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총각 하면 이가 갈리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유부남이 좋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그냥 ‘총각’이라는 단어가 싫다는 것이다.
모처럼 의왕시에 있는 엄마 집에 다녀왔다.
요즘 맨날 야근하느라 바빠죽겠는데, 내가 안 가면 쳐들어온다고 하니 안 갈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 탈출했는데, 내 자취방을 보면 사는 꼬라지 좀 보라며 대성통곡을 하고 층간소음으로 신고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207호 이 새끼. 내가 너 때문에 이사 가고 만다.
어쨌든, 그런 것도 있고 쥐꼬리만한 월급에 용돈으로 수혈도 좀 할까 해서 큰맘 먹고 집에 갔던 건데, 집을 나설 때까지 용돈 이야기는 없고 잔소리만 귀에 피가 나도록 들어야 했다.
그래, 독립한 딸이 사회생활도 하고 박봉이지만 월급도 받으니 엄마 입장에서도 용돈이라는 것을 받고 싶을 것이다. 옆집 아들놈이 자기네 엄마한테 십팔케이인지 샤팔케이인지 하는 반지를 사줬네 어쩌고 하는 모양새가 은근히 부럽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놈은 분명히 지 애인하고 쌍으로 맞춘 반지, 헤어지고 나서 지네 엄마한테 갖다 버린 게 분명하다. 그런 더러운 제물로 남의 집에 분란을 일으키다니. 안 봐도 재수탱이다.
하지만 나는 박봉도 박봉인데다가 월세도 내야 하니 나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엄마한테 용돈은 아무래도 아직은 좀 무리다. 사실은 푼돈으로 드려봤자 생색도 못 낼 것이고 해서 작게나마 적금을 붓고 있는데, 적금액이 늘어갈수록 내가 갖고 싶은 물건도 늘어가는 것이 아무래도 불안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총각이 싫다. 그중에서도 총각김치가 싫다.
엄마 말로는 내가 어릴 때 총각김치를 좋아했었다고 한다.
총각김치를 담글 때는 옆에 앉아있다가 넙죽넙죽 받아먹었다고.
그땐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싫다.
왜냐하면 이 지하철 안에 총각김치 냄새가 스멀스멀 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집 대문을 나서는데 엄마가 잊은 것이 있다며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용돈이 나오는구나 하고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데, 엄마의 양손에는 우리 집 냉장고의 절반만 한 김치통이 들려있었다.
“뭐야… 그게?”
“총각김치 담았어. 너 좋아하잖아.”
“그걸 어떻게 들고 가?”
“이렇게.”
엄마는 양손에 든 김치통을 살짝 들어 올렸다. 내가 버스를 타고 20분을 가서 지하철을 두 번을 갈아타야 집 근처에 겨우 도착한다는 사실을 엄마는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나 그거 못 가져가! 그걸 들고 지하철에 어떻게 타?”
“왜? 이거 별로 안 무거워.”
“아, 싫어! 지금 지하철에 사람도 많은데, 교통카드는 어떻게 찍어?!”
엄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왜 상대방의 입장은 생각도 안 하고 자기 보람만 생각하고 일을 벌이냔 말이다. 아 근데 왜 또 슬퍼해!!
나는 엄마와 타협해서 비닐봉지에 열무김치를 적당히 담아가기로 했다.
혹시라도 냄새가 새어나가면 안 되니까 비닐봉지를 세 겹을 쌌다. 그래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라도 가져가지 않으면 내일 엄마가 버스를 타고 20분을 가서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탄 뒤 우리 집 근처에 겨우 도착해서는 나한테 전화를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방 큰 거 잘 가져왔네. 이거 좋다. 나중에 엄마도 하나 사줘라.”
“다음에 갖다 줄게. 이거 어차피 버리려던 거야.”
전 남친새끼가 사준 거거든…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고 길을 나섰다.
나는 뒤 돌아보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안 보일 때까지 문 앞에 서 있을게 뻔했다.
그런 엄마를 보는 것도, 뒤돌아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것도 속이 상했다.
그랬던 애틋함도 잠시!
버스에 타서부터 총각김치 냄새가 새어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버스에서 내려서 4호선을 탈 때까지는 그저 기분인 것 같았는데,
2호선을 지나 선릉에서 분당선으로 갈아탈 때부터 기분이 아니라 진짜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비닐이 터진 걸까? 매듭이 풀린 걸까? 총각김치 대가리의 열무 하나가 겁도 없이 비닐을 뚫고 솟아있는 건 아닐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나는 허세 가득한 전남친놈이 선물한 나름 명품 가방을 메고 있다.
아무도 이렇게 럭셔리한 가방 안에 총각김치가 들어있는지는 모를 것이다.
나만 표정관리를 잘하면 된다.
나는 태연하게 핸드폰을 꺼내 게임을 시작했다.
조금만 버텨보자. 이제 곧 내린다.
엄마. 다음에는 김치 말고 용돈으로 줘.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