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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싸 Sep 13. 2023

고독을 즐기세요

(자신만의 세상에 갇히지 마세요)

 

 20대 후반, 나는 파워블로거였다.

 블로거로서의 힘과 영향력이 있어서 파워블로거가 아니고, 블로그에 ‘힘’을 많이 쏟기만 한다는 의미의 ‘파워’ 블로거였다. 한창 블로그를 많이 쓰던 때는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던 때였는데, 학교 과제물, 친구들 사진, 수업내용 등 학교에서의 모든 일상과 자기애 넘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찬 공개 일기장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때보다 조금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 당시에 썼던 글들은 도무지 맨 정신으로는 다시 볼 수가 없어 모두 비공개로 바꾸고 과거를 지운 채 살고 있다. 그때 내 블로그를 꾸준히 찾아준 이웃들은 참으로 비위가 좋은 분들임에 틀림없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다. 나의 생각을 기록하고, 완성도에 상관없이 내가 마음에 드는 작업물을 블로그에 자랑하듯 올리곤 했다. 돌이켜보면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칭찬을 듣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가게일로 항상 바빴고 나는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을 정도로 무언가를 특별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충족되지 못한 ‘인정’의 결핍이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남아있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나는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그리고 ‘좋아요’와 긍정적인 댓글 하나에 큰 기쁨을 얻는다.


 나처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자존감’의 정도가 낮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상담심리학을 공부할 때 배웠다). 스스로가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자신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 하고 칭찬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어필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SNS가 대표적인 어필의 수단이다.

 

 우리는 SNS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그냥 스스로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은 의도도 있고, 자신의 창작물을 모아두는 포트폴리오의 역할로 사용하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들의 소식을 듣기도 하고 삶의 지혜를 얻기도 한다. SNS의 순기능을 찾으면야 그것도 많겠지만, 역기능을 찾는다면 그것 역시 만만치 않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이 버려지기도 하고 원치 않는 사람이 내 소식을 알게 될 수도 있다. 남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비교하기도 하고 그 때문에 열등감이 생기거나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을 하지 않았던 건, 앞 챕터들에서 밝힌 바와 같이 돈도 많이 떼이고 물건이 팔리지도 않는 등 본격적으로 망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더 이상 자랑할만한 이야기도 없었고,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이렇다고 떠들면서 동정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남들은 계속 이런저런 즐거운 소식들을 올리는데 매일매일을 겨우 버티며 불안하게 살아가는 내 현실이 그들과는 너무 동떨어져 보였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나는 디자인이 아닌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그 일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지금은 비록 디자이너로 살고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여전히 살아 있노라고, 그러니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나를 칭찬해 달라고. 사실 그런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더 이상 디자인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나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나의 새로운 일상을 기록하는 시간보다 나를 응원해 주던 사람들의 멋진 일상과 그들의 작업들을 구경하며 부러워하는 시간들이 더 길어졌고, 결국 나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내 일상을 기록하기는커녕 인스타그램 앱을 지우고 온라인을 떠나 살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그 연장으로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그들의 연락을 피하면서, 디자인과 관련된 어떤 정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어쩌다 서점에 가도 디자인/예술 쪽 서가는 아예 얼씬도 하지 않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고 마음이 멀어지면 생각도 흐려진다. 나는 디자인을 떠나 제빵사로 2년 동안 살아보았고, 직장인 디자이너로 몇 년을 살다가 인테리어 현장 소장으로 업종을 바꾸어 한동안 디자인을 잊고 살아보았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은 후 지금은 결국 다시 디자이너라는 직함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 글도 쓰고 있지만, 다시 디자이너로 돌아올 때마다 느꼈던 무뎌진 손끝과 흐려진 감각 앞에서 힘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물론 디자인을 하지 않고 보낸 시간 동안 디자인에 대한 갈증이 생겨서 디자인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그 시간 동안 배운 일들이 지금 내 삶에 여러 모양새로 큰 도움을 주고 있으니 딱히 후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다. 한 가지 직업으로만 오롯이 꽉 채운다는 느낌. 겪어보지 않았던 시간이기에 막연한 아쉬움이 남아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떠날 수 있다. 나처럼 하는 일이 잘 안 풀려서 정이 뚝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디자이너든 작가든, 무언가를 만들어 본 사람은 절대로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빵집에 제출할 이력서를 쓰면서도 인디자인(편집디자인 프로그램)을 열어 표를 만들고 보는 게 디자이너다. 자녀의 학교 숙제로 사용할 PPT배경화면을 대충 만들어준다고 일러스트레이터를 열고,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아빠 무슨 일 하시니?”라는 질문을 받게 하는 것이 디자이너다. 결국 어차피 돌고 돌아 다시 비슷한 무언가를 하게 될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다. 불공평해 보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각자 나름의 동굴에 들어갈 상황이 온다. 정말 힘이 들겠지만, 지금이 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오고 비가 내리면 무지개가 뜬다. 눈부시게 빛나는 날이 우리에게는 아직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남아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좋다. 잘 나가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다면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된다(SNS에는 ‘팔로우 취소’나, ‘소식 숨김’이라는 좋은 기능이 있다). 그런 이유로 자신에게 충분히 유익할 수 있고 어쩌면 자신을 일으켜 줄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에 귀를 막고 눈을 감지 않았으면 한다. 디자이너는 끝없이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며 자극에 노출시켜야 하는 직업이다.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 것을 외면하고 스스로의 세상에 갇혀 살면 결국 고이고 썩기 마련이다. 트렌드에도 뒤떨어지고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 전혀 발전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참 이상해서 주변사람의 좋은 작품이나 행복한 사진을 보면 괜히 시기심과 열등감이 생기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의 좋은 작품이나 사진을 보면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고 힐링이 되기도 한다.


 좋은 것만 찾아보기에도 시간이 짧다. 자신들의 작품을 올리며 뿌듯해하는 사람들에게 SNS는 자부심이 되겠지만, 우리는 그들의 포트폴리오를 그저 감상하고 참고하면 된다. 부러운 일상? 저녁에 먹은 메뉴 자랑? 그런 것이 불편하다면 ‘숨기기’ 하고, 필요한 정보들만 보자. 요즘 트렌드를 파악하고 영감을 얻는 데는 다른 이들이 스스로의 작품을 자랑하려고 올린 SNS만 한 것이 없다. 꼭 자신과 비슷한 분야를 찾아볼 필요도 없다. 요즘 나의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뜨는 피드는 ‘웃긴 고양이’ 영상과 ‘풍경사진’이다(‘나이 듦’의 척도라고 하는 야생화 사진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덕분에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된다. SNS뿐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건강한 자극을 주고 주져앉은 자리에서 일으켜 줄 이야기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세상 모두가 끝났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도 우리 자신만은 스스로의 편이 되어주자.


 언젠가는 반드시 세상이 우리의 편이 되어줄 날이 올 것이다.   


인테리어 현장 소장으로 일했던 행궁동 ‘la ilac’,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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