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존중받고 싶다.
독일 소도시에서 비교적 전통 있는 페스티벌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행운이다.
특별히 상주 공연장이 있지 않아서 매번 공연장을 빌리고,
공연장 관계자들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이런 상황은 내가 속한 사무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사무실에서 비록 두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있으면서 느꼈던 것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음악가 입장에서 봤을 때 인상 깊었던 것들을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타 지역에서 오는 음악가들을 위한 배려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코로나 덕분에 나는 물건 포장의 달인이 되었다.
코로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스크와 자가진단 키트 이야기이다.
체코에서 오는 합창단, 그리고 연습하러 오는 성악가들에게 모두 마스크 5개 (FFP-2)와
자가진단 키트 두 개씩 지급되었다.
하이덴하임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오페라 축제이기에 도시 자체가 생소할 수 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는 시가지의 기본적인 길들이 나와 있는 지도와 추천할만한 식당들 주소와 오픈 시간,
출연진들과 스텝들의 연락처들, 주차장 이용권까지 준비해서 배급하였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진행된 연습 일정과 공연 일정, 그에 따른 준비사항들을 큐시트처럼 만들어
매일매일 출연진들에게 이메일로 알렸다. (변경사항과 공지사항 또한 매일 업데이트된다.)
스텝들 중엔 무대 설치 관련된 기술자들이 있고,
전문적으로 식사를 담당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난 공연에 필요한 소품과 의상, 무대 설치에 대한 준비는 물론,
이런 세심한 부분들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며 감명을 받았다.
철저한 계약서와 페이 관리
공연 연습 일정이 시작되기 전,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보게 된 서류가 있었다.
그것은 출연진들의 계약서들이었다.
물론 출연진들이 많았기에 계약서는 많은 분량이었다.
큰 역할, 작은 역할 할 것 없이 모든 출연진들은
하이덴하임 시청과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로 연습에 들어갔다. (공연을 한 번 밖에 안 할 지라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담당자들 간의 협의 하에 계약이 체결되는데,
오페라에 출연하는 출연진들은 기획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개개인 별로 계약이 체결되는 게 신기했다.
출연진들 대 부분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꽤 높은 개런티를 받았다.
그리고 이 개런티는 두세 번 나눠서 계좌이체되었다.
간혹 지체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사무실에서 일하는 난 이 과정에 있어서
사무실 사람들과 시청 사람들이 이 일을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려고 하는지 볼 수 있었다.
지체는 있어도 후불은 없었다.
모든 직업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돈이 없으면 생계가 힘들다.
분명 한국에도 인기를 많이 얻음으로써 많은 돈을 버는 소수의 연주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창한 커리어를 가지지 않았다 해도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와 페이는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노동에 대한 문제는 음악계만의 문제 이전에
임금 체계 전반적으로 현실 물가를 잘 반영하지 못하는 게 1차적인 문제 일 지도 모른다.
(피아노 학원이 너무 많은 탓에 요즘의 원비들도 대 부분 10년 전 가격 그대로인 것처럼)
하지만, 계약서는 세금 문제를 비롯해서
여러 공적인 시스템 안에서 예술가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정규직만큼은 아니겠지만, 대부분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한국의 예술가들이
최소 법적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