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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를 꿈꾸다 Apr 10. 2017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나는 내일

서로 다른 배경을 가졌다는 사실이 장애물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선거기간 중 모슬렘의 미국 입국을 차단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실제로 반이민 행정명령을 발령해, 테러와 관련된 이라크, 이란,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리비아, 예멘 등 7개국 국민의 미국 비자발급 및 입국을 90일 동안 일시 금지했었다.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기도 했지만, 이러한 기조는 계속 이어졌다.


그의 주요 대선 공약에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 건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장벽을 건설하는 이유는 불법 이민자들을 막기 위함이다.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고, 마약과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선전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고, 현실적인 문제들도 존재한다. 어쨌거나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이민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후임인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전임 트럼프 정부의 이민정책을 되돌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멕시코와의 남부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일을 중단시켰다. 미국-멕시코 국경의 불법 이민자 단속으로 갈라진 부모와 자녀를 재결합시키기 위한 테스크포스를 가동했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중미 3국과 맺은 이민 협정을 중단했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이들 국가에 거치는 이민자들을 현지에서 수용하도록 한 것으로, 미국은 무역 보복을 무기로 이들 국가를 압박했었다.



출처 : 영화 <이민자>



기회의 땅을 찾아온 이주민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중에 부모를 잃은 두 자매가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입국했다. 동생은 질병으로 인해 입국하자마자 격리 조치되었다. 언니는 배안에서 수치스러운 일을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미국에 도착하면 곧 만나리라 믿었던 이모와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강제 추방의 위기에서 한 남자의 도움으로 미국에 남게 되었다. 그 남자로부터 새로운 일자리를 얻게 된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배 안에는 먹을 것도, 머물 공간도 부족했다. 부모를 잃은 두 자매에게 특히나 혹독했다. 기회의 땅에 들어와서도 고난은 멈추지 않았다. 에바는 여동생의 치료비를 벌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천시받는 일도 각오할 수밖에 없었다. 에바를 곁에 두고 삼각관계를 이루는 브루노와 올란도 실은 이민자 출신이었다. 그들도 험난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성장했었다.


<이민자>(2013)는 192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를 통해 약 100년 전 미국의 이민시절을 엿볼 수 있다. 1차 대전 후 미국은 유럽과 각국 전쟁으로 무기와 각종 물자를 팔아 부가 넘쳐났다. 유럽인들은 폐허가 된 조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대거 이주해 왔다. 불법 영업을 하는 주점이 운영되고, 이들을 상대로 부수입을 올리는 경찰이 등장한다.


<이민자>는 미국 이민 역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엘리스 섬에서 촬영된 최초의 영화로도 유명하다. 본토로 들어가는 길목인 앨리스 섬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신대륙을 찾은 이민자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적합한 사람인지 판단하고 입국을 허가 혹은 불허를 결정했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민자들이 만들어낸 나라임이 분명하지만, 이민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고르지 않다.



출처 : 영화 <그랜 토리노>

 


타문화를 품는 넉넉한 마음


<그랜 토리노>(2008)의 주인공인 월트는 한국전쟁의 참전용사이며, 또한 오랫동안 자동차 회사에 근무했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랜 토리노'는 포드가 출시한 자동차 이름이며, 월트가 직접 만들던 차이기도 하다. 아내는 신부를 통해 남편의 고해를 유언으로 남기지만, 까칠한 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고통은 쓰고, 구원은 달다는 신부의 말을 부정한다. 한국전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월트의 이웃집에는 몽족 일가가 살고 있다. 소심한 타오에게 몽족 갱단인 사촌 형이 조직에 들어오라고 권한다. 그 첫 임무로 이웃집에 있는 차를 훔치라고 한다. 도둑질은 실패로 끝나고, 타오는 가족과 함께 찾아와 사과를 한다. 누나와 어머니는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월트의 집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한다. 처음에는 꺼리지만 성실하게 맡은 일을 수행하는 타오에게 월트는 애정을 느낀다.


몽족은 베트남, 라오스, 중국 등의 산에 거주했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중국이 몽족을 죽이자 미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월트의 생일날, 이웃집 잔치에 초대받게 되었다. 그 날 몽족의 전통문화에 대해 배우게 된다. 아이들이라도 머리를 만져서는 안 되는데, 영혼이 머리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눈을 쳐다보면 실례라고 생각하여 시선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면 웃는데, 그것은 무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황스러워서 그러는 것이다. 이후부터는 꽃과 음식을 들고 찾아오는 이웃들과도 친해진다.


월트는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타오를 데리고 건설현장에 간다. 그전에 이발소에 데려가 말하는 방법, 태도 등을 가르친다. 필요한 연장을 구매하러 함께 가기도 했다. 며칠 후,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타오가 갱단에게 해코지를 당한다. 월트가 대신 나서 복수를 해 주지만 타오의 가족은 곧 갱단의 보복을 당한다. 월트는 타오의 가족을 위해 마지막 결심을 하게 된다.


월트와 타오의 관계는 어느 사이 멘토와 멘티처럼 발전했다. 그들 가족이 느끼는 고통도 함께 느끼게 되었다. 자신은 지병으로 곧 세상을 등질 것이 확실한데, 남겨질 어린 세대에게는 좋은 미래를 남겨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훈장과 자동차를 타오에게 남긴다.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여 이웃을 지켜주었다.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고,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명예요 가치이다. 그것이 그가 평생 경험한 삶과 죽음의 의미, 쓰고도 달콤한 고통과 구원에 대한 의미이기도 하다.



출처: 영화 <미나리>



<미나리>(2010)는 희망을 찾아 미국 이민을 선택한 한국 가족의 삶을 그렸다. 아빠 ‘제이콥’은 병아리 감별사로 10년을 일하다가 아칸소로 이주했다. 엄마 ‘모니카’는 아칸소의 황량한 삶이  버겁다.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 싶다. 어린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외할머니 ‘순자’가 한국에서 들어왔다. 가방 안에는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 씨앗이 담겨 있었다.


영화는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했다. 그는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나 아칸소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제이콥은 정감독의 아버지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만든 인물이다. 할머니 역할도 자신의 할머니에게서 느낀 것을 토대로 만들었다. 주연을 맡았던 스티브 연 역시 미시간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 살았던 자신의 경험을 녹였다고 했다.


영화 자체로도 유명했으나, 영화 밖의 스토리도 관심을 모았다. <미나리>는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시작으로 60여 개 이상의 상을 수상했고, 할머니 역을 맡은 윤여정은 20여 개가 넘은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럼에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제작사에서 제작된,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연출한 영화임에도, 대화의 50% 이상이 한국어라는 이유로 작품상 후보군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전년도에는 <미나리>와 같은 이유로 <페어웰>(2019)이 골든글로브의 외면을 받았다.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아콰피나에게 아시아계 최초의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기는데 그쳤다. 룰루 왕 감독은 "나는 올해 '미나리'처럼 미국 영화 같은 미국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 영화는 아메리칸드림을 기대하는 미국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인은 영어만 쓴다고 규정하는 낡은 규칙을 바꿔야 한다고 일침 했다.


<미나리>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을 찾아온 이민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이들이 느끼는 생경함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느 국민들도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불안과 고통, 그리고 이를 이겨내는 가족애 앞에서 한국과 미국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진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스토리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출처: 영화 <완득이>



이주민 2세들을 향한 인식의 재고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멀리 살던 사람들이 손쉽게 오가게 되었다. 거리에서나 직장에서나, 일상 가운데 외국인을 만나는 경험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저출산 및 노동력 유입으로 인해 결혼이주민과 외국인 노동자가 증가했다. 다문화 가정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이들을 가족과 이웃으로 만나게 되면서 동시에 우리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도 증가하고 있다.


<완득이>(2011)는 집도 가난하고, 공부도 못 하지만 싸움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17세 소년 '완득이'가 주인공이다. 무심한 것 같지만 사랑이 가득한 담임선생님 ‘똥주’와 난쟁이 아버지, 베트남에서 온 엄마, 외국인 노동자 등을 등장시켜 변두리의 소외된 인물의 이야기도 함께 담았다. 집요함과 따뜻함으로 완득이를 이끌어 가는 동주와 점차 변해가는 반항아 완득이를 통해 다문화 가정, 장애인의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진단해 보았다.

 

<마이 리틀 히어로>(2013)는 다문화 가정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이다. 음악감독 ‘유일한’은 한 때 촉망받는 뮤지컬 감독이었지만, 연출한 대형 작품이 망해버린 후 재기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브로드웨이에 진출할 수 있는 서바이벌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과 팀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 고민도 같이 떠안게 된다.


뮤지컬에서 맡게 될 배역은 조선시대의 왕인 정조이다. 다문화 가정 출신인 영광이가 과연 우승하여 배역을 따낼 수 있을까? 우승 후보와는 가장 거리가 멀었던 두 사람은 삐걱거리는 가운데 점차 꿈에 다가선다. 실제로 필리핀과 가봉 출신의 결혼 이주민가정 자녀인 어린이들이 출연하여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주었다. 다문화 가정과 그들이  마주하는 차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국제결혼이 늘면서 다문화 가정이 급증했다. 이주노동자들이 국내에 정착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민자와 다문화에 대한 부정적 정서는 어느 나라나 겪는 문제이다. 경제가 안 좋아질수록 그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인식을 개선해 나가는 과정은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할 주제이다. 정부의 정책이 단기간 성과에 집중한다면 인식 개선 사업은 힘들질 것이다.



출처 :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



다문화 감수성과 포용력이 필요한 시대


행정안전부가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 자료를 활용해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2019.11.1.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수는 222만 명으로 총인구 대비 4.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7개 시도 인구수와 비교하자면 7위인 대구(242만 명)와 8위인 충청남도(218만 명) 사이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외국인과 이민 2세, 귀화자 등 ‘이주배경 인구’가 총인구의 5%가 넘으면 다문화, 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행안부에서는 “외국인주민이 실질적 삶의 터전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잘 정착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정착지원 기초 인프라 조성사업과 우수사례 공유·확산 등 지자체를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6년 이후 현재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다문화교육은 이주 학생에게 한국어, 한국문화를 학습하도록 하는 동화교육에 머물러 있었다. 단순히 많은 문화를 가르치는 국제이해교육과 혼동되고 있던 것. 이제는 대등한 존재로 ‘공존’을 기반으로 다양성을 수용하는 상호 문화주의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한국의 생활과 문화에 대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을 썼다면, 이제는 그들이 자라왔던 문화도 존중해 주고, 배워보려는 노력이 더해지고 있다. 우리 안으로 흡수하려고만 하기보다, 그들과 같은 눈높이로 바라봐 주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동정과 지원의 대상이 아닌 친구와 이웃으로 다가서려는 시도이다.


'톡투미'는 스리랑카, 태국, 베트남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여성들이 결성한 자조단체이다. 서로가 가진 문화적 재능을 통해 다른 이주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적응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한국의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과 금전적 지원을 함으로써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꿔나가려고 노력해왔다.


다양한 문화적 환경 아래서 타인과 조화롭게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 차별 없이 동등한 대우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도록 지지와 격려, 기다림이 요구된다. 나와 다르면, 익숙하게 지내온 것과 다르면, 배타적으로 대하기 쉽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졌다는 사실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더욱 발전적으로 열어줄 것이다.



출처: 영화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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