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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를 꿈꾸다 Mar 04. 2017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쇠락해가는 육신, 늙고 병듦에 관하여

노부부의 사연을 기사로 만난 적이 있다. 치매와 전신마비인 아내를 살해한 70대 남편에 관한 것이었다. 요양병원을 전전하며 병든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간병했으나 회복할 가능성이 보이질 않았다. 자녀들에게 짐이 된다고 여긴 남편은 범행을 저지르기로 결심한다. 아내를 살해한 후, 그 역시 수면제와 농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뉴스를 검색해보면 유사한 사건이 곳곳에서 발생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게 되면서 노인 대상 범죄와 노인 범죄자가 크게 늘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이스 피싱, 떴다방 등이 생겨나 피해자가 속출하기도 하고, 생계형 절도에서 폭력, 살인 등 다양한 범죄가 늘어나며 직접 피의자가 되기도 한다. 무엇이 노인들을 이토록 범죄에 노출되도록 만들었을까?


출처 : 영화 <아무르>


<아무르>에 빠진 <오베라는 남자>


아픈 아내를 살해한 70대 남편의 기사를 읽다가 영화 <아무르>(2012)가 생각났다. 80대 노부부의 평화로운 일상에 병마가 찾아들었다. 아내는 갑작스러운 발작에 반신불수가 되었고, 죽음의 그림자는 점차 몸 전체로 퍼져간다. 아픈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봤지만 남편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늙은 남편은 최후의 결단을 내리게 된다. 


영화 <아무르>는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는 남편을 그린 작품으로, 위기에 처한 노부부의 삶을 사실적이면서도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평생을 해로한 노부부가 쇠락해가는 육체와 함께 고통을 받는다. 늙고 죽어가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껄끄럽지만, 또한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노화와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드는 공평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르(Amour)’는 사랑이라는 뜻을 지닌 불어 단어이다. 영화는 내내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지금껏 그들의 삶을 지탱해 온 것은 사랑이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상황 앞에 한계를 느낀다.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 난관을 헤쳐나가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벅찬 것이었다. 


<오베라는 남자>(2015)도 노인이 처한 문제를 다룬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홀로 사는 오베는 수십 년 일한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다. 홀로 남은 오베는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방해로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고독과 무력감으로 인해 자살을 꿈꾸던 오베를 살리는 것은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이었다. 오베가 자살이 아닌 지병으로 천수를 누릴 수 있도록 마지막을 함께 지켜준다.


출처 : 영화 <오베라는 남자>


노인이 겪는 고통들


노년이 되면 보통 4가지의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한다. 병고(病苦)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쇠약해지고, 심신의 겪는 건강상의 고통이다. 빈고(貧苦)는 퇴직 이후 겪게 되는 가난과 경제적인 고통을 말한다. 고독고(孤獨苦)는 가족과 친구들과 멀어지면서 느끼게 되는 외로움과 고독의 고통이다. 무위고(無爲苦)는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 상실과 무시받는 고통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독거노인은 158만 9000여 명으로 2000년 54만 3000여 명에서 100만 명 이상이 증가했다. 독거노인은 전체 노인의 19.6%에 달했다. 노인 5명 중 1명은 혼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문제가 이미 심각하고, 앞으로도 점점 더 심해지리란 것을 예상할 수 있겠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서로 맞물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지만, 그에 걸맞은 복지를 아직 이루지 못했다. 의학과 보건 위생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었지만, 삶의 질도 함께 향상되지는 않았다. 노인들이 겪는 사회문제와 고통만이 두드러진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자녀들이 부모를 부양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핵가족화 현상, 자녀 교육비 증가 등으로 부모세대들은 노후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로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 번 빈곤의 늪에 빠진 노인들이 빠져나오기 힘든 구조이다. 사회안전망의 구축과 빈곤 노인을 위한 제도적 법률적 정비가 필요하다지만, 아직은 많이 미비하기만 하다.


출처 :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노년을 향한 정서적 접근


2007년 만화가 강풀은 포털사이트 '다음'에 4명의 노인을 내세운 웹툰을 연재했다. 괄괄한 성격과 입담을 가진 새벽 우유 배달부 김만석 할아버지, 매일 새벽 배달 길에 마주치는 파지 줍는 송 씨 할머니, 새벽부터 밤까지 근무하는 주차장 관리인 장군봉 할아버지와 치매를 앓고 있는 그의 아내가 주인공이다. 두 커플을 등장시켜 노년에 맞이하는 사랑과 이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웹툰으로 인기를 끌었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2007년 책으로, 2008년에는 연극으로, 2010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질 수 있던 이유는 그 속에 담긴 메시지에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고 소모적인 사랑이 만연한 시대에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와 함께 외롭게 늙어가는 노인들이 겪는 질병과 고독의 문제도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던 우리나라도 최근 노인 문제, 세대 갈등이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노인들은 오랫동안 존중받는 위치에 있었지만, 산업화 이후 그들의 경험과 지혜는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노인의 권위와 영향력은 크게 감소했다.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존재감을 잃고 상실감과 박탈감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 상처와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 동안 유래가 없을 정도의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휴전, 민주주의와 산업발전, 과학의 발전과 인터넷·모바일 시대... 현재의 노인세대는 이 모든 변화를 경험해왔다. 모진 세파 가운데 살아남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고, 보조를 맞춰 따라가는 것에도 숨이 가빴다. 자기 자신과 주변을 차근차근 살필 겨를조차 없었다. 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빈곤과 같은 경제적 문제 외에도 그들이 겪었던 영광과 좌절에 대한 정서적 이해도 반드시 필요하다. 


출처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마음속에 남아있는 <버킷리스트>


노인 문제는 이미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노인 복지 문제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단체들도 등장했다.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은 UN으로부터 노인복지부문 UN상을 수상한 최초의 국제 민간기관이다. 영국을 기점으로 전 세계 60개국 90여 협력기관의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노인 지원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모든 노인이 당당하고 활동적이며 건강하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매년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노인을 공경하는 미풍양속을 간직하게 하고 노인 문제에 대한 나라와 국민의 관심을 높이기 위하여 제정한 날이다. 또한 매년 6월 15일은 UN이 정한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이다. 노인학대에는 신체적, 정서적, 언어적 학대와 방임 등이 포함된다. 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지정했다.  두 날 모두 노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2015년 벽두부터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가 500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강원도 횡성에서 76년을 부부로 살아온 98세의 할아버지와 89세의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노부부가 보여준 소박한 삶과 사랑은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노인들을 향한 이해와 관심이 멈추지 않고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지만 어느 순간 다시 잠잠해졌다.


노인들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있다. 영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2007)은 돈을 벌기 위해 모든 열정을 바치느라 사생활이 없던 억만장자 할아버지와 모든 꿈을 접고 자동차 정비사가 되었던 할아버지가 자신이 품었던 소원들을 뒤늦게 이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나이가 들었다 하더라도 하지 못한 일, 이루고 싶은 일들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음을 알기에 더욱 절박할 수도 있다. 결국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노인 문제에 다가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출처 : 영화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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