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힘든 시대, 좋은 경제학5 : 격차를 좁히자

by 오윤

경제학자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에스테르 뒤플러가 쓴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Good Economics for hard Times)> 다섯 번째 이야기는 AI, 자동화와 일자리 편이다.


#25 일자리 ai.jpg 출처: 연합뉴스

AI다 4차 산업혁명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서 많은 전문가들은 단순 반복을 넘어선 업무까지 기계가 대체하게 되리라 예견하고 있다. 실제로 매킨지가 각 일자리별로 수행되는 업무의 형태를 분석해 내린 결론에 따르면 미국 일자리의 45%가 자동화의 위험에 처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실일까? AI가 만들어내는 미래 일자리는 어떤 풍경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때 많은 경제역사학자들은 산업 혁명 시기에 주목한다. 숙련된 장인이었던 직조공과 직공물 등이 산업 혁명 시기 기계에 밀려났다. 이에 대한 반발로 그 유명한 러다이트 운동도 있었다. 멀리 보면 이때의 혼란은 시대가 바뀌는 디졸브 기간에 나타나는 혼돈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우리 시대가 또다른 디졸브 기간이 될 수 있다면, 산업 현명 전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꽤 유의미한 접근이다.

분명히 산업혁명 시기 어떤 직군은 정말 기계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졌다. 또 장인들이 하던 많은 일이 사라졌다. 장기적으로 모든 것이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장기는 정말로 긴 기간이다. 영국에서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임금은 1755년에서 1802년 사이에 반토막이 났다. 1802년 유독 임금이 낮은 해이기는 했지만 1755년부터 그다음 세기로 넘어갈 때까지 블루칼라 임금은 내내 하락 추세였다. 18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오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1755년 수준을 회복한 것은 1820년이 되어서였다. 1755년 수준을 회복하는 데 65년이나 걸린 것이다(같은 책, P. 395).


수치의 위협, 디스토피아적이지 않은가? 영국에서 강도 높은 기술 진보가 일어났던 시기, 그리하여 영국이 전 세계를 재패하던 시기, 그 이면을 보면 강도 높은 빈곤화가 발생하면서 어떤 지역, 어떤 사람들의 생활여건은 이보다 나쁠 수가 없었다. 진실로 어려운 시절이었던 것이다(같은 책, P. 396~397).


그 시절을 반추하면서 2020년대의 풍경을 상상해보자면, 인공지능의 파도로 낮아진 노동 수요는 결코 반등하지 못할지 모른다. 기업들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돈을 쓰기보다 노동 절약적인 기술을 더 개발하는 데 투자할지도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그렇다. 우리는 사실 한치 앞도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시대를 건너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굴러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결과 노동자들에게 유리하지는 않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파스쿠알 레스트레포는 자동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지역별로 산업에 로봇이 노출된 정도를 계산했다. 어느 지역(통근 지역 기준)에 로봇 하나가 추가되면 고용이 6.2명만큼 줄었고 임금도 내려갔다. 고용 감소는 제조업에서 가장 컸고 특히 노동자가 대졸이 아니고 업무 속성이 단순하고 일상적 직종에서 영향이 컸다. 그렇다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 이를 상쇄할 만한 이득이 발생하지 않았다. .. 특정 업종에서 대대적인 자동화가 이루어지면 우리는 으레 밀려난 노동자들이 다른 업종에서 일자리를 찾으리라 예상한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그렇지 않다. 로봇을 감독하기 위해 더 많은 엔지니어가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우려스럽다. 요컨대 경직된 경제에서는 자원의 매끄러운 재배분이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같은 책, P. 397).”


AI다, 인공지능이다, 4차산업혁명이다 멋드러진 수사가 붙지만 실제 노동자 입장에서 가장 위험한 기술은 그저 그런 정도의 자동화 기술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로 조세 혜택을 받고, 일정 영역의 노동자를 몰아낼 수 있을 정도로는 생산적이지만 전체적인 생산성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생산적이지는 않은 기술들 말이다. 그리고 저자들이 볼 때 지금 진행되는 기술 혁신은 바로 이 지점에 매몰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특이점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만 오늘날 연구개발의 상당 자원은 혁신적 제품 개발보다 기존 업무를 자동화하기 위한 머신러닝이나 빅데이터 기법 개발에 들어가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이다. 하지만 과학자, 연구자들의 노력이 진정으로 혁신적인 혁신 쪽으로 쓰이지 못하고 다른 곳에 쏠리게 만든다. 예를 들어 수술 받은 환자들이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인을 돕는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개발하기 보다는 보험 청구 승인을 자동화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한다. 이렇듯 기존 일자리를 자동화하는 데 연구개발의 강조점이 쏠리면 이번 판의 혁신 파도는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같은 책, P. 400).


이념, 성향, 계급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의 기술 혁신의 속도와 방향이 노동자들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문제는 노동자 한 명의 해고, 일자리 상실이 단지

그 한 사람의 문제, 한 순간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동자 한 명이 해고되면 해당 기업은 손을 털지만 사회는 여전히 그의 후생을 신경써야 할 책임이 있다. 사회는 그가 굶주리거나 그의 가족이 노숙을 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 이와 같은 우려는 노동자를 해고하기 어렵게 만드는 규제를 정당화하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 경우 경영자가 시의성 있게 대응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경영자는 되도록 애초에 직원을 고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게 될 수 있고 그러면 실업 문제가 악화된다(같은 책, P. 401).


이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로봇 사용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빌게이츠가 이런 종류의 세금을 주장하고 있고 2017년에 유럽의회에서도 로봇세 안이 논의되었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단순한 기계이고 어디에서부터 로봇인지를 규제 당국이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당연하게도 로봇세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그것을 에둘러 가는 방법을 찾을 것이고 경제는 이에 따라 더 왜곡될 수밖에 없다. 어찌보면 당연하고 불가피해 보이는 로봇세 도입도 현실에 접목하려 하면 이런저런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거다. 또 다른 대안으로 기본소득 개념이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나름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어쨌든 실업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이 역시 기본소득의 규모, 범위 등에 있어 해결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다. 결국 로봇세든 기본소득이든 중요한 것은 이것이 기술 변화의 부산물이 아니라 정책적 선택과 의사결정의 결과라는 점이다(같은 책, P. 401~403).


#25 로봇세.jpg 출처: 뉴스 1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정책결정에 있어 저자들이 주목하는 시대는 1970년대~1980년대,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의 도입 시점이다. 마가렛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모두에게 1970년대 말의 경제 침체, 그 원인은 명확했다.

“좌파들이 만든 기울어진 세상.”

노조는 강하고 최저임금은 높고 세금은 많고 규제는 과도했다. 성장을 회복시키려면 기업인을 더 잘 대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로서 레이건과 부시 시절에 미국의 최고세율이 70%에서 30% 이하로 낮아졌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최고세율이 1978년 83%에서 이듬해 60%가 되었고 곧이어 40%로 내려간 후 유지되고 있다. 강력했던 노조는 가차 없이 분쇄되었고 규제 완화는 일상이 되었다(같은 책, P. 403).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이에 대해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대대적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성장 둔화에 대한 공포와 관련이 있다. 1973년 성장이 멈춘 이래 자연스런 반응은 1960년대와 70년대 지배적인 케인즈주의적 거시경제 정책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조언에 기대는 것이었다. 우파 성향의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과 로버트 루카스 등이 대표적이다. 레이거노믹스는 성장에는 불평등이라는 비용이 따른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기본 아이디어는 부유한 사람들이 먼저 이득을 얻으면 차차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득이 돌아가리라는 것이었다. 낙수 효과 이론. (같은 책, P. 405).


이 정책의 결과물로서 1980년대에 미, 영 경제성장의 혜택은 부유한 사람들에게 막대하게 흘러간다. 당연하게도 불평등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레이건 시대가 시작된 1980년은 미국에서 상위 1%가 가져가는 몫이 지난 50년 동안 꾸준히 하락하다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한 분기점이다. 1928년 미국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24%를 가져갔는데 1979년에는 이 숫자가 3분의 1로 줄었다. 그런데 2017년에는 다시 1929년 수준, 아니 그 이상으로 돌아갔다. 그것의 시작점이 1980년이었다.


어디 그뿐일까? 미국의 경우 1980년대을 기점으로 임금 상승세가 멈추었고, 교육 수준이 가장 낮은 계층의 노동자들은 실질적인 임금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 자본가들이 벌어들인 매출 중 노동자에게 가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역전이 비단 정책의 변화 때문은 아닐 것이다. 기술 변화, 중국의 시장 개혁, 인도의 자유화 조치 등 돈의 세계의 구조적 전환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구조적 전환과 정책적 변수, 이 두 개의 변수가 맞물려 승자가 독식하는 경제가 생겨났다는 점이다(같은 책, P. 407~408).


승자 독식 구조의 공고화, 이에 따른 불평등 강화가 1980년대 이후 돈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특징이라면 이것이 공고화된 구체적 계기, 이유는 무엇이며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네트워크 효과, 금융 중심의 산업 재편, 낮은 세금 등을 그 원인으로 둔다. 일단 네트워크 효과는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같은 거대 테크놀로지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을 설명해준다. 전 세계가 모두 리스펙트하는 슈퍼스타 기업의 부상은 임금 불평등의 심화를 가져오는 직접적 계기가 된다. 왜? 구글을 다니는 자와 그 하청업체에 다니는 자, 애플에 다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간극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아마존 같은 공룡의 등장으로 지역 백화점들이 문을 닫게 되는데, 그곳에서 법벌이를 하던 노동자들이 이사를 가지 않고,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문을 닫은 기업들이 있는 지역에서 임금의 증가 속도가 둔화하거나 하락으로 반전된다. 이른바 세계화와 IT 산업의 부상이 저작거리 경제의 경직성과 결합해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의 위계가 존재하는 세계를 만들었고 이는 불평등 증가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같은 책, P. 413)”


#25 기생충.jpg 출처 : sbs


네트워크 효과와 더불어 금융 자본주의의 성장도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결정적 계기였다. 미국, 영국 젊은 멋쟁이들의 표상, 금융 분야 종사자들은 다른 분야 종사자들보다 소득이 50~60%나 높다. 저자들은 금융 분야 종사자들이 얻는 프리미엄의 대부분은 능력이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특정한 직업에 안찰할 수 있었던 행운에 대한 보상이라면서 금융 종사자들이 누리는 지대가 노동시장의 전체 기능을 왜곡한다고 비판한다. 더 나아가 금융 대 비금융의 임금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적으로 더 유용한 일을 하는 기업이 재능 있는 인재들을 활용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거대 기업 CEO의 보수는 다른 회사가 CEO에게 지급하는 보수와 보너스를 잣대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금융 업계 CEO의 보수가 과잉되면서 유관 산업 분야에 전염 효과가 발생하고, 이들에게 부여되는 스톡옵션도 CEO의 보수를 치솟게 하는 데 일조했다고 진단한다(같은 책, P. 419).


저자들은 낮은 세금 역시 불평등에 크게 일조한다고 지적하는데, 그 논거가 매우 인상적이다.

소득 분포의 최상층에서 세율이 70% 이상이면 기업은 경영자에게 막대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낭비라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 액수를 줄이려 할 것이다. 임금 대신 꼭 해보고 싶던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게 허용해 주는 등 다른 가치로 보상해주려 할 것이고, CEO 입장에서도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것보다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 노동자에게 좋은 회사가 되는 것, 세상에 도움이 될 제품을 개발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다. 최고세율이 높일 때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같은 책, P. 420).

꽤 설득적이지 않은가?

그리하여 고소득층에 부과하는 높은 세율은, 거부들을 등쳐 먹는 게 아니라 거부들의 존재를 없애는 것이라 보는 게 더 적합하다. 이럴 경우 바로 이런 반론이 들어온다. 고소득층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면 사람들이 일할 맛이 떨어질 거다. 아무도 위로 올라가려고 하지 않을 거다. 과연 그럴까? 이에 대해 저자들은 단호하게 NO!라고 말한다. 세율이 모든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한 가장 좋은 보수를 받는 자리는 여전히 가장 좋은 보수를 받는 자리라는 것이다(같은 책, p. 428).


아울러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격차를 좁히는 일은 돈의 세계의 리스크를 좁혀 나가는 방법이라 주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부유한 사람들의 생활상과 자신이 겪는 재정적 힘겨움 사이의 격차가 점점 더 아득히 벌어지는 것을 날마다 고통스럽게 경험하는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미국 사회가 여전히 제공하고 있는 기회를 붙잡지 못한 자기 자신을 책망하거나, 자신의 일자리를 훔쳐 간 누군가를 찾아내 비난하거나, 어느 쪽이든 그 길에는 절망과 분노가 쌓여 있다. ... 절망이 아니라면 다른 길은 분노, 또 다른 길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 또 다른 행동은 탓을 돌릴 다른 대상을 찾는 것이다(같은 책, P. 441).


믿었던 것보다 자신이 훨씬 더 불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 믿었던 것보다 훨씬 더 적은 기회만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게 될 때, 돈의 세계에는 악순환의 고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더 절망하고 분노하게 될 것이고 정부가, 기업이 그들을 돕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개념을 더 믿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돈의 세계에 내재한 리스크는 너무도 커질 수밖에 없다.


노동의 세계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 돈의 세계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과도하게 상위 소수에 돌아가면 성장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것이다.

둘, 돈의 세계에서 리스크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극심한 불평등을 좁혀나가는 것이 급선무다. 가난한 사람들이 존엄과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사회가 이런 문제를 다루어 나갈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돈의 세계, 불안정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효과적인 사회정책을 고안하고 그런 정책에 예산을 지원하는 일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같은 책, P.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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