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월스트리트의 괴짜들
너무나 멋진 장면이다!
그런데 뭔 말인지 모르겠다!
마크 바움의 미팅 요청으로 사무실에 도착한 재러드 베넷. 환대는커녕 까칠한 그의 태도에 지금껏 수많은 투자사들로부터 입구컷을 당했다며, 당신도 나를 놀리려 미팅을 잡았냐고 따집니다. 숫자담당인 비니는 원래 마크란 사람 성격이 저렇다면서 신경 끄고 설명이나 하랍니다. 그 역시 호의적이진 않습니다.
타고난 영업맨 재러드는 젠가를 꺼냅니다. 네 연인들끼리 꽁냥대는 그 젠가 맞습니다. 각 블록에는 'AAA'부터 'B'까지 신용등급이 써져 있습니다. 그건 마이클 버리가 공매도한 쓰레기 파생상품의 구조를 설명하는 기가 막힌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부실하지만 숨어 있는 블록을 빼서 '이것도 개똥, 저것도 개똥'이라 외치며 쓰레기통에 던집니다. 비틀거리던 부실의 탑은 마침내 무너집니다. 소름 돋습니다. 이거 뭐 설득이 안될 수가 없어요.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멋지고 신선한 장면이며,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력이 한껏 뿜어져 나온 명장면입니다. 누구든 이런 PT를 할 수 있다면 스님에게 빗도 팔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비주얼은 멋진데 대사가 너~무 어렵습니다.
상세설명 들어갑니다.
이 장면에서 쌓아놓은 젠가는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부채담보부증권)라는 파생상품을 의미합니다. 금융위기로 확산된 비극의 몸통이죠.
1. 담보 + 빚 + 의무(법적 권리 의 반대말로써의 의무)
2. 리스크를 희석하기 위해 여러 대출증서를 묶어 재탕해 만든 증권
CDO의 탄생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전 글에서 주택시장이 빚잔치로 호황을 누리자 파생상품 MBS(모기지저당증권)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했죠? 그러나 주택의 수는 한정되어 있어 더 이상 팔아먹을 MBS가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절대 팔지 말아야 할 쓰레기 등급인 B, BB, BBB를 포함시켜 새로운 상품 CDO를 만든 겁니다. 어차피 이름만 그럴싸하게 붙이면 됩니다.
MBS는 1차 파생상품, CDO는 그걸 바탕으로 만든 2차 파생상품입니다.
이게새끼쳤네요.(욕 아님)
문제의 등급들은 최저 신용자에게 빌려준 부실대출입니다. 여기에 일부 높은 등급의 파생상품을 끼워 넣어 신용평가사에 들고 가면 당시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90% 이상 'AAA'등급을 주었습니다. 안 그러면 고객을 놓치니까요. 등급 잘 주는 다른 신용평가사로 가버립니다.
이렇게 탄생한 CDO는 선순위가 엉키고 부실과 우량이 뒤섞여 그 기초자산이 뭔지, 진짜 가치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문제가 발생해도 고칠 방도조차 없습니다. 얘네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이유는 끝없이 신상품을 만들고 팔아먹어야 수수료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용어 하나 더 설명합니다. 재러드 배넷은 B라고 적힌 초고위험 모기지 채권 블록을 빼서 쓰레기통으로 던지며 "파이코 스코어가 바닥을 찍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저 신용자들이 집살 때 빌린 돈을 못 갚을 위험에 처했다는 뜻입니다.
❋ 파이코 스코어(FICO Score) : 미국에서 사용하는 개인 신용평가 척도입니다. 페어아이잭코프社가 산정하고 있으며 주로 저신용자들의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기준에 가깝습니다. 금융거래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 이용정보까지 취합하므로 금융거래 정보가 부족한 소외계층의 신용도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금융업의 목적은 고객의 행복이 아닙니다. 성과급에 목매는 직원들은 개인 실적 올리기에 급급합니다. 말은 이렇게 하죠. ‘아주 좋은 상품이 있는데요.’ 진심인가요? 그렇게 좋으면 본인이 많이 하시지 굳이 나에게? 하지만 그들은 늘 당신의 삶과 재산과 미래를 걱정하는 척 광고합니다.
진짜 금융공부는 이자율을 계산하는 게 아니라 이 속성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잘 이해하면 이것을 유용한 '도구'로 쓸 수 있습니다. 무작정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거나 믿고 맡겨 부자 되겠다는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저도 진심으로 나를 위해 존재하는 금융회사와 직원이 있다고 믿는 분들에게 망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재러드가 미쳤다 싶은 열정적 PT를 끝나고 돌아간 뒤 마크 바움의 팀은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금융으로 잔뼈가 굵은 그들에게도 이 말도 안 되는 주택시장의 난장판과 듣도 보도 못한 파생상품은 낯설고 당혹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것이 곧 붕괴할 것이고 어떤 미친 남자가 거기에 거액을 배팅했다니요.
재러드는 마크 바움에게 그렇게 혐오하던 월가의 아귀다툼에 당신도 동참하라는 말을 던지고 간 것입니다. 팀원들 간의 갑론을박이 오갑니다. 여기서 마크 바움의 이중적 태도가 명배우 스티브 카렐의 소름 돋는 연기로 드러납니다. 지금의 금융 시스템이 얼마나 약탈적인지, 기득권의 탐욕은 어떻게 용서받지 못할 바벨탑을 쌓고 있는지 강조하면서도 그는 내심 재러드의 말이 맞기를 바랍니다.
그래, 니들 모두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연쇄 살인마가 집 밖을 돌 아닌다며 치안상태를 비난하던 사람이 정작 자신은 거대한 장례식장을 차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마크 바움은 재러드의 말이 맞는지 팀원들을 주택시장 현장으로 보내 실사를 지시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