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상시에 검사를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사실 평생을 살면서 검사, 변호사, 판사를 만나지 않고 사는 삶이 가장 좋을 거다. 그러나 어디 세상일이 꼭 나의 바람대로 되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법정을 오가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돌아보면 나도 살면서 두 번 정도 법정을 오갈 뻔 했다. 한 번은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해 부당해고 소송을 낸 적이 있었고, 한 번은 전세금 문제로 소송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이럴 때 우리는 가급적 법 때문에 고생하고 싶지 않고, 재판정에서 굴욕감을 느끼고 싶지 않으며, 변호사에게 적당한 가격에 제대로 된 법적 서비스를 받고 싶다. 그리고 나를 해고한 회사 경영진이, 내 쥐꼬리만한 전세금의 일부를 떼어 먹으려 한 배불뚝이 집주인이 법적 책임을 물기를 바란다. 그런데 막상 이 상황이 되면 법적 서비스를 받는 게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누구에게 상담을 해야 하는지도 아리송하고, 변호사를 선임해서 소송해봐야 비용과 시간의 부담이 커 대충 합의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듣게 된다. 법적으로 싸워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법적으로 대응했을 때 받을 피해가 더 크다는 이야기도 꼭 뒤따른다. 법은 내가 잘 지켜야 하는 제도이지, 현실적으로 내가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이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다. 30대 시절 내가 팬처럼 따라다니던 한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는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한 켠에서 근무를 했고,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이명박 정권 시절 검찰에 끌려가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조사를 마친 후 마주했던 그의 표정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는 이후 휴직을 했고, 해외로 자비 연수를 떠났으며, 결국 그 조직을 떠났다. 그를 옆에서 지켜 본 나는 검찰이라는 조직이 정말 무섭다는 막연한 감정을 가졌던 듯싶다. 그리고 이 막연하면서도 명징한 감정은 검찰을 피의자가 됐든, 참고인이 됐든 경험한 주변사람들의 풍문에 의해 확대되곤 했다.
법이 가진 자에 유리하고, 가난한 자에게는 불리하게 적용되는 데에도 형사소송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장하는 검찰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인식이 있다.
가난한 자, 노동자, 소수자에 불리한 사례 하나.
“이해영씨는 하청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다. 노조를 만들다 해고됐다. 해고 후 정규직 노조 사무실에서 5개월을 버티다 구속되었다. 집행유예로 석방된 후 해고 무효 소송을 냈지만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패소했다. 그 사이 회사는 법원으로부터 이씨에 대한 출입금지 가처분 결정도 받아놓았다. 노조 지회장을 하면서도 회사 출입이 쉽지 않았다. 파업을 하면 용역회사가 끌어내 논바닥에 내다버리곤 했다. 그 내용을 고소하면 처벌받는 것은 회시가 아니라 해영씨였다. 출입금지 상태에서 회사에 들어가 업무방해를 했다는 것이다. 불법파견을 문제 삼아도 검사는 회사 측을 무혐의 처리했고 늘 노조원만 기소되었다. 검사들은 늘 ‘너는 노동조합활동 하는 애고, 너의 세계관과 나의 세계관은 다르고, 너는 어차피 그렇게 하면 구속돼서 살 거 각오하고 하는 애 아니냐?’ 이런 태도였다(김두식, 2007, p. 77).”
어릴 적부터 전교 1등만 달리던 검사들이 보통 사람의 애환, 고뇌, 눈물을 이해하는 건 왠지 쉽지 않을 거다. 철학자 변상황은 약자가 권리를 침해받고 있을 때는 침묵하던 법이, 견디다 못한 약자가 그걸 세상에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뒤늦게 개입하여 약자만을 처벌한다고 개탄하는데, 이 말이 아주 과장된 건 아닐 거다(같은 책, p. 82).
KBS에서 밥벌이를 하면서 내 다이어리를 보다 가끔 놀랄 때가 있다. 오늘 점심도, 내일도, 모레도, 나와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은 의도치 않게 미디어 업계나 학계에 있는 사람들로 한정될 때가 많다. 검사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일상적으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사람의 대부분은 법조계에 걸쳐 있는 사람들일 거다. 소위 법정이나 조사실이 아닌 일상적 관계를 맺는 사람들 중에 사대문 밖 저자거리의 피땀눈물이 온몸에 밴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은 없을 거다. 그러다보니 감수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 “키스를 책에서 배웠어요.”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어떤 아픔과 상처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법정 안 세계와 법정 밖 세계의 온도차가 크다 보니, 검찰을 오간 경험이 있는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검찰에 대해 별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안 좋은 경험은 좋은 사례보다 소문도 빠르고, 기억도 오래가는 법. 검찰과 시민들의 간극은 그렇게 점점 멀어져간다.
그런데 좀 더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해보면, 검찰이 우리를 모르는 것처럼, 우리 역시 검찰을 잘 모른다. 욕하고, 조롱하기만 하지 그들이 사는 세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는 거다.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JTBC에서 어제 시작한 검사내전을 보면 알 수 있을까?). 수없이 쏟아지는 검찰발 기사, 그리고 <더 킹>, <비밀의 숲>과 같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해들을 뿐이다.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검사 이야기 중 내게 최고의 스토리는 <비밀의 숲(이수연 작가, 안길호 PD, 조승우, 배두나 주연>이다. <비밀의 숲(2017년)>의 큰 줄거리는 이렇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된 검사 이창준(유재명). 검사 스폰서 박무성의 살인사건을 사주한다. 그리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후배 검사 황시목에게 사건을 조사하도록 배정한다. 왜? 이제껏 수십년간 지속되어 온 검찰과 대거업 한조의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서다. 외톨이 무감정 검사 황시목은 정의롭고 따뜻한 형사 한여진과 함께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데... 결론은? 민정수석 이창준이 (자신의 계획대로) 비리를 고발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목숨을 끊으면서 이창준은 유서에 이런 말을 남긴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현실은 대다수의 보통사람은 그래도 안전할 거란 심리적 마지노선마저 붕괴된 후다. 사회 해체의 단계다. ... 검사로서 19년을 이 붕괴의 구멍이 바로 내 앞에서 무섭게 커가는 걸 지켜만 봤다. 설탕물 밖에 먹은 게 없다는 할머니가 내 앞에 끌려온 적이 있다. 고물을 팔아 만든 3천원이 전 재산인 사람을 절도죄로 구속한 날도 있다.
낮엔 그들을 구속하고 밤엔 밀실에 갔다. 그곳엔 말 몇 마디로 수천 억 원을 빨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난 그들이 법망에 걸리지 않게 지켜봤다. 그들을 지켜보지 않을 땐 정권마다 던져주는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받아 적고 이행했다.
우리 사회가 적당히 오염됐다면 난 외면했을 것이다. 모른 척할 정도로만 썩었다면 내 가진 걸 누리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내 몸에서 삐걱 소리가 났다. 더 이상은 오래된 책처럼 먼지만 먹고 있을 순 없다.
이 가방에 든 건 전부 내가 갖고 도망치다 빼앗긴 것이 돼야 한다. .. 끝까지 재벌 회장 그늘 아래 호의호식한 충직한 개한테서 검찰이 빼앗은 거여야 한다. 그래야 강력한 물증으로 효력과 신빙성이 부여된다. 부정부패가 해악의 단계를 넘어 사람을 죽이고 있다. 기본이 수십 수백의 목숨이다. ...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누군가 날 대신해 오물을 치워줄 거라 기다려선 안 된다. ... 이제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치워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나의 이것이 시작이길 바란다.
그리고..
“이창준의 죽음”에 대해 후배 검사 황시목은 <이창춘 게이트가 드러낸 정경유착의 현실>이라는 방송에 출연하여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그 분의 유언, 끝까지 재벌에 충실했던 앞잡이로 남게 하라. 그래야 본인이 남긴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전 그렇게 죽은 이창준이 괴물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본인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저는 세상에 더 큰 목숨, 더 작은 목숨은 본 적 없습니다.
어떤 경찰 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되니까 하는 거라고요. 눈감아주고 덮어주고 침묵하니깐 부정을 저지르는 거라고요. 누구 하나 제대로 부릅뜨고 짖어대면 바꿀 수 있다고요.
검찰은 눈을 부릅뜨는 역할에 실패했습니다.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사정기관으로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부와 권력에 맞춰서 적용했습니다. 그리고 시민이 아닌 범죄자를 비호했습니다. 검찰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에 실패한 겁니다.
그 실패의 누적물이 이창준 전 검사장이며, 우리 검찰 모두가 공범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사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이 국민 여러분을 실망시켜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 집행관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헌법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있습니다. 헌법이 있는 한 우리는 싸울 수 있다. 우리 검찰 더 이상 부정한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다시 한 번 싸우겠습니다. 기소권을 더 적합한 곳에만 쓰겠습니다. 검찰의 진정한 임명권자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헌신하겠습니다. 더 이상 우리 안에서 괴물이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지막회 이창준 검사와 황시목 검사의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이수연 작가가 검찰을 관찰하고, 검찰에 이야기하고 싶던 핵심 메시지였을 거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비밀의 숲>을 발판으로 삼아 검찰 내부로 한발 더 들어가 본다.
핵심 텍스트는 김웅 검사의 <검사내전>이다.
월화드라마 <검사내전>의 시작과 함께 발맞추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