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줄거리 10초 요약 : 과 MT를 여대와 조인으로 가기로 하는데, 과 여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습니다. 그 여파일까요. 출발 당일, MT 일행을 싣고 갈 셔틀버스의 운전기사들이 전날 술로 뻗어버려 가지 못하게 됩니다. 여대쪽 과대표가 무슨 수가 있다는데 그건 과연 무엇일까요.)
터미널에 도착하자 놀라운 광경이 우리를 기다렸습니다.
뭘까요.
대합실이 주말 나들이객으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던 거죠.
바야흐로 인산인해였습니다.
“뭐가 이렇게 사람이 많아.”
우리는 넋 놓고 있다가, 누군가 “짐을 여기다 내려놓죠.” 하는 목소리에 깨어, 그제서야 짐들을 대충 한구석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냥 사람들 다니는 길에 부려놓았다고 보시면 되죠.
그런후, 화장실에 가네, 간식과 물을 사러 가네, 그 다음은 어떻게 할거냐, 한마디씩들 떠들었습니다. 이것도 큰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안은 인파 소음으로 멍멍할 정도였죠.
어디선가 “울 똥강아지야!” 하는 소리가 들리면, “으와앙!!” 하고 어린애가 울고불고, 난리도 아닙니다.
명절대목 시장바닥 북새통 전쟁통 같습니다.
그때.
“모두 제 말 들어요. 짝짝짝.”
이 와중에 박수를 치며 시선을 모은 이가 있었으니, 여대 과대표였죠.
“각자 볼 일 보시고, 20분 후에 다시 모이는 거로 하죠. 알겠죠.”
자기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할 말만 간단히, 그리고 낭랑히 말했습니다.
“어, 어.”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의 커다란 목소리가 반문합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기를 함 보세요. 어떤 상황인지는 알고있어요?”
어떤 상황인지 알고있냐니요? 대관절 뭔 말이죠.
우리들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가리키는 방향을 봤습니다.
시외버스 운행 현황판입니다.
현황판에는 시외버스의 행선지별로 출발 시간들이 빨간 불로 나와있었죠.
이미 출발한 것은 종료라고 돼있고, 나머지는 판매중이거나 매진으로 되어있는, 그런 현황판이요.
그런데 말이죠. 문제는 현황판 대부분 매진이란 겁니다. 늦은 밤시간을 빼고는.
“설마.”
“허억!”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뭘 말하는지 알 것 같았거든요.
MT 행선지를 재빨리 눈으로 찾았죠
저희 꺼는요
물론 매진.
타려면 밤 9시까지 기다려야...쩜쩜쩜.
오늘은 주말입니다. 게다가 화창한 초가을의 토요일이고요.
놀러가기 좋겠죠.
그러니 그런 주말을 즐기려는 나들이객들이 한꺼번에 몰린 건 당연.
아뿔싸.
네 아뿔싸가 맞습니다.
버스는 끝이란 겁니다.
그럼 기차는?
“이봐 과대표.”
목소리의 주인공이 과대표를 향합니다.
“저런 상황인데, 우리가 갈 수 있을까. 여기서 밤 9시까지 주구장창 기다리던가. 아니면 청량리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던가. 근데 기차도 과연 있을까.”
없겠죠.
이걸 두고.
안봐도 비디오라고 하는 거죠.
우리가 순진했습니다.
애초에 대학 셔틀버스를 빌리려 했던 이유가 이맘때 시외버스나 기차는 단체 표로 잡기 어렵기 때문에 고른 선택이었다는 걸, 어째서 잊었을까요. 그 중요한 걸.
여기 터미널에 와봐야 소용없다는 걸 말이죠.
아, 아. 이 무슨 건망증이란 말인가요.
왜 굳이 우리는 여기까지 온 건가요.
이곳으로 오자고 했던 과대표를 봤습니다. 모두가. 원망의 눈으로.
안할 고생을 사서 한 거네 하고.
“뭐야, 뭐. 왜 날 그렇게 쳐다보는데. 내가 여기로 오자고 한 게 아니야.”
그럼, 누가 오자고 한 건데요.
우리가 잘못 들은 건가요. 분명 한시간 전에 과대표가 여기로 오자고 했는데요. 이제서 발뺌을 하신다.
과대표는 여대 과대표에게 구원의 시선을 보냅니다.
우리도 그녀를 보았죠.
그녀도 공범이겠죠.
뭐든 답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걸 눈치 챘는지, 그녀는 즉답했습니다.
“제가 여기로 오자고 한 거 맞아요. 제가 오자고 했어요.”
당당하네요. 왜죠?
과대표는 거봐 하고 있고요.
“저건 다 예상한 일이에요.”
헉. 예상했다고?
“그러니 제가 아무 방법도 없이 여기에 오자고 했을까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도리 도리.
“그렇다면 저를 믿어보시고, 20분 뒤에 다시 만나자는 거예요. 여기서 누구 탓이니 하는 것보다 빨리 행동에 옮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시간도 없는데.”
대체 어떤 방법이 있다는 걸까요. 20분 뒤에.
다시 물어볼까요.
하지만 비장의 한수를 숨긴 그녀에게 그 다음을 묻는 건 왠지 실례일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그녀가 하는대로 놔두는 게 나을 것 같았죠.
또다시 이러쿵 저러쿵, 훈수 두듯 그게 되니마니 하는 건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라는 예감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녀는 분명히 뭔가를 주머니 속에 갖고 있는 게 틀림없는 거죠.
그리고 사실 우리들이라고 뭐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감나라 대추나라 할뿐.
시간도 문젭니다. 벌써 2시가 다 돼갑니다. 오전 11시에 출발하자는 게 3시간이나 흘렀어요.
일단 그녀 말대로 합시다.
“오케이, 그럽시다.”
그렇게 우린 헤어져 각자의 용무를 보았죠.
그리고 정확히 20분 뒤에 짐이 있는 곳에 다시 모였습니다.
여대 과대표는 이미 와서 팔짱을 끼고, 물끄러미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요.
다 모인 걸 확인하자 그녀는 앞장을 섰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짐을 들고 묵묵히 이동했습니다.
뭔가 나오겠죠.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지만요.
터미널 속의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줄을 지어 한참 걸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안되겠는지, 복잡한 대합실을 피해 숫제 바깥 승강장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미 만원인 버스들을 하나씩 지나치고요.
춘천, 인제, 원통, 속초, 원주, 평창...이런 행선지 팻말들을 지나쳤어요.
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승강장들을 죄다 지나가고 있는 거죠.
혹시 저희를 이북으로 이끌 여간첩 뭐 그런 분 아니시죠.
저 끝에 원산행, 개마고원행이 나온다든지.
어쨌든 불길한 걱정이 들 즈음이었습니다.
우리가 결국 당도한 곳은.
승강장을 다 지나치고, 버스 정비소였습니다.
여긴 왜?
의아했죠.
설마 여기서 버스를 만들어서 가겠다는 건 아니겠죠.
“너네들 공대지. 정비소에서 버스 한 대 후딱 만들어봐. 이런 이쁜 여자들 앞에서 그런 것쯤 못할 거 없잖아.” 하고요.
그런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습니다.
대신 뭔가가 있었죠.
외따로 서있는 버스 한 대.
저건 뭘까요?
대체 뭐하는 버스일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터미널에는 한두대씩 비상용 예비버스란 게 있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출발하려던 버스가 고장나는 사고도 대비하고, 탑승객이 몰리는 노선에 긴급 차량을 넣기도 하는 예비버스였죠.
요컨대 어떻게 터미널과 얘기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비상용 예비버스를 전세버스로 과감하게 빌린 것이죠.
여대 과대표는 그걸 생각해낸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지요.
여대 과대표를 다시 보았습니다.
일단 여간첩은 아니고.
머리가 비상한 걸 떠나 과감한 행동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 과대표는 뭐 한 게 있다고 덥다며 쭈쭈바를 빨고 있고요.
이럴 때 리더는...... 됐습니다. 이젠 제 입이 아픕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물론.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어떤 문제냐고요.
버스가 한 대였단 거죠.
뭘까요.
저 버스는 최대 45인승이란 겁니다.
우리는?
여학생 절반이 갔다고는 하지만, 눈 짐작으로 봐도 60명은 훨씬 넘을 겁니다.
저 한 대에 우리 모두가 탈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는...
“야! 우리 남자들이 기사도를 발휘하자고. 개인 짐은 짐칸에 모두 때려놓고, 남자들은 두좌석에 세명씩 끼여앉아.”
과대표입니다. 이럴 때만 나선다는 기분입니다만.
어쨌든 그렇게 따릅죠.
버스에 모두 올라타고.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갑시다.
드디어 출발.
잠시만.
근데 운전기사는요?
운전석이 썰렁 비어있습니다.
운전기사는 어디 있는 거죠?
음.
기다려야겠군요.
우린 모두 버스에 대기한 채 운전기사를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째깍째깍 흐릅니다.
또다시 운전기사 악몽에 둘러싸입니다.
이러다 트라우마 걸리겠습니다.
한참을 안옵니다.
또 뻗었나요?
슬슬 불안해지려는 찰라, 앞문으로 누군가 탑니다.
칠순은 넘어 보이시는 노인분입니다.
“저기, 이건 경로 관광버스가 아닌데요. 어르신.”
노인이 저를 째려봅니다.
건너편 여대 과대표가 말합니다.
“이분이 기사님이세요.”
“하아.”
누가 한숨을 내쉽니다.
다행이라는 건지, 아니면 아니라는 건지, 모를.
일단 운전기사가 온 거로 합시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칠순이라.
옛말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에 어그러지지 않는 것이 칠순, 고희, 종심이라 했습니다.
위안이 되는 말은 아니지만요.
그런데 말이죠. 정작 걱정할 것은 나이가 아니었다는 걸 바로 알았습니다.
뭐였냐 하면요.
이 분이 소위 작은 키에 깡마른 몸에, 뭐랄까, 이게 전체적으로 너무 작으신 겁니다. 예전 분중에 체격이 몹시 왜소해보이시는 분들이 계셨잖아요.
통아저씨라든지. 대충 그런 분인 거예요.
그게 뭐가 문제냐고요.
처음엔 저도 특별히 신경을 안썼는데, 저분이 정작 버스 핸들을 잡으니까, 살짝 걱정이 되는 거예요.
핸들을 끌어안듯 잡으면서 브레이크는 밟고 계신 건지, 악셀은 누를 수 있는지, 기어로 손은 가는지, 사이드 미러는 보이는지, 바로 앞은 보이시는지, 운전 면허는 갱신하신 게 맞는지 하는 걱정인 거죠.
그렇지만 그런 걱정은 아랑곳없이 노인 기사님께서는 하얀 장갑을 깔끔하게 깔맞춤으로 끼시며.
“카아악! 퉤!”
반쯤 열린 운전석 창문 밖으로 가래침을 오질나게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모자챙에 세월의 때가 반들반들 묻어있는 새마을 모자 같은 걸 눌러쓰시곤, 앞을 응시했습니다.
그리고 뭐랄까. 그 표정이 말이죠.
비장함마저 들어보인다고 할까요.
마치 내 생애 운전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는 느낌이랄까.
제가 앞자리라 다 보였어요. 쓸데없이.
괜찮겠죠. 정말.
헌데 터미널 주차장을 나갈 무렵입니다.
“야이, 개자식아! 어딜 기어들어와!”
아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에 어그러지지 않는 것이 칠순, 고희, 종심이라 했는데.
그런 노인께서 돌직구 욕사발을 망설임없이 날리시다니.
버스 안의 기껏해봐야 스무살 약관, 방년의 남녀 젊은이들은 그냥 얼어붙어버렸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운전은 그럭저럭 하셨다는 겁니다. 그럭저럭.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야이. 그지같은 새끼들아. 깜빡이는 뒀다 뭐하냐고. 옘병할. 크악! 퉤!”
대신 욕 듣다 심장마비, 멘탈 붕괴로 죽을 것 같았습니다.
“이것들은 길바닥에 왜 달구지들은 갖고 기어나오냐고. 지랄, 지랄, 젠장할.”
무사히만 가기를 바랬습니다. 제발.
주말이라 경춘가도로 들어서도 숨이 막힐 것처럼 밀렸습니다.
그래도 일단 가고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밀린다고 해서 후진하지는 않을테니까요.
대신 이게 MT 가는 버스일까 싶을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할텐데, 그런 건 일도 없었죠.
만석에 끼어 앉아서인지, 일단 움쩍 달싹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배가 고팠습니다. 매우.
점심을 거른 상태잖아요.
원래 일정이라면, 오전 11시에 출발해, 1시 정도 도착해서 밥을 해먹을 생각이었죠.
근데 지금은 3시가 넘은 거죠. 팔당댐을 지났나, 안지났나 하는데요.
그동안 우리는 과자 부스러기 말고는 아무 것도 못먹었어요.
거기다 짐을 들고 학교에서 터미널까지 오느라 힘도 쥐어짰고요.
배가 무지 고픈 게 당연합니다. 그러니 기운도 없고, 뭐를 할 여력도, 의욕도, 생각도 없는 거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배고픔과 피곤함을 참으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버스 안은 정적이 “위이잉.” 하고 흘렀죠.
아주 가끔 “아, 저 새끼 끼어드는 거 봐라.” 하는 칠순,고희,종심 노인의 욕지거리가 들려오고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요. 에고.
그렇게 우리를 태운 버스는 거북이지만 조금씩 목적지를 향해 갔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저 역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섬찟 멈추는 느낌이 들어 눈이 떠졌습니다.
정말 버스가 멈춰있네요.
휴게소인가 싶었죠.
근데 창문에 오른쪽은 북한강이고, 왼쪽은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였습니다.
도로 한복판인 겁니다.
뭐지요? 대체?
그때 운전기사가 벌떡 일어나 앞문을 “치이익!” 열고 나가네요.
노인이라 일을 보시나 싶었죠. 아니면 하도 끼어드니까 열 받아서 담배를 피우는 걸지도 모르고요.
우리들은 다시 잠을 청하거나 기다렸습니다.
잠시후 그가 다시 버스 안으로 들어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버스 못가.”
엥?
난데없는.
못간다니요?
이 도로 한복판에서.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다들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왜 그러세요? 기사님.”
앞쪽에 앉은 여대 과대표가 정중히 물었습니다.
운전 기사는 일상을 얘기하듯 덤덤히 말했습니다.
“보면 몰러.”
“네, 뭐를요?”
“뒤를 봐봐.”
우리는 일제히 뒤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뒷좌석에는 일군의 남학생들이 붙어앉아 끄덕끄덕 졸고있는데...
“저기 검은 거 안보이냐고.”
검은 거.
뒷좌석 뒤로 검은 것이 있긴 했죠.
언뜻 보기엔 자외선 차단을 하는 가림막 아닌가 싶은데...
근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네요.
저건.
“연기잖아. 버스에 지금 불이 난 거지. 불 났어, 학생들. 어여.”
너무 덤덤해서일까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얘길하는 것 같았는데요.
불이란 단어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파이어네요.
“꺼억!”
“불이다!” “화재난 거라고!”
“불이 났다고!!”
“어디서?”
“여기 버스에서.”
“그럼 우리는 타 죽는 거네.”
“끼악!!”
“까아아악!!”
“탈출!!”
독자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한 게 있었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어떤 얘기냐 하면요.
이건 비상용 예비버스라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비상용 예비버스라는 건 평상시에는 운행을 안한다는 겁니다. 어쩌다 한번씩 운행하는 땜방용이란 거죠. 알겠죠.
여기서 질문.
이걸 거꾸로 말하면 뭘까요?
왜 평상시에는 운행을 안할까요, 왜 땜방용일 수 밖에 없을까요, 라고 말할 수 있겠죠.
고로 이게 뭔 말일까요.
저게 대놓고 운행할만한 버스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왜 대놓고 운행할 수 없을까요.
그건 실은 당장 고장나도 할 말 없는 버스라는 거죠.
누가 멀쩡한 걸 예비로 쓰겠어요.
이해했죠.
그래서 비상용, 예비용으로만 썼던 겁니다.
마치 운전기사도 비상용, 또는 땜방용인 것도 죄송하지만, 그런 비슷한 맥락인 거죠.
그걸 전세버스로 딱 한번만 쓸 건데, 비용은 쳐드릴테니 내주시면 안될까요 하고 여대 과대표가 설득을 한 거고요.
그런데 결국 이 사달이 났던 겁니다.
하필이면 저 버스의 마지막 날이 오늘이 됐던 거고요.
우린 혼비백산 버스에서 뛰쳐나왔습니다.
“불이다, 불이야!”
“엄마야!!”
“나 살려!”
“빨리 도망쳐!!”
“짐은 어떻게 해?”
그 와중에 누가 소리쳤습니다.
맞네요. 짐을 꺼내야 하네요.
아래 짐칸을 열었더니, 검은 연기가 울컥 쏟아져 나옵니다.
연기로 자욱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누가 저 안으로 들어가 짐을 빼낼 것인가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요.
그때 노인 기사분이 아무렇지 않게 툭 튀어나와 손을 밀어넣더니 나무 갈코리를 꺼내어 짐을 앞쪽으로 빼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작은 체구, 그리고 나이에 맞지 않게 잽싸고도 강단있는 행동입니다.
이분이 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요.
아무튼 노인 감상은 그만하고, 옆에서 우리들은 토출구로 나온 짐을 서둘러 빼내었습니다.
하나라도 건져야하니까요.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가요.
“뭐 큰불까지는 안갈 거고. 엔진이 고마해서 연기나는 거요. 이걸로 끝이지. 니도 그동안 수고많았다. 탕! 탕! 탕!”
버스를 향해 말하는 운전 기사의 얘기입니다.
결국 버스는 연기를 울컥 쏟아내고 경춘가도에서 절명했습니다. 생을 다했습니다. 하필이면 우리가 MT 가던 날에요.
그래도 명복을 빕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실어날랐을까요.
다음 생에는 버스가 되지 말고, 승객이 되렴 하고요.
“이제 우린 어떡하죠.”
누군가 우리가 가장 묻고 싶은 말을 물었습니다.
물론 여대 과대표에게죠.
그런데 답을 할 그녀의 얼굴도 질려버린 표정입니다. 두손, 두발 다 든 거죠.
아무리 비상한 그녀라도 이런 것까진 생각지 못했겠죠.
답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고, 성탄이 되어도요.
그녀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이해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여학생들 얼굴엔 이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철철 넘칩니다.
남학생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지만 그런 말을 입 밖에 꺼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왜냐면 돌아가기엔 우린 너무 먼 길을 와버렸거든요.
무슨 노래 가사 같군요. 아무튼 그랬습니다.
북한강 강바람만이 우리를 반겼습니다. 쌔에앵 하고.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씨부럴, 내가 이제부터 버스를 잡아줄테니 그걸 타고들 가. 여행들 왔으니 가야지. 가서 재밌게 놀아야지, 안그래. 학생들.”
엥?
이 사이다같은 발언을 하신 분은?
나이 칠순, 고희, 종심의 통아저씨 같은, 운전 기사님이십니다.
뭐 말씀은 고맙지만요.
근데 버스를 잡아준다고요. 어디서요? 어떻게요?
우리가 내려선 곳은 경춘가도 한복판 갓길입니다.
도로에는 자가용이며, 화물 트럭이 씽씽 달리고 있었죠.
대체 어디서 버스를 잡는다는 거죠.
설마 도로에 달리는 버스를 히치하이킹 무대포로 멈춰세워서 저희를 태우시겠다는 건 아니겠죠.
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시외버스가 멀리서 다가오면 “워이, 워이” 새마을 모자를 벗어서 사정없이 흔들어 멈춰세웁니다. 이게 좀 격정적인 거래서 제가 버스기사라도 안설 수 없습니다.
안세워주면 도로 한복판에 대자로 누울 판이니까요.
노인 기사는 멈춰진 버스의 앞문에 한발을 걸치고는, 얼굴을 외로 틀고.
마치 그 옛날 알랭드롱이 태양은 가득히에서 요트 갑판에 서있던 포즈마냥 눈부시게 버스기사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물론 버스기사 분이 볼 땐 도로 한복판에서 버스를 세운 왠 미친 통아저씨이지만요.
“너 동서울터미널에서 왔지. 얘네들 가야 하는 거기에 들를 거지.” 라고 통아저씨가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