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힘든 시대, 좋은 경제학 1 : 낯선이와 함께

by 오윤

지난 3개월 동안 돈의 세계를 공부하면서, 경제뉴스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근력은 만든 것 같다. 나름 시장을 이해하는 눈도 미약하지만 떠진 듯 싶다. 멋진 경제학자들을 만난 것, 특히 마셜과 케인즈를 만난 것 역시 큰 수확이었다. 그러나 의문도 든다. 이 의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경제학자들에게 질문한 것과 유사한 의문이다.


"왜 위기가 닥치는 것을 아무도 알라차리지 못햇는가? 정교한 이론으로 무장한 똑똑한 경제학자와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가가 이렇게 많은데 도대체 왜"? (Martin, 2013/2019, p. 248).


정말 중요한 무언가가 공란으로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연히 한 책을 만났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러가 쓴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Good Economics for hard Times)>.


#21. 힘든 시대.jpg

일단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과연 이 책에서 지금까지 돈의 세계에서 놓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

하나하나 조금은 구체적으로 파헤쳐보려 한다.


두둥~~~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 사이의 경계가 너무도 확연하게 그어지는 시대, 이 책은 경제학의 통념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힘든 시대를 돌파해가는 구체적인 해법을 찾으려한다. 이 과정이 매우 촘촘하다. 섣불리 가정하지 않으며,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정들을 검증하고, 새로운 증거와 사실관계에 기초해 기존의 통념과 접근 방식을 전면 수정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게 저자들이 말하는 “좋은 경제학”의 방법론인지 모르겠다. 단정하지 않고, 예측하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관찰하면서 돈의 세계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다. 이 태도가 참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돈의 세계에서 자주 논쟁이 되는 이민자 문제였다.


2018년 예멘 난민 561명이 제주도에 입국해 대거 난민신청을 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우리 사회 여론은 반대 입장이 압도적이었다. 7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알 수 없는 낯선 피부 색깔에 대한 두려움과 순수 혈통이라는 신화, 그리고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거’라는 경제적 논리가 깔려 있을 거다.


이런 정서는 비단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 이민자에 대한 혐오는 세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멕시코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을 비롯하여 이민자 문제는 서유럽 대부분 국가의 첨예한 문제다.


저자들은 이런 인식에 대해 “도대체 왜?”라며 질문을 던진다.

본능적인 경계를 넘어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현지인과 이민자들이 노동시장에서 꼭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21 이주노동자.jpg 출처: 미디어오늘


어디 그뿐인가?

이민자들이 현지인이 채우지 못하는 수요를 채워주기도 한다. 환자 돌보기, 노인 돌보기, 아이 돌보기, 공장 노동자 등 현지인들이 꺼리는 4각지대의 업무를 맡는다면 서비스의 가격이 떨어져 현지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Banerjee & Duflo, 2019.2020, p.57). 고용자의 입장에서는 현지인보다 훨씬 좋은 인재들일 가능성도 높다. 리스크를 감당할 여력, 절박한 조건에서 부여되는 진지한 마음가짐, 용기와 빼짱 등을 두루두루 겸비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같은 책, p. 59), 이처럼 좋은 인재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거다.


더 나아가 저자들은 이민자의 유입을 걱정하기에는 이민자의 숫자가 너무 적고, 앞으로도 많아질리 없다면서 쓸데없는 걱정이라 말한다. 왜 이민자의 숫자가 적을까?


손실회피 성향.


한마디로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들이 더 좋은 조검임을 알면서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주를 하려면 꿈을 꾸는 능력이 있거나 엄청난 과잉 확신이 있어야 한다(같은 책, p. 86). 실제로 가난한 나라(지역)의 사람들은 떠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재난 상황이 아닌 한 고향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나라 대 나라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중국산 제품의 대량 수입으로 일자리를 잃은 미국의 노동자들 역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주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민자가 많이 유입되면 도착국 노동자는 피해를 보게 되는가? 저자들은 쿠바의 ‘마리엘 보트리프트’를 비롯한 수많은 실증 근거들을 제시하며 통념과 달리 이민자가 상당히 많이 유입되어도 현지인의 고용과 임금에 부정적인 영향은 거의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이주와 관련한 진짜 문제는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이주가 너무 적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취해야 할 정책은 이주를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어떤 인센티브가 제공되든 많은 사람이 이주하지 않기로 결정하리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같은 책, p. 99) .


#21 무역1.jpg 출처: BBC

이주민 다음으로 이 책이 던지는 화두는 “무역”이다.

자유무역이 모두에게 득인가? 경제학은 이 질문에 대해 언제나 그렇다라는 답변을 해왔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그게 과연 자명한 일인지 되묻는다.

앞서 리카도편에서 이야기한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이 논리에 따르면 노동이 풍부한 나라는 노동 집약적인 제품에 특화되고 자본 집약적인 분야에서는 철수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노동이 풍부한 나라, 대개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부유한 나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손해가 된다. 대신 부유한 나라에서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 공장을 가난한 나라로 이주한 자본가들은 득을 봐 불평등이 증가한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자유 무역을 하면 국가 전체적으로 GNP가 올라가므로 만약 미국 사회가 자유 무역의 수혜자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면 미국 노동자들도 전보다 생활 수준이 나아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가정은 과도하게 나이브하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같은 책, p.108),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 30년간 많은 저소득 및 중위소득 국가가 무역을 개방했는데, 이후 그 나라에서 벌어진 소득 분배상의 변화를 보면?


오히려 가난한 나라 모두에서 불평등이 증가했다. (같은 책, p. 116).


왜 그럴까? 교과서에서 무역의 이득이란 자원이 더 효율적으로 재배분되기 때문이라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자원의 이동이 쉽지 않은 거다. 저자는 여러 실증 근거를 가지고 오면서 토지도, 자본도, 정책도 쉽게 주인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역자유화로 타격이 컸던 지역에서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같은 지역 내에서 기업 간에 자원이 이동하는 것 역시 매우 느렸다. 이는 기업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같은 책, p. 124). 한마디로 무역이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경제학의 오랜 통념은 현실에서 실제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과 잘 부합하지 않는 거다(같은 책, p. 139).

사실 무역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위해서는 재분배 정책이 제대로 정립되어야 하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의 복지 프로그램은 실직을 겪은 노동자들에 대해 그만큼의 금정적 보상을 못해 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나마 조금이라도 소득을 보전해 주는 현재의 사회 보호 장치들은 그 대가로 모멸감을 감수해야만 하게끔 고안되어 있는 듯하다. 당파적인 정당 정치도 이러한 재앙에 일조했다(같은 책 p 155).”


그렇다면 자유 무역의 신화를 버리고 쇄국정책을 쓰는 것이 정답일까? 이에 대해서도 저자들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글로벌 무역을 버리고 ‘자급자족하는 마을 공동체’라는 개념의 간디의 경제철학을 가져오는 것은 답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작은 것이 꼭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거다. 왜일까? 기업들이 특화된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생산성이 높은 기계를 사용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가 필요하고, 수많은 실증연구에서 확인된 바는 소기업이 대기업보다 생산성이 훨씬 낮다는 것을 근거로 둔다(같은 책, p.163)

시장이 크지 않으면 기업 규모가 커질 수 없다. 1776년 에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언급했듯이, “분업의 정도는 시장의 범위에 의해 제약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제 교역이 가치를 갖는다. 고립된 공동체에는 생산적이고 효율적 기업이 존재하기 어렵다. .. 국내 시장이 잘 통합되어 있지 못하면 경제의 경직성은 더 심해진다. .. 또한 도로가 열악하면 외진 마을의 소비자들로서는 재화의 최종 가격이 너무 올라 국제 교역으로 얻는 이득이 거의 다 사라지게 된다(같은 책 p.165).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트럼프 시대, 미국이 추진했던 보호관세가 대부분 미국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쇼크로 타격을 입은 사람들의 여건이 회복되지 못한 이유는 경제가 경직적이어서 그들이 더 전망 있는 분야나 지역으로 옮겨 가지도 못했고 자원이 그들이 있는 지역으로 옮겨 오지도 못했기 때문이지, 그렇다고 문을 닫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거다(같은 책 p.167). 그리고 이는 또다른 문제를 양산한다.


“중국과의 교역을 닫으면 몰려나게 될 사람들은 이제까지 상황이 좋았기 때문에 우리가 별로 들어본 적 없던 지역의 사람들일 것이다. 미국 농산품의 16퍼센트는 중국에서 소비된다. .. 미국 입장에서 말하면 무역전쟁이 우리가 아는 세계를 끝장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철강 분야의 일자리를 일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분야에서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것이다. 미국 경제는 괜찮겠지만 수십만명의 미국 사람들은 괜찮지 않을 것이다(같은 책 p. 168).”


그렇다면 저자들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자유무역을 지속하면서도 그에 따라 커져가는 사회적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그는 문제의 범위를 좁히고, 대안도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자리 이전으로) 구조조정의 피해를 가장 크게 받는 집단은 나이 많은 노동자들이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이 자부심과 정체성, 그리고 공동체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감각의 원천이다. 이들에게 전혀 다른 직종으로 가는 것을 돕는 재훈련 프로그램은 상실감을 완전히 보상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 많은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무역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에 보조금을 지급하면 어떻겠는가? 하지만 조세감면은 기업이 노동자들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데 충분한 유인이 되지 못한다. 지원할 분야와 지역을 더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55~62세 노동자들에게 집중한다면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전일제 직원으로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같은 책 p. 172).”


이게 꼭 답은 아닐 것이다. 다만 핵심은 문제의 공간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현장에서 접목가능한 변화를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미국의 오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배경이 된 미국의 오늘에 대해 이렇게 진단하는데, 우리나라에도 꽤 의미심장하다.


미국은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을 것을 오래전부터 알았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자유 무역에 대한 대중의 적대적 반응에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무역으로 타격을 입은 노동자들이 당연히 다른 장소와 일자리로 옮겨 갈 것이고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사회 정책에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 너무나 통렬하게 드러나고 있는 루저와 나머지 사람들 사이의 극심한 갈등을 촉발했다. (같은 책 p. 174).


미국의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오늘과 내일을 설계하는 데에도 고려해야 하는 이슈가 아닐까? 잘못하다가는 트럼프같은 인물이 왕초가 될 수도 있는 거다.



<참고문헌>

Banerjee, A. V. & Duflo, E. (2019). Good Economics for Hard Times. 류현(2020).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서울: 생각의 힘.

Martin, F. (2013). Money: The unauthorized biography. 한상연(2019). 돈: 사회와 경제를 움직인 화폐의 역사. 서울: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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