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직업학교

니콜라스 이야기 11

by 전윤혜


중학교 졸업 성적은 20점 만점에 평균 10점이 되지 않았다. 학교에선 마지막 학년을 유급하라고 했다. 또다시 유급이라니. 친구들은 리쎄(Lycée,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준비 중이었다. 리디아는 니콜라스에게 차라리 니스에 있는 2년제 직업학교인 해양기계학교에 가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직업학교에선 한 주는 이론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일을 했다. 해양기계학교는 요트 문화가 발달한 남프랑스에 특화된 직업학교로, 차와 모터바이크를 좋아하는 그에게 요트를 다루는 일은 나쁘지 않게 들렸다. 당시 리디아는 일을 그만둔 상태였다.


합격 결과는 새 학기가 지난 다음에야 발표되었다. 니콜라스는 결과를 기다릴 때까지 중학교에 다시 가야 했다. 유급 첫날, 선생님은 니콜라스를 특수학생 반에 넣었다.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리디아에게도 알렸다. 공부를 못한다고 정신질환 취급하는 이런 개떡 같은 학교는 더 이상 가고 싶지 않다고. 그는 화요일 음악 수업 딱 한 시간만 학교를 갔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곡을 배웠다. 음악 수업을 세 번 하자 직업학교에서 합격 연락이 왔다.


학교는 니스의 악명 높은 씨떼 중 하나인 레물랑(Les Moulins) 안에 있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학교 시설과 안전에 돈을 많이 투자한 학교였다. 그곳에서 니콜라스는 한 달에 한 주 학교에서 기본 교과와 기계 이론, 노동 권리를 배웠다. 재미는 있었다. 보이지 않는 학문이 아니라 실생활에 적용되는 이야기들이라 그의 성향과 잘 맞았다.


그러나 학교는 씨떼의 중력을 거스를 수 없었다. 수업 환경은 학교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마리화나를 피웠고 선생님 앞에서 쓰레기통에 오줌을 눴다. 기계 청사진을 수업 중에 라이터로 태우고, 시험 정답지를 훔쳐서 카피해서 전교생에게 돌렸다. 타깃은 항상 사회 과목이었다. 니콜라스는 1년 내내 사회를 20점 만점에 19점 이상 받았다. 사회 선생님은 일 년 뒤 더 이상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우울증에 걸렸단 소문이 돌았다.


학교 학생들이 시떼 주민과 시비가 붙을 때면 얼마 후 라까이들이 학교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못 박은 각목을 들고서 운동장에서 학생 이름을 불렀다. 당사자는 한 달씩 잠적했다. 생명의 위협이니 그럴 수밖에. 씨떼에선 걸핏하면 도난 사고가 일어났다. 가끔 총기 사고도 있었다. 직업학교로 진학하며 스쿠터를 팔고 50cc 중고 모터바이크를 산 니콜라스는 누군가 모터바이크를 훔쳐갈까 꼭 학교 안에다 주차하고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직업학교 첫 해는 2006년이었다. 프랑스에선 그동안 쌓인 프랑스인과 이민자 간의 갈등이 곪다 못해 터지고 있었다. 십 년 뒤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테러의 씨앗이 된 무함마드 만평이 이때부터 실렸다. 학교에서는 히잡을 착용했단 이유로 여학생이 쫓겨나기도 했다(프랑스는 학교를 중립 지대로 여기기 때문에 종교적 성향을 드러내거나 설득할 수 없다). 레바논 이슬람의 이스라엘인 납치로 두 나라의 전쟁이 일어났다. 이라크에선 사담 후세인이 참수당했다. 베프 스테판과 카림이 이민자 출신일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던 니콜라스도 점점 씨떼의 싸움과 절도, 범죄 행위를 보며 조금씩 다른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길가다 이유 없이 맞은 것, 친구들이 맞는 것, 공공연히 훔치는 것, 버젓하게 선생님을 능욕하는 것, 모든 것을 보며 진절머리가 났다. 언제부터 폭력이 모든 가치를 추월해 버린 걸까.


학교에서 이론이 끝나면 남은 삼 주는 니스 옆 비요트(Biot)의 요트 항구에서 일했다. 일할 회사는 학교가 연결해줄 수도, 개인이 찾아 신청할 수도 있다. 니콜라스의 경우는 올리비에가 회사를 찾아줬다. 올리비에 샵의 단골 고객인 지미가 요트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소개로 요트 회사인 레비아튼 마린에 면접을 봤다. 사장인 티에리는 호주 출신으로 호주 억양이 강한 프랑스인이었다.


니콜라스는 처음엔 요트 청소를 하다 곧 지미의 조수가 되었다. 보트에서 일하는 것은 재미났다. 기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게 되었고 이러한 원리는 모터바이크를 다루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대개는 실수를 통해 배운 것이다. 예로, 요트의 접합부에 소리가 날 때면 윤활제를 뿌렸는데 하루는 모터바이크 브레이크에 소리가 나길래 생각 없이 윤활제를 뿌렸다가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아 죽을 뻔한 일 같은 것들 말이다. 시도를 먼저 하고, 생각은 나중에 하는 타입이었다. 다만 다시는 반복하지 않았다. 몸은 실수를 확실하게 기억하니까.


파란 하늘 아래, 나루에 누워 끼익대는 뱃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이 평화로웠다. 이렇게 돈을 벌다 보면 독립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월급은 첫 해엔 560유로, 두 번째 해엔 720유로였다. 열여섯 살에겐 많은 돈이었다. 월급의 대부분은 모터바이크 유지비로 썼고 이따금 리쎄에 다니는 친구들과 싼 레스토랑이나 볼링장에 가 노는 데 썼다. 집 생활비도 조금씩 보탰고 돈을 모아 부엌에 새 오븐도 들였다.


그런데 리디아가 다시 심각한 알콜 중독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니콜라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돈 잘 버는 남자친구에다 아들까지 돈을 버니 마음이 편안해진 걸까? 평화를 견딜 수 없는 걸까. 망가뜨려야만 삶을 느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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