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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부메랑 Nov 08. 2019

2019년 11월 1일- 사별, 그 후

사별 후 이어지는 연쇄적 상실감

2019년 11월 1일 금요일 날씨 맑음


일주일간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 덕에 잠을 편안하게 자지 못했다. 아내와 아들은 잠시 한국에 가있어서 혼자 생활하느라 가뜩이나 분주하고 산만한데, 지난 토요일에 혼자 자동차를 정비해보려고 엔진오일을 넣다가 너무 많이 넣어서 문제가 생겨버려서 애를 먹고 있다. 어제도 새벽에 거라지에서 에어튜브에 피스톤을 연결해서 검은 엔진오일을 2시간 동안 빼느라 이마에 때 아닌 땀을 흘렸다.


"따르르릉"


아침 7시. 일주일간 새벽 늦게 잠이 들어서 일어나기에는 몸이 무거운 시간이었다. 그래도 아침 10시에 엘에이 한인타운에서 내담자와의 상담예약이 되어있어서 지금 일어나서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핸드폰을 보니

새로운 내담자의 상담 요청이 들어와 있었다. 빨리 연락해서 시간을 잡자는 내용의 문자가 매니저를 통해 전달되어있다.


가볍게 양치질을 하고 면도크림을 발라서 면도를 했다. 곧바로 샤워를 하고 계란후라이와 베이컨, 그리고 딸기잼과 버터를 바른 식빵 두쪽을 먹으며 아침 식사를 했다. 오늘은 상담이 3건이 있고, 저녁에는 부부관계개선프로그램, "10 Great Dates"를 리드해야 한다.


네스카페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고, 초록색 버튼을 누르자 고소한 향기의 커피가 컵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하루를 시작하게 만드는 이 향기가 좋다. 하루 일정을 빠르게 머릿속으로 리허설한 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심호흡을 했다. '잠시 5분 정도는 좋잖아?'라는 생각을 하며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상담과 그룹워크를 진행해야 하므로 나름대로의 옷차림에도 신경을 썼다. 코발트블루 색 남방과 하얀 색 바지를 입고, 노란색 넥타이를 맸다.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도록 왁스도 바르고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나니 어느덧 9시 10분 전이 되었다. 떠나야 한다.


코스트코에서 주유를 한 뒤, 60번 도로 입구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차가 많았다. 심한 정체는 아니었지만, 평균속도 40킬로 정도로 가는 상황이 되었다. 주중에는 내가 일하는 사무실로 내담자들이 찾아오지만 금요일은 내가 왕진처럼 그들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 처음 이 일을 맡았을 때는 자유로움과 이동성 때문에 즐기는 마음도 들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지친다. 왕복 3시간 정도를 길에서 쓴다는 게 부담도 되거니와, 아침에 갔다가 밤 늦게 돌아오는 일정이 가끔은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운타운으로 갈수록 정체가 심해졌다. 결국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해서 내담자에게 양해를 구하며 세션을 시작했다.


오늘 만난 내담자는 80세 한국 여성으로 얼마 전에 남편과 사별한 뒤 심리적, 감정적으로 힘들어서 상담을 요청한 케이스다. 기본적으로 세션은 50분인데 이 분과는 기본적으로 120분을 하고 있다. 그만큼 마음이 요동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내담자는 쉴 새 없이 마음과 생각을 내게 쏟아낸다. 오늘은 이 분과 세 번째로 만나는 날인데, 여전히 내게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쏟아 내고 있다. 상담사로서 이해를 하고, 공감을 보이며, 직면된 문제를 밝혀내고, 변화를 함께 모색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내담자가 연세도 많으신 데다가 사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그리고 세션 중에 많이 우신다. 그냥 눈물을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엉엉" 소리를 내면서 우셔서, 상담사인 나도 마음이 많이 무겁고 아플 때가 많다.



오늘 이 내담자 분의 이슈가 단지 사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사별 자체도 너무나 큰 경험이지만, 그 이후로 일어나는 일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 분의 경우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아들과의 관계 문제가 추가로 발생한 상황이다. 다행인 점은 이 분을 주변에서 위로하며 보살피는 분들이 몇 분 계시고, 친딸이 매우 협조적이라는 점, 그리고 이 분이 육체적으로 건강하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별과 경제적 어려움은 내담자를 감정적으로 많이 짓눌렀고, 내담자의 자존감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살갑고 따뜻하던 아들도 이제 며느리에게 가버려서 더 이상 자기 자식 같지가 않다며 예전에 화목했을 때의 사진을 보여주며 우시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오늘은 여전히 많은 시간을 내담자의 이야기 경청, 공감, 그리고 이해하는 과정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 그 분의 생각이나 감정처리에 대해 가볍게 반문하며 챌린지하기도 했다. 물론 그 작업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치료 목표, 접근 방식 이론 등은 아직 결정하지도 못했다. 이 분에게는 아직 옆에서 이 분 이야기를 듣고 이분의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존재가 가장 필요한 상황이므로. 이 분과 대화하며 내담자의 마음이 나이보다 훨씬 젊고 활력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내담자는 경제력 없이 살아가며 딸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극도로 미안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 2시간 남짓의 상담내용 가운데 기억나는 대목을 떠올려본다.


상담사 (상): 그럼, 생활비나 용돈은 어떻게 마련하시나요?

내담자 (내): 그게....(울음을 터트린다) 딸이... 딸이 줘요...

상: 그렇세요? 이럴 때 따님이 그렇게 지지해주고 도와주시니 많은 위로가 되시겠어요

내: 네, 그 애가 아주 아빠를 닮아서 아주 착해요... 선하고

상: 네, 내담자님께서 설명하신 대로 돌아가신 남편분의 성격과 많이 닮았네요. 든든하고 고마우시겠어요.

      따님과 자주 만나거나 통화도 하세요?

내: 그 애가 일을 해서 워낙 바빠요... 그래도 지난 일요일에는 왔더라고요...

상: 와, 바쁠 텐데 그렇게 직접 방문도 하고, 많이 반갑고 그러셨겠어요

내: 나는 좋은데, 미안하죠.... 자기도 할 일이 많을 텐데... 그런데 그 날은 내가 울고 있었거든요... 남편 옷장에 있던 옷을 다 지인들에게 주고 나니까 장롱이 텅 비어서... 그걸 보고 있으니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상: 네, 허전한 마음이 드신 거예요? 남편분 생각도 많이 나셨겠어요.....

내: 그런데 딸이 나보고 왜 엄마는 왜 맨날 우냐고... 엄마 울면 자기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그러지 말래요 그런

    모습 보기 싫다고

상: (침묵)

내: 그러더니 티브이만 보다가 집에 가더니 문자를 보내더라고요. 문자로도 엄마 그만 울라고 그렇고... 딸도

       결국 내 마음을 모르는 것 같아요

상: 따님이 그렇게 반응하니까 그런 반응이 이해하기 어렵고 섭섭하신거죠?

내: 네. 내가 우는데 왜 위로는 못하고 그렇게 매몰차게 문자를 보낼까요?

상: 네, 많이 섭섭하셨겠어요... 그리고 나서 따님에게 왜 그런 문자를 보냈냐고, 또는 엄마가 그러면 마음이        

     섭섭하다고 말씀해보셨어요?

내: 아뇨, 그런 건 생각도 못해요

상: 생각도 못한다고요? 그런 질문하시는 게 어려우세요?

내: 내가 예전 같으면 편하게 당당하게 할 텐데... 이제는 내가 돈을 받는 처지가 되니까.... 함부로 말도 하기 어려워졌어요... (울음)


오늘의 대화중 가장 나를 놀라고 슬프게 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내담자는 사별, 경제적 어려움, 가족들과의 소원해진 관계 등 복합적인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경제적으로 딸에게 의지한 뒤로 딸과의 관계도 달라져서 힘들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상담사로서는 감정적이 되어서는 부적절할 수 있는 상황이기에, 애둘러서 "그래도 자녀분들을 낳아주고 키워주신 공로가 있으신데 어머니로서 당당할 수 있지 않으세요?"라는 반문을 해도 이런 질문은 내담자를 더 절망적이고 힘들게 할 뿐이다. 어머니인 내담자는 계속 자식들에게 평생을 베풀고도 미안해하셨다.



일단 많은 이해와 위로를 하며, 딸이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우선 내담자부터 오해 없이 반응할 수 있게 도와드렸다. 딸이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따님과 직접 이야기해보시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당부와 함께. 주말에 다시 온다는 딸과 무엇을 하며 무슨 대화를 할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내담자의 식사와 수면 문제에서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 후 세션을 마쳤다.


이분은 본인이 샌드위치 세대라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는 부모를 모셨고, 아이들을 키우고 길렀는데, 이제는 혼자 모든 것을 감내하고 견뎌야 한다고 느낀다. 그 분이 문을 통해 복도를 걸어 나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는데 그 뒷모습이 작게 느껴졌다.


이분은 무엇을 위해 미국 엘에이에 와서 지금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분의 남은 여생을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며,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옆에서 무엇을 도와드릴 수 있을까?


이후 일정을 마무리하고 밤 10시가 넘어 고속도로를 통해 집에 오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그 분의 서럽게 우는 모습과 집에 가시던 그 뒷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사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식은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상담사는 그 내담자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내담자는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차 안에서 올려다 본 검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내 생각들도 잘게 쪼개졌고, 고요한 암흑 속에서는 나와 내담자, 그리고 부릉하는 엔진 소리만 느껴졌다.


아직 뜨겁고 건조한 공기때문에 목이 말랐지만, 왠지 옆에 있는 물을 마시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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