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러가 쓴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Good Economics for hard Times)> 세 번째 이야기, 성장의 종말.
돈의 세계를 구경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성장”이다. 돈의 세계는 앞으로 앞으로 계속 성장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저자들은 오히려 반대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장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다. 중요한 것은 성장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이 질문이라는 것이다(Banerjee, A. V. & Duflo, 2019/2020, p. 289).
시카고대학 부스 경영대학원은 최근 영리한 연구 설계를 하나 했다. 질문은 이거였다.
부자들에 대한 조세감면 vs 가난한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세감면,
무엇이 더 효과가 있을까요?
이 효과를 비교하기 위해 미국에서 있었던 31번의 연방 조세개혁을 추적했는데 연구 결과는?
상위 10%에게 이득을 주었을 때는 고용과 소득 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이 없던 반면 하위 90%에 혜택을 주었을 때는 유의미한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같은 책, p. 303).
사실 이것은 이미 상식적으로도 납득 가능한 결과다. 상위 10%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고소득자의 세금을 낮추는 것이 그 자체로 경제 성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데 많은 경제학자들이 동의한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강력한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이데올로기를 옆으로 치워 두고 최신 연구들이 제시하는 근거에 기반해 이야기하면 이렇다. 부유한 사람에게 세금을 깍아 주는 것은 경제 성장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같은 책, p. 306).
이게 참이라면 돈의 세계가 글로벌하게 굴러가는 모습은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몇 가지 좋은 소식. 1980~2016년에 세계 인구 중 소득 기준 하위 50%의 소득이 그 위의 49%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했다. 물론 한걸음 더 들어가보면 이보다 더 소득이 빠르게 성장한 집단이 있는데 그 집단은 모두가 예상하겠지만 상위 1% 집단이다. 이들은 같은 기간 세계 GDP 성장분 중 무려 27%를 가져갔다고 한다. 같은 기간 하위 50%가 가져간 몫은 13%였다. 하지만! 현재 절대 빈곤율은 1990년의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그리고 이것은 명백히 경제 성장의 결과다(같은 책, p. 311).
그렇다면 이런 긍정적 가설이 가능하다.
“경제 성장이 지속되면 절대 빈곤율은 떨어지고, 하위 49%의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빈부격차도 줄어들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토지, 자본, 숙련 노동’의 자원 배분이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국가별 지역별로 편차를 보일텐데, 저자들은 이 상황을 이렇게 진단한다.
우리가 성장을 어떻게 일으킬 수 있을지를 알지 못하듯이 왜 어떤 국가는 정체되고 어떤 국가는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우리는 별로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다만 낙수효과가 아무런 효과가 없음은 이미 증명된 바다. 꼭대기 쪽 사람들에게 후하게 베풀면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가 일어날 것이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도록 요구했던 미국과 영국의 경험에서 우리가 교훈을 얻는다면 그것이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성장 우선주의적 경제학의 성채였던 IMF도 이제는 가난한 사람들을 희생시켜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나쁜 정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핵심은 GDP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님을 잊지 않는 것이다. 물론 GDP는 유용한 수단이다. 특히 GDP를 높이는 것이 일자리 창출, 임금 상승, 정부 재정을 풍부하게 해 정부의 재분배 정책을 잘 펼 수 있게 해 준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궁극적 목적은 GDP 자체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 특히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함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 대부분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이며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실패작이라 여겨지면 또 가족이 자신을 실패작으로 여긴다고 느껴지면 괴로워한다. (같은 책, p. 349~350).
나는 이들의 진단과 주장에 동의한다. GDP 수치의 증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 이것이 돈의 세계에 핵심 목표가 된다면 정책은 입안하기도 평가하기도 훨씬 용이하다. 왜냐하면 목표가 명징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후생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을 펴는 것은 GDP 성장률을 2% 끌어올리는 조리법을 찾는 것보다 수백만 명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가능성이 훨씬 크다. 바로 이것이 돈의 세계의 리스크를 줄이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