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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부메랑 Jul 27. 2020

심미안을 지닌 내담자 L

엉뚱한 듯 천재 같은 내담자

태양볕이 본격적으로 뜨거워지기 시작하던 한 달 전, 아침에 출근해서 보니 사무실 안에 있는 내 우편함 안에 새로운 케이스 다큐먼트가 올려져 있었다. 새로운 내담자를 만나게 되는 그 첫 절차는 바로 이렇게 시작된다. 상담소에 내담자의 의뢰가 들어오면, 디렉터가 비서와 상의해서 각 상담사의 워크로드와 성향 (전문성, 전공, 성별 등)을 고려해서 어떤 상담사에게 이 내담자를 맡길지를 결정한다. 그 결정이 이루어지면 내담자의 이름과 연락처, 상담을 받고자 하는 이유 등의 간략한 정보가 기입된 한 장의 뉴 케이스 다큐먼트가 상담사의 우편함으로 들어오게 된다. 아침에 오면 동료들과의 인사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우편함을 여는 것인데, 이렇게 내담자의 요청이 들어있을 법한 우편함을 여는 순간은 마치 시티 헌터가 도쿄 신주쿠에 있는 칠판으로 된 게시판에 가서 자신의 서비스를 의뢰하는 암호인 XYZ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할 때 느꼈을 법한 그런 느낌을 받는다.


한 달 전 그렇게 이니셜 L의 내담자가 나의 내담자가 되어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내담자는 40대 초반의 흑인 여성으로 키가 매우 컸지만 체형은 마른 편에 속했다. 첫 상담 때에 내가 받은 인상은 표정이 무미건조하고,  말투가 마치 기계음처럼 특이했다는 것이다. 상담 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고, 얼굴 표정은 웃는 얼굴도, 그렇다고 무표정도 아닌 그런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말도 너무 빠르게 했고, 마치 자동 서비스에 나올 법한 기계음처럼 말을 했기 때문에 알아듣기 힘들어서 여러 차례 "뭐라고요 (Excuse me?)"라고 해야 했다. 내담자가 상담을 요청한 이유는 본인의 외상 후 트라우마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와 불안장애 (Anxiety Disorder)의 증상들 때문이었다. 첫 상담 때는 앞으로 상담을 어떻게 해 나갈지 조금 난감하기도 했다. 말을 너무 빠르게 하고 발음을 좀처럼 못 알아듣게 말을 하는 데다가, 표정도 자세히 보면 내게 집중을 하기보다는 마치 뭔가에 홀린 듯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주부터 이 내담자가 바뀌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고, 말투와 발음도 평범한 그것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첫 상담과 두 번째 상담 때 나를 경계하고 긴장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나와 상관없이 내담자 본인의 삶의 환경과 경험이 달라져서 그럴 수도 있다. 더욱 놀란 것은 대화를 하다 보니 이 내담자의 사고방식이나 태도가 굉장히 건강하고 긍정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틈틈이 말하는 단어나 예화, 본인의 철학에 있어서 나름대로 깊이도 있어 보여서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첫 2주간 내담자를 내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판단하려 했던 내 모습을 반성했다. 물론 그렇게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2주간 보여진 내담자의 모습이 그랬고, 나로서도 상담 노트에 그런 관찰된 모습을 적어야 했기에 그렇게 했던 것이었지만. 내담자는 20년 전에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과 심한 말다툼을 벌이다가 그 사람이 쏜 총에 복부를 맞았다. 그 총알은 내담자의 복부 중앙부를 뚫고 지나갔고, 내담자는 바로 응급실로 실려가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내담자는 가끔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인 삶과 태도, 감사함 등을 강조했는데, 오늘에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담자는 수술 중 근사체험 (NDE: Near Death Experience)을 했다. 나도 다큐멘터리와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근사체험은 말 그대로 "거의 죽은" 상태로, 육체적으로는 잠시 죽었다가 깨어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총에 맞아 몸이 피범벅이 된 채 응급실에서 수술을 받던 L은 자신의 몸에서 나와서 수술실 천장에 둥둥 떠서 수술받던 자신의 몸을 보면서 의사들이 간호사들과 했던 대화를 기억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살아나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L은 그 이후로 하루하루를 말 그대로 삶의 마지막 날로 여기며 매일을 감사하게 여기도 살고 있다고 했다. 



가끔 그녀는 잠을 자다가 총을 맞았던 순간의 그 기억이 섬광처럼 나타나서 잠을 깨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그 때 자신에게 총을 쏜 사람과 닮은 사람이 있으면 불안해진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어느덧 나름대로 나와 그녀 사이에는 라포도 형성되었다. 그런데 지난주와 이번 주에 있었던 그녀와의 상담시간을 돌이켜 보면 오히려 상담사인 내가 그녀로부터 뭔가를 더 많이 배우게 되었고,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거침없이 자신의 철학과 삶의 의미를 말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가끔은 긍정적 삶과 염세적 삶의 한가운데서 망설이는 내 자신을 보게 되고, 타인의 지적과 부정적 피드백에 흔들리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는 나를 돌이켜보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상담실에서 그녀의 말을 멍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녀가 얼마나 재치있고, 지적이고, 자신있게 말을 하는지, 가끔 그녀가 근사체험을 통해서 천재가 된게 아닌가 하는 느낌조차 받는다. 


오늘도 그녀는 자신의 긍정적 삶에 대해 마치 웅변하듯이 말하고 상담실을 나갔다. 그녀의 꿈은 사탕을 만들어서 파는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큰 돈을 버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자신의 손과 기술로 사탕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팔면서 그날 사람들이 삶의 달콤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부정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면 자신의 긍정적인 태도가 영향을 받게 되는 것 같아서 싫다고 그녀는 그런 사람들과는 가급적 어울리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남이 뭐라든 본인은 신경 쓰지도 않고 그런 말에 흔들리지도 않는다고 하면서 내게 마이클 잭슨의 말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마이클 잭슨의 특유의 춤과 대표적 노래만 몇 개 아는 내가 그가 했던 의미심장한 말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마이클 잭슨은 다른 사람의 비난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 했어요. 그 이유는 그 사람들이 하는 비난은 결국 잘 살펴보면 그 사람들이 바로 평소에 자기 자신들에게 하는 말들이지 실제로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지요. 참 좋은 말 아닌가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마치 나보고 오늘 한 번 그 말을 천천히 묵상하며 힘을 얻으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녀가 남긴 마이클 잭슨의 말과 그녀의 표정은 꽤 강한 파장을 내게 남겼다.



긍정적 삶의 태도와 감사. 내게는 가끔 진부하게 들리기도 하는 말인데, 나의 내담자는 근사체험을 한 뒤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하며 매일을 살아왔다. 그녀가 했던 말들은 마치 그녀가 내 마음을 심미안을 갖고 모두 파악하고 읽어낸 후 내게 필요하다고 느껴서 전해준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힘이 있었다. 가슴이 허전했고 입이 심심했다. 비서의 책상에 보니 빨간색 왕캔디가 몇 개 있길래 하나를 집어서 포장지를 벗긴 뒤 입에 넣었다.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을 보니 여름 치고는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파란 하늘을 보며 빨간 사탕을 먹고 있으니 정말 그녀가 말한 '달콤함'이 느껴지며 마음이 따뜻했다. 



근사체험을 했던 그녀의 첫인상은 엉뚱한 사람이었지만, 점차 천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오늘은 내게 캔디를 통해 따뜻한 마음이 회복되게 도와준 마법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캔디로 인해서 나도 다시 힘을 내어 하루하루를 긍정적인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고자 노력할 힘을 얻었다.


그녀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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