱쓱 콧물을 지우려는데, 동작이 일순 멈춰졌다.
뭔가 세한 게 지나갔다.
뭐냐 하면.
아주 기가 막히게 콧물이 주식 시세판의 한종목을 가리키고 있었던 거다.
마치 “재채기가 점 찍은 종목이니까. 넌 이걸 꼭 잊지말아야 해.” 하는 것 같았다.
미친 소리 같죠.
미친 소리 맞습니다.
하지만.
난 샤머니즘을 좀 믿는 편이다.
대학 입학 시험때도 고사장이었던 무학여중에서 학교괴담 귀신을 초빙해서 몇문제 맞혔다.
“연필 굴릴 테니까, 부탁드립니다, 귀신님. 분신사바...”
대입 수학에서 역사상 최고 난이도 문제 4개중 2개를 이걸로 해결했다.
출제 위원의.
“귀신이 아니라면 이건 못 풀 문제지. 수험생 쩌리들아.”
출제 의도를 간파한 것이다.
물론 풀었다 생각한 다른 문제는 다 틀렸지만.
그건 귀신한테 안물어봤으니 귀신을 탓할 일은 아니다.
어쨌든.
콧물이 왜 하필이면 저 종목에 튀었을까 하는 샤머니즘이 스멀스멀 올라왔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그렇지만 재채기 콧물이 튄 종목에 투자를 한다는 그런 바보 같은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는 거 나도 잘 안다.
그러고 말았다.
근데.
근데 말이다.
이상했다.
화장실에서 쉬할 때도 불현듯 그 종목이 떠올랐던 거다.
업무가 끝나고 집에 가는 만원 버스 속에서도 떠오르고.
불 끄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데도 ‘내 돈 빌리고 안 갚은 놈’의 얼굴처럼 떠올랐다.
이게 뭘까.
신기했다.
자꾸 떠오르게 하는 이건 대체 뭘까.
잊어버릴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다.
찰떡 같다. 찰거머리 같다. 길에 퉤! 뱉은 껌딱지 같다.
한번 보았던 그 종목의 이름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딴 허무맹랑한 것을 믿는 건 결코 아니지만.
10만원치만 사봤다. 딱 10만원어치. 정말 미친 척 하고.
소액인데 뭐.
안될 거 알면서 로또 사는 마음으로.
그리고 잊었다.
얼마 뒤 난 점심 값을 벌었다.
하아.
이게 된다고. 설마.
에이. 이게 되는 게 아니지.
그냥 우연인 거지.
하하하.
웃고 털어버리면 끝이다.
점심 사먹으라고 돈 벌어다 준 거로 보면 된다.
누가?
재채기가. 통밥이.
원래 오를 종목이었다. 거기에 콧물이 튄 거고.
별 일 아니다.
라고 생각했지만, 또다시 떠오른다.
쉬할 때도, 만원 버스에서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도.
떠올랐다.
애인이?
아니. 재채기로 돈 번 게.
그리고 무서운 건 또 있다.
돈맛을 본 것이다.
짭짤하다. 소금도 안쳤는데. 돈 맛이 짭짤하다.
인간이란 참 무섭다.
한번 돈 맛을 보니, 이번에도, 하는 마음이 더 커졌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를 설득하고 있다.
재채기로 주식 종목을 픽하는 사람이 세상에 한명 정도 있을 수도 있잖아.
그게 나일 수도 있고.
부채질을 하신다.
그래서.
이번 딱 한번이다.
하고 다시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점심 먹고.
아무도 없을 때.
이번에 안되면 볼 것 없이 때려치는 거로 하고.
“에이취!”
콧물이 온 사방에 튀었다.
모니터에도 역시 튀었다.
보자.
그게 A사였던 거다.
10만원에서 투자금 5배 올려 50만원 투자한.
바로 100% 따블의 신화는 그렇게 만들어진 거다.
그리고 난 동료들에게 자랑을 한 거고.
이제 아시겠죠.
여기까지 읽으면 허무맹랑 허풍 쇼라고 할 것이다.
물론 안다.
나도 그 정도 상식과 교양은 갖추고 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건 사리에 맞지 않다는 것도 아주 잘 안다.
단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라는 것도.
저 그렇게 미치지 않았어요.
이런 걸 모르겠냐고요.
근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실은 하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던 거다.
난 이전부터 남다른 재주가 하나 있는데.
내 예전 글을 찾아보면 나오는, 군대에서 관상을 봐주던 일을 말한다.
물론 당시 뻥을 친 것이지만. 소질은 쫌 있었다.
근데 말이다.
그 소질이 정말 어느 순간 발화한다면 또 어떻게 되는 걸까. 소질이 소질 차원이 아닌 재능 차원이 된다면 말이다.
발화를 해서 내게 뭔가 신끼라는 형태로 바뀐다면 어떨까.
보통 무당이 되는 사람들이 서서히 되는 게 아니라고 들었다.
어느날 나이가 찼을 때, 또는 우리가 모르는 강림의 선을 넘었을 때, 갑자기 그 신끼란 게 주체할 수 없이 나타난다는 거다.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신끼가 내 몸속에 발화된 것이 지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발화된 신끼가 재채기의 형태로 나오고, 재채기의 콧물이 내 간절한 소망을 알려주기위해 코에서 튀어나왔다고 본다면, 이건 과연.
무조건 허무맹랑한 얘기라고만 할 수 있을까.
완전히 부인하기도 힘든 얘기이다.
게다가 두 번이다.
무엇이?
이게 두번 그랬다는 거다.
한번은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두번이면 우연이라고 말해질 확률도 낮아질 수 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여전히 허무맹랑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얘기다.
가능성이 있다면 시도를 안해볼 이유가 없다.
이게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으로 정말 끝낸다.
세 번째 재채기.
이번에도 된다면, 이건 정말 맞는 것이니까.
그런데 좀 바꿔봤다.
이번엔 배팅을 좀 하기로 한 거다.
왜냐면, 정말 맞다면.
짚고 갈 게 하나 있다.
신끼라는 게 무한대로 나오는 건 아닐 거다라는 얘기.
이제 갓 신끼 생산에 들어갔다면, 휘트니스, 골프연습장, 필라테스 회원권들이 다 횟수로 운영되는 것처럼, 이 신끼라고 횟수 제한이 과연 없는 걸까.
뭐든 현실의 것은 한도란 게 있다.
해서 세 번째 것은 혹시 모르니 값지게 쓰기로 한 것이다. 이번 달 마지막 회차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썩을 놈이 오십만원이라고 놀렸으니 이번에 본때를 보여야겠다고도 생각했고.
그래서 주식 계좌의 돈을 모두 이동했다.
탈탈 털었다.
세 번째 재채기가 픽해주는 종목으로.
바야흐로 돈 준비는 끝났다.
주식창을 연 다음.
뭘 했을까.
당연히.
재채기를 했다.
나의 빛나는 재능. 신끼 내린 재채기!
황금 알을 낳아주는 거위가 아닌, 돈을 낳아주는 재채기다.
“에이취!”
여지없이 콧물이 오만군데 튀었다.
이러다 재채기에 정들 것 같다. 달인도 되고.
어쨌든.
재채기 콧물이 고른 회사는 Z사.
바이오 업종이다. 신약 개발사였다.
어?
이거 뭔가 심상치 않은데.
정말 그렇다.
뉴스를 좀더 찾아보니 얼마 뒤 임상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스토리가 있다.
그게 성공만 하면 주가는 폭등에 폭등이란다.
단군이래 최고의 폭등이 온단다.
해당 회사의 주식 종목 게시판에선 안그래도 격론이 펼쳐지고 있었다.
주로.
“설마 그게 되겠어.”
“우리나라에서 신약 성공사례가 있기나 하고. 헛소리지.”
“이거 다 약팔이야. 니들 약쟁이한테 속는 거라고.”
비관론이 대세다.
이건.
내가 원하는 거다.
주식은 대중과 반대로 가면 성공이니까.
이거 끝났네. 끝났어.
촉이 정말 왔다.
이거 정말 하늘이 만들어준 기회다.
재채기가 찍어준 세 번째 종목.
전형적인 대폭등 스토리를 가진 종목이다.
생각한다.
이러다 너무 큰 부자가 되면 어쩌나 하고.
판도라 상자를 연 것이 아닐까 걱정도 들었다.
후유증도 생각해봐야 한다.
“먼 친척까지 돈을 빌려달라고 손 벌리면 어쩌지.” 하고.
친구들도 문제고.
“야! 니가 찐친이네. 내가 이번에 사업을 좀 하는데.”
부모님들도 “에휴, 노후가 말이다.” 할텐데.
쪼금 나눠는 드릴께요.
부자가 되면 이래 힘든 인생이 되는 거다.
세상 쉬운 거 없다.
계획도 틈틈이 세웠다.
일단 돈을 번다는 게 증명이 된 만큼, 회사부터 때려치우고, 사무실에, 전문 투자사도 차리고, 비서도 둔다.
사무실 자리는 테헤란로가 나을까, 여의도 증권가가 좋을까 하고 고민도 하고.
회사 이름은.
‘에이치 에쿼티 파트너스 미래 펀드’
정말 진지하게 작명을 한 거다.
현실에 이뤄질 일이니.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제 곧 부자가 되겠구나 하고.
그로부터 얼마 뒤.
정말 그날이 왔다.
임상 결과 발표의 날.
두구, 두구, 두구.
드디어 증명의 날이다.
판도라 상자를 언박싱 하는 날.
하하하.
출근 길 만원 버스 속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웃느라고.
이 버스도 이제 끝이다.
귀찮은데 회사용으로 버스 하나 사버릴까.
회사 건물 앞에 우뚝 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말한다.
“그냥, 이딴 건물 하나 사버려!”
그때.
뒤에서 내 뒷통수를 누가 쳤다.
“야, 자식아. 아침부터 뭔 헛소리야!”
팀장님이다.
팀장님은 내가 특별히 경비로 채용은 해 드릴께.
경비 채용하기 참 좋은 날이네.
"그래두!"
"아야!"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피씨를 켰다.
주식창을 열었다.
역사적인 날이다.
재채기가 증명되는 날.
딩동.
“오늘도 행복한 투자되세요. **증권.”
목소리도 이쁘기도 하셔라.
짜잔.
그리고.
“우와와와!! 이거, 이게, 드디어!! 대박!!”
(이 글 첫 도입부의 그 외침입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죠.)
입이 떡 벌어졌다.
“이야! 아아아아아.”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임상 실패.’
줄하한가.
“아주 그냥 대박을 내는구나! 스벌.”
수익률 –70%
대박 맞다. 마이너스로 대박.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눈물도 안난다.
판도라 언박싱이고 뭐고, 에쿼티 미래 펀드고 뭐고, 회사 버스고 뭐고, 테헤란로고 여의도고, 건물이고 나발이고.
다 물 건너 갔다.
난 살그머니 자리에 앉아 오늘 할 업무를 아주 성실히 진행했다.
“이김정. 니 아까 이 건물 사네마네 안그랬나.”
믹스 커피들고 계신 팀장님이 내 뒤통수에 대고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마마. 이 건물에서 충성하며 영원히 살고싶다고 말하였나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게 진짜 결말입니다)
며칠후, 퇴근때 동료 한명을 불러내 회사 근처 포차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한가지 중히 물어볼 게 있어서.
“내가 한잔 살 테니까 술이나 한잔 하자.”
동료는 마지못해 앉으며, 포차를 못마땅한 듯 둘러본다.
“지난번 쏜다는 거, 이런 걸로 퉁치면 안되지.”
의심도 많아요.
“알아, 알아. 그건 내가 나중에 쏠 거고.(안쏜다, 여러분은 알죠) 내 잔이나 받아.”
소맥으로 맛있게 말아서 한잔 주었다.
“이야. 이김정. 넌 어찌 이리도 소맥을 잘 마냐.”
“기술이지. 기술은 꾸준함. 진심. 나에 대한 믿음. 이 세가지가 있어야 이뤄지는 거야.”
“큭큭큭. 소맥에 철학을 담으셨네 그려.”
그렇게 몇순배의 술잔이 오갔다.
안주로 닭똥집도 먹고, 오뎅탕도 먹고, 남산 골뱅이도 먹었다.
다 내가 좋아하는 거다. 내가 사는 거니까.
“근데 말이야.”
그러던 중 난 궁금했던 걸 비로소 그에게 물었다.
“응? 뭐?”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 동료는 소맥 한잔을 “카아!” 하시고, 남산골뱅이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참이다.
“다른 건 아니고. 다들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는데. 내가 요즘 바뻐서 통 신경을 못썼네. 너한테 뭔 일이 생긴 거야? 대체.”
“아, 아. 그거. 말 마라. 에이고. 뭐 그런 걸 들으려고.”
동료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한번 말해봐. 어서. 내가 도와줄 수도 있으니까.”
“돕긴 뭘 도와. 넌 도울 수 없어. 흐윽.”
그러더니 갑자기 두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F인가. 얘, 왜이리 심약해. 그새 마신 술기운이 올라온 거야.
맞은편의 그가 진정이 되는 걸 잠자코 보다가, 난 재차 물었다.
“그러니까. 한번 말해봐. 난 무슨 내용인지 도통 모른다니까.”
“다른 애들한테 듣지도 못한 고얌?” 울먹울먹 한다.
지랄은.
“난 그때 재채기하느라 바빴거든.”
“재채기? 그게 뭔데.”
“뭐,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어서.”
참 뜸 엄청 들이네. 임금님 수라밥을 만드시나.
“별 거 아니야. 흐윽.”
그는 다시 한번 두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진짜. 짜증.
평소같으면 대굴빡을 한 대 쳤겠지만 참는다.
난 니 대답을 들어야 하니까.
난 참을성을 가지고 집요하게 물었다.
집요한 내 추궁에 못이겨, 한참뒤 결국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얘기는 이렇다.
“한달전쯤인가, 아침에 내가 주식 얘기했잖아. 증권사 다니는 친구한테 추천받은 주식이 있다고. 처음엔 조금 떨어지나보다 하고 말았는데. 글쎄 그게 아예 상장폐지 된다지 뭐야. 지금 거래정지야. 아이고.”
“상장폐지 확실해.”
아니면 안되는데.
“응. 전자공시로 다 확인했어.” 끄덕끄덕.
그렇단 말이지.
“그럼 됐다.”
“뭐가 됐다는 거야?”
“아니, 아니. 내가 혼자 한 말이야. 독백. 근데 추천해준 증권사 친구는?”
마저 다 묻는다.
“걔? 내가 이런데. 걔는 어떻겠어. 집에서 맨발로 쫓겨났지.”
아주 다들 작살이 났네. 이런 흐뭇한 소식이라니.
“이런. 그랬었구나. 안됐네. 그런 거 아무 것도 아니야. 걱정마라.”
아무 것도 아니긴, 뭐가 아무 것도 아니야. 나 같으면 벌써 한강 같지.
실은 이미 전해들은 걸, 당사자에게 들으니 실감이 제법 난다.
이래서 직접 들어야 한다.
이래서 라방을 보는구나 싶기도 하다.
난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상장폐지된 것은 아니니까. 난 너네들처럼 휴지가 된 게 아니다. 적어도 –70% 밖에는 안됐지. 30%는 건졌다는 말씀.’
마음 속 불행이 스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손실율 –70%.
이런 게 진짜 아무것도 아닌 거다.
니꺼는 상장폐지잖아. 그건 휴지조각이 된 거고.
어떤 놈은 집에서 맨발로 쫓겨나고.
그치만 난 30%는 건졌어.
그래. 니들 한테는 미안하지만, 내 불행은 너희들에 비하면 불행도 아니다.
“자, 우리 건배할까.”
“건배 좋지.”
“너의 재기를 위하여!”
휴지가 됐는데, 재기하기 힘들지 않나.
하고 생각하면서.
“위하여!”
"오늘 술 많이 마셔. 내가 사는 거야."
뭐, 라방값은 해줘야지. 계속 불행해줘. 나 행복하게. 그리고 미안해.
후후후.
남의 불행은 곧 내 행복이다. 분명히 그렇다.
정말 미안하지만.
세상은 그런 거다.
그를 위로하며, 난 왜 이렇게 행복해질까 하고 몰래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 휴지나 사러 가야겠다.
아주 엄청.
기분이 정말 좋아지고 있네.
이건 뭘까. 후후후.
(후일담이겠죠.)
“에이취! 에이취!”
“야! 누가 이렇게 재채기를 해.”
“팀장님. 이김정이요.”
“누가 니 마음대로 재채기 하라고 했어.”
“팀장님! 잠시만요. 콧물만 튀면 됩니다.”
여전히 나는 미련을 못버렸다. 재채기 하는 시간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신끼는 한달 2회권으로만 발행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달을 넘긴 오늘 신끼 1회권 발행일 거고.
“에이취!”
“아, 저 자식이. 드럽게. 이거 결재하다가 비껴...아씨. 여기로 튀었잖아. 누가 저 드러운 놈좀 끌고 나가!”
“에이취! 에이취! 모니터로 튀어야 한단 말이에요. 에이취! 에이취! 조준이 잘 안되네.”
“아놔. 저 드러운 자식. 좀 끌고나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