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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by 보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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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저의 꿈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저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성공을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의 꿈은 그저 아버지보다 조금 더 오래 살고

아버지는 보지 못한 손주들을 보는 것.

그게 저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꿈이었습니다.


저의 아이들이 할아버지에 대해서 물을 때가 있습니다.

적당히 좋은 이야기만 하면서 얼버무리고 말았던 것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너무 오래되어 흐려진 탓도 있겠지만

이 아이들의 자식들을 만져보고 안아보고

눈을 맞추고 싶다는 간절함에 목이 매여서였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처럼 추억으로 전해지는 할아버지의 기억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사랑으로 할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도록

저의 손주들에게 그런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아버지는 안아보지 못한 손주들을 셋이나 보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아이들을 안으며

제가 줄 수 있는 사랑을 한껏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훗날 저를 어떻게 기억해줄런지는 모르지만,

자신들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할아버지.

그 사랑만큼은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병원에서 안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서 걱정하지 말라고는 하는데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하네요.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것도 별로 없는데

하필 이런 몹쓸 것을 물려받았나 싶어서 속도 상하고

헛웃음도 나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저의 꿈을 이루어서

아버지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았고

사랑하는 손주들도 보았습니다.

이제 가도 여한이 없기는 합니다만,

그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어주고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은 욕심에

조바심도 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아버지.

아버지는 불교에서 법사를 하셨고,

저는 교회에서 집사가 되어서

하늘나라에서 같은 동네에 있지는 못할 수도 있겠지만,

혹시 우연히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저를 그저 한번만 안아주면 좋겠습니다.


애비 없이 잘 살아왔다고.

고생 많았다고 한번만 등을 두드려주면 좋겠습니다.


그립습니다. 아버지.

저는 힘내서 제 아이들 곁에 조금만 더 머물러보겠습니다.


곧 뵐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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