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이야기 13
니콜라스가 해양기계 디플롬을 받던 2008년 국제금융위기가 닥쳤다. 월가의 리먼 브라더스와 거대 금융권 파산이 만든 거대한 물결은 대양 건너 프랑스까지 밀려왔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은행이던 베엔뻬 파리바 은행이 펀드 상품 상환을 중단했고 크고 작은 은행에는 현금을 인출하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 길었다.
그가 다니던 요트 회사에도 재정 위기가 왔다. 직업학교 훈련생이던 그는 해고 1순위였다. 혼자서 다른 회사를 찾으려 했지만 사람들은 요트를 팔려면 팔았지, 누군가를 고용할 계획은 당연히 없었다. 남프랑스의 호화 요트 업계는 월가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사업 중 하나였다. 항구의 요트 정박장은 오도 가도 못한 요트들로 가득했다.
학교도 끝나고 회사에서도 잘렸다. 살 길을 모색해야 했다. 언제까지나 할머니 집에 얹혀 살 수도 없었다. 해군 모집 광고를 보았다. 해양기계를 전공하기도 했고, 바다의 경험도 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숙식이 제공되는 데다 월급까지 나왔다. 그에겐 안정적인 삶이 필요했다.
해군에 입대하려면 먼저 1년 동안 예비 과정을 수료해야 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옆동네 초등학교에 서 기초 군사 훈련을 받았다. 더 이상 할머니에게 폐를 끼칠 수 없어 다시 리디아의 집으로 돌아갔다. 리디아는 니콜라스가 엄포를 놓고 떠난 뒤 많이 호전됐다. 그녀의 말론 술도 끊었다고 했다. 믿을 순 없지만 이젠 신경을 껐다. 한 지붕 아래 그들은 서로가 필요한 만큼만 부딪혔다.
해군 예비학교에서 첫사랑 로라를 만났다. 훈련 동기생이었다. 로라의 갈색 머리칼은 보드라웠고 눈매는 깊었다. 열여덟 동갑이던 그녀는 그가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그토록 그리워하던 감정을 채워주었다. 사랑. 충분한 사랑. 그리고 충분한 관심. 그들은 십 대도 성인도 아닌 애매한 지대에서 사랑을 이어갔다. 언덕 위로 올라가 노을을 보면서 미래를 이야기했고, 집에 놀러 가 앨범을 들추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니콜라스는 로라와의 첫 섹스를 기억한다. 열세 살 적 엠마와 섹스를 실패한 뒤로 줄곧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첫 섹스를 하겠다고 다짐해온 그였다. 로라라면 그럴 자격이 충분했다. 그해 겨울, 막 해가 진 7시 무렵이었다. 창가에 어스름이 졌다. 헤어질 시간임을 깨달은 연인은 서로를 더 붙잡아두고 싶었다. 키스를 했고 옷을 하나씩 벗겼다. 서로의 몸을 샅샅이 탐색했다. 섹스의 쾌감은 상상보다도 더 강력했다.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에 빠진 그들은 틈 날 때마다 섹스를 했다. 아니, 없던 기회도 만들었다. 아직 호텔에 갈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칸 근교에는 언덕이 많았다. 공원에서, 숲에서, 바닷가에서 사랑을 나누길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십 대의 마지막 자락이 저물어갔다.
이듬해 여름 여러 해군 기지에서 보충 병력을 구했다. 니콜라스는 대서양으로 가고 싶었지만, 로라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툴롱(Toulon)으로 지원했다. 마르세유와 칸 사이에 있는 툴롱 해군 기지는 대대로 프랑스의 제1의 해군 기지였다. 18세기 말 나폴레옹이 영국 해군을 격파하며 처음 존재를 알린 곳이자 <레 미제라블>에서 쇠고랑 찬 장발장이 큰 배를 끌며 노역하던 그 항구에서, 니콜라스는 보초를 서고 훈련을 받았다. 정박된 잠수정과 항공모함들을 보며 그는 이곳에서 일할 자신의 모습을 꿈꿨다.
그가 툴롱에서 일했던 여름 동안 로라는 다른 남자를 만났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그는 미련도 없이 뒤돌았다. 믿었던 사람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사랑을 쏟아부은 사람에게 당한 배신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북쪽 브르타뉴의 로리용(Lorient) 기지로 발령을 받았다.
혹한기 브르타뉴의 파도는 드셌고 대서양의 바람은 매서웠다. 겨우내 극한 훈련을 받다 무릎에 부상을 입었다. 회복은 더뎠고 니콜라스는 계속해서 낙오했다. 모든 훈련은 달리기가 기본이었다. 테스트는커녕 무릎 상태가 악화돼 걷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3개월 만에 퇴역을 결정했다. 인생 처음으로 자신의 한계보다 큰일을 맡았단 생각이 들었다. 일 년이 넘도록 갈망하던 미래를 잃은 턱이라,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닥쳤다. 자신이 이처럼 나약한 존재인가에 회의감도 들었다.
칸으로 돌아온 그에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돈도, 여자친구도, 일도, 가족도.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