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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김정 Nov 27. 2024

시를 잘 쓰는 방법이 궁금하신가요, 비법이 있습니다




궁금하신 시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글씨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진득하게 들어보세요.    



  

전 글씨에 있어 악필입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거울을 봅니다.

에고.

저는 어쩌다 이렇게 바보같은 중년의 사내가 되었을까요. 그것도 참 모를 일입니다.

어제 저녁까지는 눈이 반짝반짝한 이십대 청년이었던 것 같은데, 훌쩍 넘어온 기분입니다.

외모 얘기는 그만 하겠습니다. 할수록 우울해지는 테마니까요.    

 

아무튼.

글씨 얘기, 계속 하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악필이 된 사연을 굳이 찾자면 이렇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글씨좀 썼다고 자부합니다.

초딩 글씨는 다 거기서 거기니까요.     


그래서일까요. 학교에서는 저학년때 버릇을 잘 잡아두자는 취지였던지, 당시 저학년들만 경필 대회라는 게 있었습니다.

글씨 잘 쓰는 아이에게 상을 주는 겁니다.


딸랑 한명만 주는 건 아니고, 다섯명 정도를 주었던 거로 기억합니다.

학기에 두 번씩, 그러니까 학년내 네 번 개최되었습니다.

헌데 여기서 중요한 규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잘 들으세요.

한번 상을 받은 아이는 학년중 다시 받을 수 없다, 입니다. 연임, 아니죠 연상 금지(말이 좀 이상한데. 여튼).     

이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후후후.”

저도 상을 탈 기회가 있다는 거죠.   

  

그래도 모르니 확실하게 계산해볼까요.

상 받는 아이들을 추산해봅시다. 일년동안 20명이 받는 겁니다.

지금과는 격세지감이 있지만, 당시 반 아이 수가 60명 정도는 되었고요. 3분의 1일이 받는 거니까. 저 안에 설마 제가 못들까요.


교실 안을 돌아다니며 공책을 스캔해본 결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걸 확신했습니다.     

그래, 귀여운 것들 같으니, 계속 그렇게만 써줘라. 글씨 잘 쓰면 미워할꼬얌.   

  

거기다 빼박 증거까지 나옵니다.

세번째 경필대회에서 제 옆 짝이 상을 받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짝의 글씨는 그냥 또박또박 쓴 거지, 잘 쓴 글씨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제 공책의 필기와 정밀 비교를 해봐도 제 것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습니다.

“너, 선생님과 생일이 같은 달이지?”

“어? 그렇기는 한데, 왜?”

“쯧쯧쯧.”

학연, 지연, 혈연, 이젠 하다못해 생일연까지.

이래서 대한민국이 발전하겠습니까.     


어쨌든 이번엔 사활을 걸었습니다.

눈에 불을 켜고. 심장도 태웠습니다.

왜냐면 3학년이고, 네 번째라서, 경필대회는 생애 마지막이었으니까요.

제 인생에 이제 경필대회 상은 이번 밖에는 없는 겁니다.     


해서 용돈을 모아 펜글씨 교습지까지 샀습니다.

불철주야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수불석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을 손에서 절대 놓지 않을 만큼 열심히 공부한다는 말로 저는 펜글씨 교습지를 손에서 절대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집에 틀어박혀있다보니 한가지 애로사항이 생깁니다.

동네 아이들이 집에 우르르 찾아오는 겁니다.    

 

이놈의 인기란.     


“이김정. 나와라! 산에 가서 망까기도 하고, 자치기도 하고, 여자애들 고무줄도 끊고, 되바라지게 실컷 놀아봐야지.”

저희 동네가 서울이긴 한데 뒷산이 있어서 저러는 겁니다. 시골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번듯한 아이 러브 서울러입니다.      


“메뚜기하고 개구리 잡아서 뒷다리 뜯어가지고 야무지게 구어먹자더니! 뭐냐고. 왜 집에만 처박혀있냐고!”

아, 그러니까, 서울에도 야생이 좀 있기는 하죠. 좋잖아요. 각박한 대도시에서 즐기는 생태 학습장 같은 거죠. 하하하.       


“뱀은 언제 잡아줄 거냐고!! 야! 이김정, 이 자식아..크윽!!”

입좀 틀어막았습니다. 생태학습이고 뭐고 이만저만 해야죠. 이것들이.

아무튼 저는 서울러 맞습니다.     


드디어 일생 통틀어 마지막 경필대회가 열렸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유생들은.

아니고, 저희 3학년 1반 학생들은 전의를 불태웁니다.      


그동안의 연습과 혼을 쏟아부어 또박또박 글씨를 썼습니다.

옆의 짝은 이미 상을 탔다고 개발새발 씁니다.

에헤, 이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니. 쯧쯧.    

 

일주일후 드디어 결과가 나왔습니다.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온 선생님 손 안에 든 상장이 묵직해보입니다.     


“오늘 마지막 경필대회 시상을 할께요. 여러분.”

역시나.

침을 꿀꺽 삼킵니다.     


첫 번째 시상자 호명이 시작됩니다.

아이들이 짝짝짝 박수를 치고, 호명된 아이는 앞으로 나가 선생님께 상장을 받습니다.

소감 연습도 좀 했는데, 그런 건 안시키네요.

허례허식은 없애는 게 추세니 공감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까지 시상합니다.

네 번째 아이가 상을 들고 자신의 자리로 의기양양 돌아와 착석합니다.


이제 다섯 번째. 마지막 한명.

제 이름만 남은 겁니다.     


자, 부르세요. 선생님. 이김정이라고.     


헌데 그때입니다.


“다섯번째 시상이죠. 근데 깜짝 놀랄 일이 생겼어요.”

깜짝 놀랄 일?

이김정 같은 천재 명필가를 뒤늦게 발견했다, 뭐, 그런 건가요.

선생님께서 이제야 알아보셨네. 괜찮습니다. 하하하. 그냥 상이나 주시면 됩니다.     


“사실 동점자가 나왔네요. 이를 어쩌죠.”

엥? 동점자. 천재 명필가가 아니고.

그럼, 뭐, 어쩌긴 뭘 어째요. 시상하면 되지.     


“두명이 너무 비등비등했어요. 그래서.”

그래서요? 참 뜸 들이시긴. 밥이 죽이 됩니다.     


“도저히 누가 나은지 가를 수가 없어서.”

없어서. 그건 알겠고요.     


“이번엔 4명까지만 받는 거로.”

4명? 그럼 끝. 여기까지.

뭐시라?     


꺼억! 안돼. 그런 말도 안되는.

아니 5명을 주는 건데.

이건 규정 위반이잖아요.

사장님.

아니, 아니. 선생님.

이건 교장선생님한테 말해야 하나.

규정 위반!!

그냥 2명을 주면 되는 거지. 왜? 왜, 왜냐고!!     


저와 생각이 같은지 아이들 사이에서도 탄성이 일었습니다.


이건 전례가 없는 겁니다. 일년내내 5명씩 주었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다시 선생님이 말을 이으려고 헛기침을 합니다.

“큼큼.”

자, 말해보세요. 해명해보세요. 다 들어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습니다.     


“그렇게 할까 하다가.”

엥?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리고 2명 모두 주는 거로 했어요.”

진짜. 아하. 선생님.

숨 넘어갈 뻔 했잖아요. 심장이 쪼여서 그냥 죽어버리는 줄 알았네.     


아이들도 환호성을 지릅니다.     


“자, 그럼. 그 두명은.”     

두명이나 더 뽑는데. 이건 끝난 거지요.

끝났네. 끝났어.     


“고효숙.”

고효숙? 뭐, 야무지게 쓰긴 하지. 인정.     


“이.”

카하, 결국 ‘이’ 가 나오셨네.

이김정! 이김정!


나 이런. 나 이거 좋아서 어떡하지.

야! 짝꿍아! 예약해라.

상 탄 김에 경필 수상 기념 호텔연회 함 가자.

그동안 용돈 모은 거 1만5천9백원으로 함 쏠게. 호텔연회 녹차빙수 한숟갈 값은 된다.     


“이정호.”

“......?”     

이. 정. 호?

이. 김. 정. 이 아니라.


왜?

왜에~?

이김정이 아니고.

이정호라고.

그러니까.     

음 혹시.

이짜, 정짜, 두 자는 맞았으니까. 그럼 4등인가.

이게 무슨 로또도 아니고.     


그렇게 깨끗하게 낙방한 저는.

에휴.

그 뒤로 글씨와는 인연을 끊었습니다. 문필업계에서도 은퇴했습니다.


무슨 연을 맺기라도 했나, 문필업에 종사라도 했고.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심경은 그만큼 참담했습니다.

마치 실연당한 연인처럼, 토실토실한 양을 놓친 늑대처럼 상처를 깊이 입었다고 할까요.

글씨한테요.     


그때부터 저는 악필이 되었던 것입니다.

될대로 되라 이죠.

상도 못탔는데.

아동심리학에 이런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릴 적 받은 상처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어긋나게 한 겁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있습니다.

악필이 되었다고 해서 딱히 불편한 건 없었던 거죠.

저만 알아보면 되니까요.

그리고 시대가 디지털로 바뀌다보니 손글씨 쓸 경우가 거의 없어서, 딱히 불편하거나 문제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죠.     


과연 어떤 일일까요.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니 어디 가지 마십시오.    

 

회사에서 조문을 갔을 때 일입니다.

직장을 다니다보면 경조사를 많이 다닙니다.

요새는 안그런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거래선 관리도 있고 해서 결혼식장이며, 장례식장이며, 구두가 닳도록 다녔습니다.

구두가 너무 닳아서 밑창이고 옆구리고 뭐고, 나중에는 내추럴 크녹스가 됩니다. 발꼬락도 나오고 너덜너덜.

농담입니다.     


한번은 거래선 임원분의 아버님이 노환으로 돌아가셔서 조문을 간 적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연세도 아흔이 넘으시고 노환이었고 해서, 장례식장 분위기는 밝은 건 아니지만, 어둡지도 않았습니다.     


상주가 거래선 임원이시라, 저희도 상무님, 팀장님, 저 이렇게 셋이 다정히 갔습니다는 아니고.

눈치 보면서 조심조심 갔습니다.

왜냐면 상무님이 그날 무슨 일인가로 굉장히 열받으셨거든요.

“요새 사원들이 어쩌구 저쩌구.” 하시면서.

터지기 직전 활화산 같았습니다.

터지기 직전 급똥같았고요.(이건 비유가 좀 그렇죠)     


빈소에 도착해보니 거래선 회사의 직원들도 많이 동원된 듯 했습니다.

그땐 다들 그런 거 아무 말없이 했습니다.

임원의 부친상이니 죄다 동원됐다고 봐야죠. 이것도 일종의 업무의 연장선이었을 때니까요.


빈소에 들어가기 직전이었습니다.

빈소 입구에서 거래선 직원인 분이 책상을 두고 앉아있다가 반쯤 일어났습니다. 저도 낯이 익은 분입니다. 과장이신가 그랬죠.

그분이 나직한 음성으로 예의를 차렸습니다.

“상무님. 안녕하십니까. 여기 조객록을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조객록.

조문객들이 빈소에 들어가기 전에 저 조객록에 자신의 이름을 세로로 씁니다.

상주에 대한 예의죠.

관혼상제중 장례식의 예절중 하나이고요.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꽤 지켜졌습니다.     


거래선 과장은 굵직하고 금박이 된 붓펜을 상무님께 내밉니다.

붓펜인데 꽤 묵직했습니다.     


붓펜계의 마동석쯤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그런 무거운 붓펜을 상무님은 아무렇지않게 들고 일필휘지로 자신의 이름을 조객록에 썼습니다.

이 양반.

숨막힐 정도의 솜씨네요.

이야.

날아갈 듯 글씨가 멋드러진 게 승천하는 용의 모습 같았습니다. 추사 김정희체군요. 카하!

저렇게 잘 쓰시는 분 처음 봤습니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조문객들도 우연히 보더니 “와아” 하고 침음성이 낮게 흘러나옵니다.

어쩜 저리 잘 쓰시지. 상무는 괜히 다는 게 아니구나.    

 

다음은 팀장님.     

이 양반도.

자세가 전혀 주눅들지 않네요.     

입을 한일자로 꾸욱 다물고 “꾹꾹” 뚝심있게 쓰십니다.

이햐.

이건 뭐, 한석봉체 빼박입니다. 명불허전.

한석봉 엄마가 떡을 좀 썰었다죠.

실은 팀장님 어머님도 떡집을 하셨다는데, 연관이 아예 없다고도 볼 수 없겠네요.

자식 교육은 환경인가 봅니다.     


그 다음 저는 당연히 패스.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만나요.     


왜냐고요. 전 쩌리니까요.

쩌리란 주변을 맴도는 인물. 엑스트라 라는 거죠.

전문 용어로 좆밥입니다.     


“이제 빈소로.”

제가 손으로 가리킵니다.     


“잠시만.”

거래선 과장이 그런 내 팔을 잡았습니다. 야무지게.

턱으로 조객록을 쓱 가리킵니다.     


에이, 어딜 그냥 가시려고, 하는 눈빛입니다.     


전 눈으로 말합니다.

“저 좆밥인데요.”     


그랬더니 과장이 눈으로 말합니다.

“상사 두분께서 저리 잘 쓰시는데, 솜씨 한번 보여주셔야지. 그냥 가시기는.”     


다짜고짜 붓펜을 손에 쥐어줍니다.

마동석 붓펜을.


허억!

휘청휘청.

손이 휘청대는 건 처음 보네요.     

이게 생각보다 정말 무겁습니다.

안에 철심이라도 박았나.     


주위를 재빨리 스캔합니다.

옆에선 팀장님이 “빨리 하자” 눈치를 줍니다.

상무님은 막 구두를 벗으려는 참이고요.

제가 늦어지면, 꽈당 엎어질 수도 있겠더라고요.

고로 기다리게 할 수 없는 겁니다.

게다가 저 상무님 심기를 거슬렸다가는 내일 회사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아무 생각도 안했습니다.

무슨 관운장의 청룡언월도 같은 커다란 붓펜을 쥐어주고, 버티기도 힘든데.

여기다 이름을 쓰라니.     


정말 에라 모르겠다, 였습니다.     


째려보는 팀장님, 뒤에 선 상무님, 거래선 과장님, 그리고 그 옆에 또다른 거래선 직원이 이제 또 얼마나 잘 쓸까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뒷차례를 기다리는 조문객들이 점점 몰려 제 주위를 둘러싸고, 저런 어르신들의 부하이니, 또 어떤 명필 무공을 보일지 기대 만땅으로 구경들 합니다.     


추사 김정희체, 한석봉체, 그 다음은 뭐가 또 튀어나올지 정말 모두가 숨을 죽입니다.     


저도 참 기대가 되네요.     


“휘저적! 휘저저적!”  

   

일필휘지.     


뭐가 나왔을까요.     

음.

낙서죠.

그냥 뭐, 낙서입니다.     

독자 여러분. 대체 뭐가 나올지 기대하신 건가요.

지금까지 설명한 게 그건데.     


그냥 제대로 낙서를 했다고 봐야죠. 이건, 뭐.

제가 봐도 못알아볼 정도니.

분명 제 이름 ‘이김정’을 쓴 건데.     


일단.

사태를 모르는 모두가 갸우뚱합니다.


이게 낙서인가, 추상화인가, 뭐시기인가.     


저분들 입장에선 그렇겠죠.

앞선 두분의 명필 여파가 남아들있으니.

설마 하는 거죠.     

그래서.


혹시나 하고, 거래선 과장이 일동 대표로 제게 묻습니다.     

“이건 대체...”


뭐냐고요.

굳이 알고싶다면 말씀은 해드리지요.     


“중국 5대 서체중 하나로, 한나라의 초서체입니다. 중국의 간체자가 여기서 유래되었지요. 붓의 움직임을 빠르게 하여 장초의 파책마저 없애고, 그 경계를 없애어, 고인께서 훨훨 날아올라 좋은 곳으로 가시라는 뜻입니다. 중국의 장욱, 일본의 료칸이 대가이온데, 미천한 제가 부족한 솜씨를 부린 게 아닌가 민망할 따름이옵니다.”     


카하. 말 한번 잘 한다.     


“초, 초서체. 좋은 곳으로 가시라는. 오호!”

거래선 과장이 그걸 들고 눈이 알전구처럼 커져서 주위에 보여주며 미소 한가득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거, 래니까.


그제서야 사방에서도 탄성이 흘러나옵니다.

“오호!! 이햐!”

“저것이 초서체래. 이햐. 중국 5대 뭐시기라는데.”

“향교에서 수학하셨나보네. 고인과 어떤 사이신가. 어험. 나도 함 봄세.”     


“큼큼.”

상무님이 조문하잡니다.

참 말 주변 없으신 양반일세.

조금 더 즐기면 안되나.     


뭐, 어떻게 됐든, 그날, 상무님, 팀장님께선 저 같은 부하를 둬서 기분이 참 좋아지셨을 겁니다.

장례식장 조문객 분위기도 괜찮았고요.

그럼 됐지요. 뭐.

다음날 상무님이 특별히 저를 불러 박카스 한병을 주시더군요.

“이건?”

“그냥 마셔.”

참, 말주변 없으신 양반일세.     




글씨도 어정쩡하게 써선 안먹힙니다.

제대로 못써야 이게 통하는 거죠.


물론 입도 잘 털어야 하고.     


그렇다고 딱히 거짓말한 건 아닙니다.

글씨의 경계를 없애서 고인께서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랬던 저의 마음은 정말로 진심이었으니까요.     


글씨의 묘를 참으로 깨달은 서예가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은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추사 김정희선생님의 글씨에 대해 동시대 서화가인 유최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저도 글씨를 잘 쓰는 법에 구속받지 않습니다.

물론 너무 구속받지 않아서 탈이지만요.     


제목에 대한 답 나갑니다.


시도 그렇습니다. 잘 쓰는 방법이 있긴 할 겁니다. 방법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그렇지만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진심으로 시를 쓰면 어쨌든 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릇.

인생을 사는 것도 매한가지이겠죠. 잘 사는 방법이야 있긴 하겠죠. 근데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진심으로 인생을 살면 저마다의 인생이 되는 것처럼요.     


제목에 비해 답이 허무해진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경필 상은 꼭 받고싶었는데.

선생님 미워요. 아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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