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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를 꿈꾸다 Apr 14. 2017

당신이 아는 장애인은 누구인가?

그들이 편하면 우리도 편합니다

한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명인들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흔히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에 관련한 것이었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면 순간적으로 온몸의 근육이 수축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마치 루게릭병과 유사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한 사람이 얼음물 샤워를 한 후, 세 명을 지목한다. 지목된 사람은 24시간 안에 똑같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던지, 100달러를 기부해야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로농구선수 출신인 박승일 코치와 가수 션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승일희망재단’과 연결되어 행사가 진행되었다. 박승일 코치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


약간의 잡음도 함께 들려왔다. 원래의 취지를 간과한 채로 재미 삼아 혹은 개인의 홍보를 위해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처음 시작되었던 미국에서는 기부금액의 사용처 등에 여러 논란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생소했던 질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어 주고, 장애인의 문제를 보다 가깝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부가 활성화되었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출처 : 영화 <블랙>


우리가 아는 장애인들


<블랙>(2005)은 보지도 듣지도 못 하는 8살 소녀 ‘미셸’과 그녀를 치료하는 특수학교 교사 ‘사하이’ 선생님의 이야기다. 사하이 선생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미셸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하이 선생님은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다. 제자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자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그녀의 곁을 떠난다.


이 영화는 헬렌 켈러의 인생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실제로 헬렌 켈러 재단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헬렌 켈러는 어린 시절 뇌척수막염이라 추정되는 질병에 걸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결국 말도 못 하게 되는 중복장애를 얻게 되었다. 세상과의 소통이 막힌 채 살던 헬렌은 앤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최근 설교자이자 동기부여 연설가인 호주의 닉 부이치치가 각광을 받고 있다. 그는 팔과 다리가 없는 '해표지증'이라는 희귀병으로 태어났다.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는 등 많은 어려움의 시기를 겪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눠주는 동기부여 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체장애인들을 위한 기관인 '사지 없는 인생(Life Without Limbs)'의 대표를 맡고 있다.


헬렌 켈러나 닉 부이치치는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훌륭한 인물이다. 사람들은 초인적인 의지로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에 대해서 박수를 치며 존경심을 표한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장애인들과 그들의 문제는 외면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장애를 이겨내고 성취를 이룬 이들에게는 존경심과 함께 아낌없는 격려를 주어야 하지만, 장애인들이 매일 일상 가운데 맞부딪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는 공감과 지원이 필요하다.


출처 : 영화 <말아톤>


영화로 시작된 관심이 지속되기를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나의 왼발>(1989)의 다니엘 데이 루스, <포레스트 검프>(1994)의 톰 행크스처럼 뛰어난 연기력이 우선은 주목 받았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던 영화들은 장애인들이 마주한 냉험한 현실을 냉정하게 일깨워 주기도 했다. 묻힐 뻔했던 일화들을 대중에게 다시 환기시켜주면서 만만치 않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말아톤>(2005)은 5살 지능을 가진 20살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다.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초원이는 달리기에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영화를 초원이 중심으로 보자면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 주파한 인간승리 드라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보자면 장애인 가정이 접한 현실을 체감할 수 있다. 극 중에서 엄마의 소원은 초원이보다 하루 더 빨리 죽는 것이었다. 돌봄에 지친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마저도 불투명하다는 사실에 더욱 좌절한다.


<도가니>(2011)는 청각장애인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다. 기간제 교사로 학교에 들어온 젊은 교사가 청각장애아를 상대로 성폭행과 학대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악행을 세상에 알리고, 관련자들을 법정에 세웠다. 하지만 사건의 가해자들은 가벼운 솜방망이 처분을 받을 뿐이다. 재판 결과에 항의했지만, 가해자들은 학교에 복직되었다.


소설과 영화로 알려진 '도가니 사건'은 장애인이 노출된 범죄에 대해 알려주었고,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다. 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된 이후, 사회복지법인은 설립허가가 취소되었고, 인화원도 폐쇄되었다. 인화원에서 생활하던 인원들은 새로운 복지시설로 이동했다. 모든 문제가 잘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지만, 최근 이 복지시설이 ‘인권 침해 의심 사례’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로 촉발된 관심이 일시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되는 것까지 필요함을 가르쳐주었다.  

 

출처 : 창비 <도가니>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들


장애인의 날이나 명절 연휴를 앞두고 서울, 대전, 광주 등의 대도시의 버스터미널에서 장애인들의 시위와 집회가 열린 적이 있다. 장애인도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타고 고향에 가거나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주장이다. 시외버스의 경우 저상버스를 찾아보기 힘들고, 시·군 장애인 콜택시는 같은 지자체 내에서만 운행을 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시외버스를 타고 여행을 다니거나, 명절 때 고향을 가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집에 혼자 있던 3급 장애인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화재로 인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3급 장애인이 돌볼 사람 없는 사이에 호흡기가 빠져 의식불명이 되는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이 두 사고는 3급 이하의 장애인에게는 활동보조지원 서비스가 지원되지 않는 현실과 관련이 깊다. 장애인들은 장애인의 다양한 환경을 고려해 장애를 판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장애등급제'를 반대하고 있다.


장애인 등급제와 함께 논의되고 있는 것이 '부양의무제'이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쳐도 부양의무자가 기준 이상의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주지 않는 제도이다. 부양의무자는 부모·자녀·사위·며느리가 포함되며, 부양의무자가 있는 기초생활수급자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에 따라 수급액이 깎이거나 탈락하게 된다. 하지만 부양의무자의 대부분이 실제 부양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빈곤의 문제가 악화되는 형편이다.


몇 해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그 일정 중에는 국내 최대의 장애인 생활시설인 음성 꽃동네를 들리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교황의 방문지 중에서 유일하게 논란을 부른 곳이 꽃동네였다. 장애인단체들은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기도 했다. 꽃동네가 장애인의 자립생활의지를 북돋는 대신 지역사회와 격리시키는 대규모 수용 시설이라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을 자립시키기보다는 보호 위주로 정책이 짜여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권 패러다임은 수용과 보호, 격리가 아닌 탈시설, 즉 시설에서 벗어나 자활해 나가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 시설에 수용하거나 장애인학교에서 보호한다는 이유로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일반학교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탈시설과 자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이와 병행되어야 할 장애인 복지 수준은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다다.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정책이 전환되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지역 내 복지서비스나 복지시설에 대한 지원과 복지 형평성이 증대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 '장애인 등급제', '부양 의무제', '장애인 수용시설' 외에도 장애인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제들이 쟁점을 이루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들과 일상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날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함께 버스로 여행 다니고, 함께 학교를 다니고, 어울려 생활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날들을 기대한다.


출처 : 영화 <아이 엠 샘>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제8요일>(1996)은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나 가정에서는 불행한 남자 ‘아리’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조지’가 주인공이다. 요양소에 살던 조지는 가족들이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자 직접 찾아 나선다. 그러다가 우연한 교통사고를 통해 조지와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의 동행과 우정이 시작된다. 실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파스칼 뒤켄이 주인공을 맡았고, 칸영화제에서 공동 남우주연상까지 타게 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아이 엠 샘>(2001)은 7살 지능을 가진 아빠와 7살 이상 크고 싶지 않은 딸의 이야기다. 아빠는 커피 전문점에서 일하며, 아내가 버리고 간 딸 루시를 키우고 있다. 이 부녀는 힘들지만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루시가 7살이 되면서 사회복지기관 전문가가 찾아온다. 그러면서 샘이 루시를 부양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시작된다. 딸과 가정을 지키고 싶은 샘. 그리고 여기에 변호사 리타가 함께 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는 마작게임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츠네오가 유모차로 산책하는 뇌성마비 장애인 조제를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제의 할머니는 장애를 죄악시했다. 조제는 할머니로부터 과잉보호를 받으며 성장해왔는데, 츠네오를 만나면서 점차 사랑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홀로 서는 법까지도 터득하게 된다.


이러한 영화들은 장애인과의 우정, 가족애, 사랑, 이별을 보여주며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간의 이해와 소통에는 장벽이 있기도 했다. 장애인들이 지닌 사랑과 욕구,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적 어려움도 숨기지 않았다. 장애인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었지만, 또한 동시에 그 안에 기쁨 또한 담겨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장애인과 함께 하기보다 격리하고 고립시키려 한다. 지역사회를 통해 서로 배워가며 친구를 만들어 가야 하지만 그러한 기회는 거절되어 왔다. 매년 12월 3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키고 있다. 이 날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들의 재활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그들을 향해 굳건하게 쌓인 담들이 어서 제거되길 바란다. 장애가 장애물이 되지 않는 그러한 날을 고대한다.


출처 :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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