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검찰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한편으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뭐 굳이 검찰 이야기야?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설사 상관있다 하더라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한다고 검찰이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 검찰개혁이 제도의 문제이고, 변화의 공감대가 만들어진 상황이라면 이제는 국회를 중심으로 법조계의 전문가들이 고민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가면 되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검찰 관련한 이야기를 지난 두 달간 모으면서 느낀 것은 한마디로 나이브한 생각이었다.
앞서 검찰의 역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무현 정부의 검찰개혁에서 얻은 소기의 성과 중 하나는 검찰의 중립성을 제도적으로, 그리고 현실에서 완벽하게 보장해 줬다는 데 있다. 사실 검찰은 그 기조만 잘 유지했더라도 지금처럼 욕을 먹는 집단으로 전락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그 좋은 기회를 이상한 방식으로 허비했다. 나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완벽하게 담보된 노무현 정부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불거진 수많은 검찰 관련 이야기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권 탄압과 무리한 정치 수사들의 이야기들을 새삼스럽게 다시 떠올리면서, 그리고 이 기억을 소환케 한 2019년 검찰의 무리한 행보를 보면서 모든 권력기관의 개혁은 절대 스스로의 선한 의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검찰개혁을 추진할 강력한 주체가 필요한데, 그게 지금으로서는 국회도, 언론도, 경찰도, 그 어떤 권력기관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 중 검찰 앞에서 당당한 사람이 너무도 적기 때문이다.
국정감사 기간, 어디서든 오만하고 거드름을 피며 소리를 지르던 국회의원들이 윤석렬 검찰총장 앞에서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학생같이 질문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의 어떤 권력기관이든 검찰개혁의 주체가 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든 약점이 있다 보니 검찰은 비정상적으로 과도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시민들의 적극적 개입이 없다면 앞으로도 이 권력은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개혁의 핵심은 검찰뿐만 아니라 입법, 행정, 사법, 언론을 움직이게 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다. 개별 시민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검찰 권력을 감시하고, 왜 검찰을 개혁하지 않느냐며 입법과 행정을 압박하고, 국가가 개인에게 과도한 공권력을 행사할 때 “너희 그러면 안돼지!”하고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인권과 민주주의 감수성을 키워가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한마디로 다시는 총선에서도 대선에서도민주주의의 빽도가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그런 맥락에서 다음 총선은 중요하다.), 투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기관의 개혁에 시민들의 참여와 감시가 좀 더 촘촘하게 이루어져야한다는 거였다.
현실적으로 권력기관의 개혁에 시민 참여와 감시를 늘리야 한다하면 “시민참여제도”, “국민참여재판”, “시민모니터링제도” “시민옴브즈맨 제도” 등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볼 때 이건 필요하지만, 개혁의 핵심은 아니다. 가령 KBS를 시청자 중심으로 개혁한다면서 시청자위원회를 정례화하고,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와 옴브즈맨 프로그램을 의무 편성한다고 하여 공영방송 개혁이 이루어지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거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좀 더 다양한 성별, 계층, 지역, 세대의 시민들이 KBS 무대에 진입해야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 검찰은 더욱 그렇다. 전교 1등만 쭉 해오다 그 어려운 사법고시를 통과한 스카이 대학의 최고 똑똑이들, 그것도 남자들만 잔뜩 모아놓고 개혁을 논하는 건 그 자체가 넌센스다.
나는 그런 이유로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로스쿨이 만들어진 것이 우리 사법 시스템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로스쿨에 대해 ‘에구 이제 돈 있는 집 애들만 법조인이 되는 시스템을 만든거잖아.’ 이런 생각이 있었는데 이야기를 모으다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노무현 정부가 로스쿨을 만든 게 이런 이유가 있구나, 이런 걸 이해하게 되었다고 할까? 로스쿨의 목적은 불멸의 신성가족을 해체하는 거다. 이를 통해 보통의 시민들이 좀 더 쉽고 편하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게 함이고, 검찰과 법원의 다원성을 넓혀가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검찰로 이야기를 좁혀 보면 한국의 검사 수는 현재 약 2,000명, 비교 차원에서 보면 우리보다 인구 수가 약 6배 많은 미국의 경우 검사 수가 우리의 20배가 넘는다(4만명의 주검사와 지방검사 + 6,200명의 연방검사). 좀 더 다양한 경력과 경험, 삶의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로스쿨에 입학하고, 이들이 검사로 임용되는 문을 넓혀가는 것, 이는 검찰 개혁의 첫 번째 조건이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이런 우려를 한다. “검사 숫자를 늘리면 조직이 확대되고, 그러면 검찰 권력은 더 힘이 세지는 것 아니야?” 그렇지 않다. 지금 검찰 권력의 힘이 센 것은 그 조직 자체가 소수 정예로 거의 동질적인 엘리트 그룹들이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다. 개혁은 똘아이들이 하는 거다. 검찰 내에 똘아이 공수부대를 투입하기 위해서는 문을 넓혀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양이 질을 바꾸는 거다.
검찰은 돌아보면 200여 년 전에 생긴 직업이다. 단기간에 국제 상품이 된 데는 이것이 절대 군주의 권력(현재로서는 대통령)을 견제하고 자의에 의한 통치를 막으며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따라 통치하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실현에 있어 가장 적합했기 때문일 테다(김웅, 2019, p. 418). 검찰과 국회, 대통령, 법률, 민주주의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검찰 개혁이란 국회 개혁, 사법 개혁, 정치 개혁이라는 큰 틀의 연결고리 하에서 고민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즉 국회가 믿음을 얻고, 법이 공정하고 제대로 기능한다고 느낄 때, 검찰 개혁이 가능한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4월 총선은 중요하고, 그 총선의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일환으로 선거법 개정 역시 중요할 수밖에 없다.
각론으로 들어가 쟁점이 되는 검찰 특수부 폐지,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의 면면에 대해 외부자의 시선을 가진 내부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우선 검찰 특수부 폐지에 대해 2002년까지 검사로 활동했던 이언주 변호사는 ‘검찰이 국민의 인권 수호자가 되기 위해 지금의 특수 수사 같은 것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김현정, 2019, 10, 16). 왜냐하면 “일단 인력을 투입하면 거기서 결과가 나와야”하고, “속성상 한 번 파면 자꾸 파게 돼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수사를 개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사 출신의 신평 변호사는 특수부 폐지는 재앙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앙 권력으로 국정을 농단하거나, 무자비하게 이익을 사유화하려는 이들을 잡아들이는 게 특수부의 역할이다. 오·남용 부작용만 강조하고 특수수사의 순기능은 얘기하지 않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온다. 힘이 센 수사조직이 우리나라 검찰 특수부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 뉴욕 검찰만 봐도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특수부 수사를 한다. 그렇다고 폐지가 거론되지는 않지 않나. 그러면서 경찰에 수사 종결권을 줘버린다? 그 시점부터 오히려 경찰은 불행해질 것이다. 국민의 불신은 검찰이 아닌 경찰을 향할 것인데, 논의되는 '자치경찰제 도입'만으로는 경찰의 비대화를 막을 수 없다. 경찰에 권력을 넘겨만 주고 통제장치는 거의 마련하지 않은 셈이다(시사저널, 2019, 11, 19).”
어떻게 생각하는가? 법무부는 지난 10월 특수부 이름을 반부패수사부로 바꾸고 서울중앙·대구·광주 등 세 곳의 검찰청에만 남기기로 결정했다. 반부패수사부의 담당 업무도 ‘공무원의 직무 관련 범죄’, ‘중요 기업 범죄’, ‘전자에 준하는 중요범죄’로 한정하여 기존 ‘검사장이 지정하는 사건 수사’에서 범위를 대폭 줄였다. 이 정도면 신평 변호사가 우려하는 특수부의 순기능을 살리면서 특수 수사가 가진 폐해-별건수사, 표적수사, 과잉수사, 피의사실공표 등-를 일정부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름만 바뀌고, 여전히 윗사람과 정치권력의 지시로 수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둔다면 특수수사의 부작용 위험성이 여전히 상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유시민 작가는 ‘영업 안 되는 데는 문 닫고 잘 되는 곳은 간판만 바꿔서 가면 신장개업이지 없어지는 게 아니다’라며 ”간판을 바꾼다고 메뉴가 달라지지 않는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중앙일보, 2019, 10, 12) 이에 특수부 축소는 장기적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를 대폭 축소/폐지해 나가는 방향 위에 자리 잡아야 하는데 이에 대해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앞으로 특수수사를 포함해서 하여튼 검찰의 1차적 직접수사는 획기적으로 줄여야 됩니다. 그래야지 이 소위 검사의 객관의무라는 게 살 수가 있거든요. 객관의무라는 게 뭐냐 하면 이게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서 없으면 과감하게 무혐의 처리할 수 있는 그런 입장이 있어야 되는데 특수수사를 하게 되면 (검찰이) 일반 당사자가 되어버리죠. 무조건 (무리를 해서라도) 피의자를 기소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한겨레신문, 2019, 10, 9)”
검찰 특수부 축소 및 폐지와 맞물려 직접 수사를 하더라도 관행적으로 해오던 인권 침해적 행위들, 공개소환이라는 명분 하에 포토라인 위에 세워 개망신을 주는 행위, 검사 개인의 판단에 의해 언론에 찔끔 찔끔 피의자에 대한 사실을 흘려 공개 망신을 주고, 피의자에 불리한 여론을 만들어가는 피의 사실 공표, 피로에 지쳐 거짓이든 진실이든 자백할 때까지 집에 보내지 않는 심야조사 등에 대해서도 검찰 스스로 제시한 개혁안(2019년 12월 1일 법무부의 ‘인권보호수사규칙’,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행 규정’ 개정안이 시행됨)들이 실질적으로 이행되는지에 대한 감시와 위반 시 엄중한 문책이 필요할 거다.
다음으로 공수처 신설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상존하지만 전반적으로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는 입장이 우세하다. 한국의 검찰권이 과도하게 강하고, 이 강함 때문에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검찰이 가진 권한을 분산시키고,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근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공수처 찬성의 주된 논거다. 이 논거는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새로운 권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법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법이 법조인, 정치인, 경제인 등 권력층에게 좀 더 무겁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은 맞추어 집행된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 거다. 적어도 지난 시절 검찰, 경찰, 특검은 모두 여기에 실패했고, 그런 의미에서 2020년의 시점에서 공수처는 필요한 거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공수처 신설을 반대하는 대표주자는 검사 출신의 국회의원 금태섭 위원이다. 금태섭 국회의원이 공수처 신설에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새로운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에 대한 우려.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사법 과잉, 검찰 과잉이 문제인데 또다른 사정 기관을 만드는 것은 시대적 과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거다. 둘째,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 공수처라는 게 전 세계 어느 국가에도 없다는 것이다. 잘 되는 예를 찾아 우리 제도를 고치면 되지 굳이 실험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글로벌 스탠다드는 뭘까?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다. 어느 나라도 대한민국 검찰처럼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기관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거다. 셋째, 공수처가 설치되면 악용될 위험성이 크다는 우려. 제도는 선의를 기대하고 설계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나쁜 정권이 들어서면 악용될 위험이 크다는 거다(금태섭, 2019, 4, 11).
그의 이야기 중 가장 새겨들어야 하는 부분은 세 번째 논거다. 공수처가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힘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는 공수처 설치의 세부 제도를 만들어갈 때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새로운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에 대한 우려는 기존의 사정기관이 공정하게 정치, 경제 권력을 견제, 감시, 통제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장기적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로 가기 위한 중간지대의 성격으로 공수처를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맥락에서 공수처 설치에 대한 신평 변호사의 의견은 귀기울일만 하다. 그는 공수처에 대해 조건부 찬성 입장을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검찰 조직에 대한 비상적인 조처는 필요하다. 공수처를 한 10년 정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검찰이 정화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 공수처는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검찰의 공정성이 이후 향상된다면 공수처가 왜 필요 있겠나. 공수처가 불필요해지는 시점에 사법 개혁은 완수될 것이다"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5년에 한 번씩 번거롭게 진행되고 있는 방송허가 제도(5년을 원칙으로 하되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허가 및 승인의 유효기간을 단축할 수 있음- 방송법 시행령 제 16조 )를 차용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한다. 방송허가 제도가 있는 이유는 심플하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공적 책임을 높이기 위해(방송법 제 1조). 공수처도 목적이 사법의 공적 책임을 높이는 것이라면 5년을 주기로 그것의 필요성을 검토하여 존속 여부를 결정하면 어떨까? 개혁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성이 중요하다. 공수처 설치 후 공수처의 활동뿐만 아니라 검찰, 법원, 경찰 등 사정 기관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면밀히 관찰, 검토하면서 이후 공수처의 역할, 기능, 존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은 현재 올라온 패스트트랙 안을 가지고 경찰과 검찰의 갈등이 첨예한데, ‘수사종결권’, ‘수사지휘권’ 등 관련된 쟁점들에 대해 경찰 이야기를 들으면 경찰 이야기가 맞는 것 같고, 검찰 이야기를 들으면 검찰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여기에 현혹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밥그릇 다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인권, 안전, 자유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사권이 과도하게 남용되지 않고, 공정하게 집행되는 거다. 그리고 설사 수사 과정에서 나쁜 공권력(형사든 검사든)을 만나 시궁창에 빠져도 그 이후 공소와 재판 과정에서 이것이 제대로 필터링되고, 이 나쁜 공권력에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면 되는 거다. 그러니깐 핵심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내 자유와 권리가 향상될 수 있는 방향을 찾으면 되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다. 수사는 경찰에 맡기고, 기소는 검사에 맡기고, 최종 판단은 판사에 맡기는 거다. 지금처럼 검찰이 수사의 시작, 수사 방법 선택, 수사 이후 기소 여부, 기소 후 공소유지, 재판의 관여, 상소, 재판의 집행, 영장의 청구, 경찰 수사에 대한 지휘 등 수사와 재판에 필요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고, 이 위험성은 이미 한국 현대사에서 충분히 입증되었으며, 그리하여 적어도 저자거리와 관련된 민생치안 범죄에 대해서는 경찰이 독자적 수사권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이 수사 과정에 ‘미친 똘아이 경찰’을 만나면 검찰이 기소권을 바탕으로 견제, 감시하고, 법원이 이 똘아이 경찰에 대해 엄중 처벌하면 되는 거다.
물론 경찰이 권한이 커지는 만큼 이를 통제하는 장치는 필요하다. 지금 검경 수사권 논쟁에 있어서 쟁점이 되는 것도 결국 경찰의 비대화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이는 법원과 변호사에 의한 견제, 행정경찰과 사법경찰의 분리, 자치경찰제 시행방안의 구체적 로드맵 마련 및 시행, 경미 범죄의 비범죄화, 내부 감찰 활성화, 수사와 관련한 경찰의 전문성과 인권 감수성 강화,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경찰(감찰)위원회 등을 통한 문민퉁제 강화 등을 통해 충분히 통제 가능토록 관철시켜 나가면 된다. 변화가 두렵다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 검찰의 수사기소권 독점을 그냥 그대로 놓아두어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문재인‧김인회, 2011; 최강욱 등, 2017).
검찰 특수부 폐지,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은 모두 과도하게 집중된 검찰 권력을 분산하고, 견제하는 조치들이다. 제도라는 것은 큰 줄기보다 세부적인 디테일이 중요하다. 하나의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그래서 하나의 명품 콘텐츠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정치해야 한다. 그러나 디테일에 대한 부분에 있어 갑론을박이 있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해서 포기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도 없다.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면 검찰의 힘이 크게 느껴지던 시대는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컸던 정권 때였다. 김장헌 교수의 이야기처럼 민주적인 권력에는 강한 비수를 들이대지만,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권력이 들어서면 일신의 안위를 위해 충복이 되기를 자처했다(오마이뉴스, 2019, 9, 26). 제도라는 것은 어떤 정권이, 어떤 사람이 권력을 잡든 거기에 흔들릴 수 있는 여지를 줄여 나가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첫 번째 발자국이다. 2019년 12월 우리 사회는 이 발걸음을 떼기 직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게 있다면 검찰 개혁의 첫 한걸음이 잠재적 피의자이자 피해자인 우리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거다. 내가 검찰과 국가권력의 타겟이 되어 검찰에 조사를 받으러 갈 때 저자거리의 웃음거리가 되는 포토라인에 서고 싶지 않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낸 이메일이 만천하게 공개되는 굴욕을 당하고 싶지 않다. 강압 수사와 위협으로 허위 자백을 하는 경우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 검찰 수사를 받다 굴욕감과 분노를 느껴 자살하는 일은 절.대 원하지 않는다(인권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 6월까지 검찰 조사 도중 자살한 사람이 79명에 이른다). 이 문화를 검찰 스스로 바꿀 수 있을까?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지난 10년 간 증명된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국회가 바꿀 수 있을까? 국회의원들은 표에 움직인다. 그리하여 국회 스스로는 못 바꿔도, 이 표심 때문에 바꿀 수는 있을 거다. 그걸 만들어 가는 게 어쩌면 촛불로 대변되는 시민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이연주 전 검사는 자신의 SNS에 이런 말을 전한다. “나는 민주주의는 자전거와 같다고 생각해, 우리가 페달을 굴리지 않으면 쓰러져. 춘장이 제일 쿨하다고 여기는 그 대왕쥐 시절에 우리가 눈뜨고 민주주의를 도둑맞은 적이 있잖아. 페달을 계속 굴려가야만 아름다운 꽃밭도, 너른 바다도 만날 수 있어. 그래서 나는 이렇게 페친들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거야. 계속 서로의 빛이 되어 달라고.”
민주주의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검찰 개혁, 사법 개혁, 언론 개혁도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페달은 계속 밟아야 한다. 그래야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간다.
<참고문헌>
김웅 (2019). <검사내전>. 부키.
김현정 (2019, 10, 16). 김현정의 뉴스 쇼 : 前검사 이연주 "검찰 떠난 이유? 성희롱·스폰서...차고 넘쳐
금태섭 (2019, 4, 11).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는 이유. 페이스북
문재인 ‧ 김인회 (2011). 검찰을 생각한다 : 권력검찰의 본질을 비판한다. 오월의 봄.
시사저널 (2019, 11, 19). 검찰 힘만 빼면 개혁 끝?…특수부 폐지는 국가적 재앙.
오마이뉴스, (2019, 9, 26). 검찰은 민주적 권력엔 비수, 권위적 권력엔 애완견.
중앙일보 (2019, 10, 12). 유시민 "검찰 공개소환, 박정희때 깡패 조리돌림 같은 것"
최강욱 등 (2017). 권력과 검찰 : 괴물의 탄생과 진화. 창비.
한겨레신문 (2019, 10, 9). 박상기 법무부 장관 인터뷰. 박상기 법무 “왜곡수사 원인, 검찰과 정치권력 모두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