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나는 춤을 추겠다
예고 없이 툭,
삶의 속도가 엉키고 감정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꾸만,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 애썼다.
마치 안전한 둥지를 찾는 새처럼
'제자리'를 찾아야만 할 것 같고,
흐트러진 감정은 서둘러 정리해야 할
무질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제자리’가 정말 안전한 걸까?
아니, 애시당초
'제자리'라는 게 있기나 한걸까?
요즘 AI 강의를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신기술이고,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핫하다고 하니
배우려는 열의는 느껴진다.
아니 실로 엄청나다.
하지만
정작,
"내가 정보를 찾는 방식,
일하는 패턴,
사고의 궤도를 바꿔봐야겠다"라고
마음먹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모두 그 안전하다고 느끼는
지금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원래대로,
하던 대로
하고 싶어서...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빛은 존재한다.
다만 그것을 보려면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해야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최근, 사랑하는 이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슬픔이란 단어로는 담기지 않을 만큼 아팠다.
그 무거운 슬픔이
가라앉은 물처럼 고여 있는 날들 속에서도,
나는 또 강단에 선다.
정부 주요 부처, 대기업, 대학들...
심지어 카이스트에서도 강의를 했다.
문과 출신인 내가 진학은 커녕
꿈조차 꾸지 못했던 곳에서
강의를 하는 이 아이러니.
그 자리에 서는 순간, 가슴이 두근댔다.
꿈의 무대인 것처럼.
98세, 시외할머니께서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고,
하늘 길이 멀지 않았다는 걸
마음이 먼저 알아차렸다.
슬프다.
그보다 더,
그로 인해 깊은 상실을 겪게 될
우리 시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아리다.
그 와중에도 씩씩한 내 딸은
3월 한 달 동안 초등학교에 완벽히 적응했고,
피아노를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익혀갔다.
배운 지 한 달 남짓인데도,
그 작은 손가락으로
짧지만 곡 하나를 또박또박 연주해냈다.
눈물이 날 만큼 기쁘고 소중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내 감정은 한 달 동안에도
높은 봉우리에서 깊은 골짜기로
내달렸다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
슬픔은 빨리 지나가길 간절히 기도하고,
기쁨은 마치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지 않게 꽉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사실 두 감정의 속도는 같다는 것을.
이처럼 시간은 감정에 무심하게
일정한 속도로 흐르고 있었고,
나는 그 흐름 속에 몸을 맡긴 채
또 살아가고 있었다.
인간은 기쁨과 슬픔을 위해 창조되었다.
이것을 올바르게 알 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해쳐나갈 수 있다.
기쁨과 슬픔은 섬세하게 짜여져
영혼을 묶는 옷과 같다.
- 윌리엄 블레이크
불현듯 깨닫는다.
내 삶을 흔드는 사건들 —
그건 '이제 그 선로에서 벗어나도 괜찮아'라는,
삶이 주는 작은 힌트일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고 했다.
우리는 시간을 조절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토록 시간을 어루만지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잡히지 않기에 더욱 소중한 것이고.
나는 여전히 강의 현장에 가고,
커피를 마시고,
딸의 피아노 연주 영상을
무한 재생해보며 웃는다.
삶이 당신의 꿈을 바꾸려 할 때,
당신의 꿈을 지켜내라.
-파울료 코엘료
그래,어쩌면
제자리를 찾아가려 애쓸 것이 아니라
다시 길을 그려내서
나의 꿈을 지켜야 하는 것일 수 있겠다.
우리의 삶은 확정된 궤도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 속에 있다.
기쁜 것과 슬픈 것 중
우리의 '원래 자리'란 어디에 있는걸까.
아니면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 '본래의 상태'일까.
궤도에서 벗어난 느낌.
(그렇다면 다시, 정상 궤도는 과연 존재하는가.)
시간은 그저 흐르고,
그 안에서 나는 살아간다.
어쩌면 궤도를 벗어난 상태가
삶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이왕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인생이라면
그냥 신나게 춤이라도 춰야겠다.
길은 잃었어도, 당황하지 않고
'정상 궤도'라는 억지 잣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지.
나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으니까.
카이스트에 3번째 강의 가는 날이었는데...
길치인 나는 그 넓디넓은 캠퍼스에서 길을 잃었고,
덕분에 멋진 벚꽃 길에서 사진을 남겼다.
태어난 김에 산다는 말이 있다.
그래, 길 잃은 김에 새 길을 가보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