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에서 새벽까지
새벽 3시. 나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궁금해서 묻는 줄 알았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뭔가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때쯤 깨달았던 것 같다.
이 사람은 진짜 질문하고 내 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내가 AI 강사라는 게 싫었던 것이다.
예의있는 척 하며 "야, 니가 이런 거 가르칠 자격이 있나?"라는 메시지로 나를 돌려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자판을 두드리는 손끝이 시려 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더니, 귓가에까지 두근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졌다. 뭐랄까.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뒤섞인 마음?
나는 차분하게 응대했다. 내가 어떻게 연구하고 있고, 어떤 경험을 쌓아왔으며,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상대는 당연히 듣지 않았다. 점점 더 비꼬는 말투로 끝없이 시비를 걸었고, 나는 점점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결국 초저녁부터 시작한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설명하고, 반박하고, 또 설명하고.
늪이 따로 없었다.
새벽 4시가 다가와서야 잠에 들 수 있었고, 두어시간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내가 뭘 한거지?"
내 콘텐츠를 좋아해 주는 1만 명 이상의 팔로워와 또 1만 명 이상의 카페 가입자들이 있다.
내 강의를 기다리고, 나의 자료를 좋아해 주는 천여명의 사람들이 오픈채팅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뒤로한 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익명 뒤에 숨어 자기 마음대로 지껄여대던 한 사람에게 내 시간과 감정을 소비했던 것이다.
그 밤에 쏟은 에너지를 차라리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에게 썼다면?
그 시간에 더 좋은 자료를 만들었다면?
그 감정으로 더 가치 있는 강의를 준비했다면?
나는 99개의 응원은 무시하고, 1개의 악플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바보같이.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몇몇 친구들이 내 자리로 모여들곤 했다. 우리는 사소한 이야기에도 깔깔거리며 웃었다. 친구들과 웃고 있는데도, 저 멀리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은 한 아이가 시야에 걸렸다. 나는 그 순간, 웃음을 반쯤 멈추고 눈치를 봤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표현해줘도, 나를 싫어하는 그 한 명의 시선이 거슬려 마음껏 즐겁지 못했다. 나이를 더해갈수록 의식적으로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이 습관은 마음 한켠에 꽁꽁 묶어두었다. 하지만 드물게 그 존재를 드러내곤 한다.
나는 ‘완벽한 관계’를 원했던가 보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마음으로 응원해 주는 환경을 꿈꿨었던가 보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 법.
미국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인간이 부정적인 경험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것을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 설명했다. 99개의 칭찬보다도 1개의 비판이 더 오래 기억되는 이유였던 것이다. 나는 이걸 어른이 다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부정적인 평가 하나는 온 집중을 빨아들이고, 감정을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사실 문제는 그 나를 싫어하는 한 명이 아니다.
다수의 따뜻한 관심을 감사한 줄 모르고 무심코 흘려보낸 나 자신이다.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강사이자, 사람들을 만나는 컨설턴트이자,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다.
그리고 인플루언서를 꿈꾼다. 그 길은수많은 악플들로 다져질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모두의 사랑을 받으려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놓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것을.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다시 그날 밤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익명의 메시지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연구하고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고, 더 많은 가치를 전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자기계발 웨인다이어가 말했다.
What other people think of you is none of your business.
(다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신경쓸 바가 아니다.)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의 목표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내면에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의 답을 향해 스스로의 가치를 더해 나가야겠다.
“길은 잃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 하지 말자.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말고 내 가치를 높이면 될 일이다.
이 세상위엔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꺼야.
나는 문제없어.
이거, 띵곡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