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힘든 시대, 좋은 경제학 2 : 자기를 넘어

by 오윤

경제학자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러가 쓴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Good Economics for hard Times)>

두 번째 이야기. 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자유와 선호에 대한 이야기다.

주류 경제학은 사람들의 견해와 선호에 대해 관용적이다. 누군가의 의견이 우리가 동의하지 못할 의견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선호는 사람들 각자의 자아를 규정하는 본질의 일부다. 선호는 변덕도 실수도 사회적 압력에 의한 반응도 아니며, 사람들 각자가 무엇을 가치있게 보느냐가 반영된 숙고에 의한 판단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 주류 경제학의 입장이다(Banerjee & Duflop, 2019/2020, p. 184).


그렇다면 선호는 합리적이고 안정적이라 가정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그럴까?


#22 군중행동.JPG 출처: https://brunch.co.kr/@bookfit/1820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이와 다른 경우가 많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있다.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이른바 대세를 따라가는 군중 행동. 이 행동은 선호가 안정적이라는 개념과 부합하지 않는다. 다만 합리적일 수는 있다.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를 빌리면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전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의사결정이 합리적이라고 그 결과가 꼭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군중 행동(herd behavior)은 정보 폭포 (informational cascade) 현상을 낳는다고 저자들은 말하는데, 이 폭포는 의도를 가진 첫 번째 군단의 행동, 그 행동에 담긴 기획의도에 상당히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최근 이뤄진 실험은 첫 번째 사람 단 한 명의 무작위적인 행동으로도 그러한 폭포 효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어떤 평에 대하여 최초의 반응이 좋아요이면 다음번 사용자도 좋아요를 누를 가능성이 32퍼센트가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 군중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 꼭 표준적 선호 체계 가정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명백히 배치되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친구들이 그렇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짓을 하기도 한다. (같은 책, p. 186).


군중 행동과 비슷하게 사회적 규범을 고수하는 행동 역시 경제학에서는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이라 이야기되는데, 여기서 핵심은 규범을 깨면 공동체의 다른 일원들로부터 처벌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관련하여 대표적인 연구자가 노벨경제학상 수상한 엘리스 오스토롬이다. 그는 알프스 치즈 생산자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 목초지에서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되는지에 대한 분명한 규칙이 있었고, 규칙을 위반하면 공동 목초지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를 잃게 되기 때문에, 공동체가 오랜 시간 구성한 규범이 지속되었다고 진단한다(같은 책, p. 187).


#22 공유지.jpg 출처: 한겨레신문


엘리스 오스트롬의 이야기는 공유지가 꼭 비극이지는 않을 수 있다는 논거로 자주 이야기되는데, 그러나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오랜 시간 시민사회가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규범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인종 차별, 성 차별, 카스트 제도 등등, 현실에서는 공정함을 외치면서도 이런 차별적 규범이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욕먹기 싫어요~)으로 계속 유지될 수도 있는 거다(같은 책, p.189).


자유와 선호에 대한 경제학의 오랜 신념(안정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신념), 그리고 이 신념에 근거하여 지속되고 강화되는 규범이 꼭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로 저자들이 제시하는 인도 사례는 꽤 인상적이다.


간디는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을 하며 “인도의 미래는 마을에 있다”고 역설한다. 여기에 반대한 가장 저명한 인사이자 훗날 인도 헌법 초안을 작성하게 되는 B.R.암베드카르는 최하층 카스트 출신이고 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인도의 마을을 “지역주의의 하수구이고, 무지와 편협한 사고와 공동체 충성주의의 구덩이”라고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규범을 강제하는 수단은 법이어야 하고 그 강제력은 국가가 가져야 하며 국가의 권위는 법에 의해 부여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불리한 계층 사람들이 지역에서 매우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는 공동체의 압제에 맞서서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주장한다(같은 책, p. 191).”


어느 공동체, 국가에 내재한 차별적이고 반인륜적인 규범이 정치적 극단화와 부정부패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힌 연구들도 있다. 가령 아비지트와 로히니판데의 관찰에 따르면 인도에서의 부정부패는 상류 카스트와 하류 카스트 중 어느 한쪽이 압도적 다수인 지역에서 가장 크게 증가했다고 말한다. 이런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거의 전적으로 카스트를 보고 투표하기 때문에 그곳의 지배적인 카스트 출신 후보가 따 놓은 당상으로 승리하기 때문이다(같은 책, p. 193). 같은 맥락에서 공동체의 잘못된 규범이 강하게 작동되는 공간에서는 가장 약한 구성원을 억압할 수 있고, 국가는 그 억압을 멈추는 데 무력할 수 있다. 규범을 따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잔혹함에 때로 마음이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공동체 전체에 맞서는 것은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같은 책, p. 194).


#22 카스트제도.jpg 출처: BBC


저자들은 강한 공동체의 잘못된 규범이 어떻게 강화될 수 있는지를 미국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데 여러 가지로 한국사회에서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2016년 대선, 지배적 이슈로 등장한 것은 흑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민자에 대한 노골적 적대다. 이민자는 우리의 일자리만 가로채는 게 아니라 백인 존재를 위협하는 범죄자이고 강간범이라 이야기된다.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은 경제적 불안보다 정체성과 더 관련이 있다. 이민자가 적은 주일수록 이런 생각이 강한 것이다. ...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그러한 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더 쉬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 연구팀은 공화당 성향이 강한 8개주(앨라배마, 아칸소, 아이다호, 네브라스카, 오클라호마, 미시시피, 웨스트버지지아, 와이오밍)에서 참가자를 모집해 반 이민자 단체에 돈을 기부하도록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온라인상 기부에 동의하면 그를 대신에 연구팀이 1달러를 단체에 기부하고 이에 더해 참가자에게 50센트를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 집단에는 그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에 대해 비밀이 보장될 거라 말했고, 다른 집단에는 연구팀 중 한 명이 그의 결정을 확인하기 위해 따로 연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연구팀은 이 실험을 2016년 이전에도 실시했고 이후에도 실시했는데, 대선 전에는 두 번째 집단 사람들이 반이민자 단체에 기부를 하기로 결정할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았다(1집단 54%, 2집단 34%). 하지만 동일한 실험을 대선 이후에 했더니 차이가 사라졌다. 공공연히 이민자에게 반대하는 견해를 내세운 후보가 승리하면서 기존에 사람들을 조심하게 했던 억제 요인이 풀려서, 자신이 이민자에 대해 적대적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남들이 알게 되어도 개의치 않게 된 것이다 (같은 책, p. 197).


미국을 봐도 그렇고, 인도를 봐도 그렇고, 우리 사회를 봐도 그렇고, 누군가를 타자로 만들고 차별하고 배척하는 것은 호모사피엔스의 오랜 선호와 태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왜 늘 이런 차별과 배제의 규범을 인간들은 만들고, 강화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 첫째. 경제적 이유다. 인도에서 1995~2000년 사이 벌어진 힌두-무슬림 간 폭력 사태를 분석한 결과, 무슬림의 소득이 크게 증가한 시기와 지역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경향이 컸다. 무슬림 사업가들이 타깃이 된 경우가 많은 거다. 폭력은 종종 약탈을 위한 위장술이었다. 둘째, 본인은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이 속한 집단에 충성심을 나타내기 위해 불관용과 편견을 겉으로 내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경우다. 셋째, 통계적 차별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경우다. 파리에서 우버가 없던 아프리카 사람이 좋은 자동차를 모는 것을 보면 다들 마약 거래상이거나 훔친 차일 거라 추측했다고 한다. 통계적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파리에서 가난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같은 책, p. 200).


여기서 가장 강력한 이유는 적어도 숫자와 근거와 통계를 좋아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세 번째가 아닐까 싶다. 오늘날 사람들이, 어느 공동체가 구분해내는 차별적 행위는 사람들이 실제로 가진 편견에서 비롯한 옛날 방식의 차별보다 통계적 차별이 더큰 원인일지 모른다는 것이다(같은 책, p. 200). 관련하여 저자들이 소개하는 밴 더 박스(ban the box, btb) 정책의 효과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밴더박스 정책은 이력서에 범죄 이력을 적는 칸을 없애게 한 정책인데, 이 정책 시행 후 젊은 흑인 남성 실업률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름만 차이가 나고 다른 면에서는 동일한 내용의 이력서를 보내도 백인 지원자가 서류를 통과해 이후의 면접절차에 대한 연락을 받을 가능성이 23%나 더 높았다. BTB가 도입되어 범죄 이력을 표시하는 칸이 없어지자 서류를 통과하는 사람의 비중이 인종별로 더 큰 격차를 나타낸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개개인의 범죄 이력에 대해 실제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되자 고용주들이 모든 흑인 지원자가 범죄 이력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가정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같은 책, p. 201).


사회적 차별을 좀 더 공고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은 차별받는 자의 자기차별이다. 이를 가장 멋들어지게 아프게 이야기한 저자가 프란츠파농인데 그는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어떻게 흑인들이 백인들 세상에서 자아 인식에 분열과 혼란이 생기는지를 뼈때리게 보여준다. 파농의 이야기가 정신분석 이론을 접목해 자기차별을 이야기한다면 미국 심리학자 클로드 스틸은 스스로가 자신의 집단을 차별하는 현상을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스틸은 동일한 과제에 대해 실험용 문제풀기 과제라 묘사하면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 사이에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데, 지능테스트라 묘사하면 흑인 학생이 현저히 낮은 성과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같은 책, p. 203).


이런 이야기를 통해 저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소위 선호라고 말하는 것, 취향이라 말하는 것도 알고 보면 개개인의 본질적인 자아와 관련된 고정적인 무엇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자기 동네에 걸맞은 규칙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같은 책, p. 208~211).


물론 우리는 여기에 그럴듯한 근거들을 붙인다. 스스로를 편견을 가진 존재라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편견을 객관적인 진리의 언어로 꾸미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애초에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을 잘 바꾸지도 않는다. 아무리 허술한 것이라도 입장을 뒷받침해 주는 듯한 뉴스가 있으면 과도하게 가중치를 부여하고 그렇지 않은 뉴스를 무시하는 것, 확증편향도 바로 이런 마음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본능적인 자기방어적 반응으로 시작된 생각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탄탄한 논리와 근거로 뒷받침된 주장처럼 재구성되고, 내 견해와 불일치하는 어떤 의견에 대해서는 나의 도덕적, 지적 타당성을 의심하는 도전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분노하기도 한다(같은 책, p. 212~215).


#21 인종차별.jpg 출처: vop. co.kr


저자들은 인간의 이러한 패턴을 인식하고 나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 사람들을 인종주의자라고 비난하거나 개탄스러운 자들이라 부르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도덕적 감각을 공격하는 셈이 되어서 그들을 분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팩트폭격을 감행할 때도, 여기에 상대에 대해 도덕적인 가치 판단을 들이미는 것은 사실을 표현하는 유용한 방법이 아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여기고 싶어 하기 마련이므로, 나의 가치 판단을 상대에게 부여하기 전에 먼저 상대가 스스로의 가치를 긍정하게 하는 것이 상대의 편견을 줄이는 데 오히려 더 좋은 방법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같은 책, p. 215). 새겨들을 말이다


둘째, 경제적인 생존 보장을 넘어서 존엄을 회복시켜 줄 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어떤 복지 정책을 만들어갈 때, 그것이 대상자들의 자존감 상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돕는 것인지 물어야 하고, 단순히 나눠 주는 것 자체만으로는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같은 책, p. 217).


셋째, 혐오와 배제의 언어를 정치적 무기로 삼는 정치인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한다. 그러면서 소개하는 사례가 르완다의 사례다. 벨기에 식민지이던 시절, 식민주의자들은 투치족이 후투족보다 우월하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두 부족 사이 우열을 가릴만한 차이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는 식민통치에 협력할 현지인 지배계층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식민통치가 끝난 후에도 투치족은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믿음을 유지했고, 이에 후투족은 분노했으며 이는 1994년 끔찍한 인종학살로 이어졌다고 한다(같은 책, p. 219).


넷째, 자신과 비슷한 선호, 취향, 집단들과만 소통하려는 경향, 이를 부추기는 사회의 변화, 기술의 진화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 저자들은 비슷한 친구하고만 어울린다면 자기들끼리만의 섬에 살게 될 수 있고, 그러면 명백하게 기이한 선호나 극단적 견해가 더 강화되기 쉽다고 주장한다. 지속적으로 동일한 사람들하고만 이야기할 때 나타나는 또 다른 문제는 같은 집단의 구성원들이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공통된 견해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후보들이 생산한 정보를 유통시키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공화당 후보들이 제공한 정보를 유통시킨다. 민주당 후보 트윗에 대한 첫 리트윗의 86%가 진보적 성향의 사용자에 의해 이뤄지고, 진보 성향 사용자는 92%가 진보 성향 사용자로부터 메시지를 받는다. 인터넷이 무한한 반복을 허용한다는 점도 견해가 극단화 양극화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정말 그렇다. 개인의 취향, 선호에 따라 추천을 해주는 시스템의 고도화는 자기 마음에 드는 콘텐츠에 무한 반복적으로 노출되게 한다는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같은 책 p. 228~233). 그 결과는 무엇일까? 듣는 능력의 불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서로간의 접촉을 넓혀나갈 수 있는 공공담론, 공공정책의 확장이다. 그리고 접촉의 핵심 장으로서 학교와 대학이 매우 중요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접촉을 넘어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들은 편견과 싸우는 가장 효과적 방법은 직접 그것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편견을 직접 반박하는 것이 얼핏 생각하기에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처럼 보이지만 그것 말고 다른 사안들을 논의하는 게 더 가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효과가 더 클 수 있고, 어찌보면 공동의 목표, 비전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편견의 장벽을 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서는 방법이라는 거다(같은 책, p. 242~253).


이게 왜 돈의 세계에서 중요할까? 같은 취향, 선호를 넘어설 때, 우리는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돈의 세계를 관찰할 수 있고, 그 안에서 분노와 박탈감이 가져올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상대적 빈곤, 상대적 박탈감을 최대한 줄이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의 취향, 선호를 넘어 세상의 분노, 박탈감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쉬운 일도 빠르게 이뤄질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한 상태로 말이다(같은 책, p.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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