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순간까지도 아름다운 꽃
보름 전, 내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던 사랑하는 할머니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엄마같은 할머니가. 그전엔 알지 못했다,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이 내 살점을 한 조각 도려내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할머니의 빈자리가 만들어낸 구멍은 나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진공 속으로 끌어당겼다.
꽃샘추위가 물러간 거리에는 어느덧 벚꽃이 터진다. 그 분홍빛이 내 눈에 들어오자, 가슴 한편이 또 저릿했다.
“꽃피는 봄이 오면 꼭 제주에 같이 가자”
할머니와의 약속이 가슴에 맺힌다.
마트에서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치즈, 커피믹스, 떡이 눈에 들어온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전화로 부탁하셨던 속옷 한 세트가 사무쳤다.
그 사소한 일들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의 무게로 내 어깨를 짓누른다.
“그때 해드릴걸…”
이 한마디에 이어 나도 모르게 ‘아이고’ 탄식과 함께 눈물이 터져 나오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바지 옆선을 움켜쥐며 “어떡해”만 연신 내뱉다 정신을 차렸다.
물 위에 비친 달을 보며 달이라 착각하듯, 내 슬픔은 할머니의 것이 아니라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떠난 자리의 공허함을 바라보며 내 상실감, 내 외로움, 내 자신에 대한 연민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별이 된 할머니는 이제 걱정도 고통도 없는 극도로 평온한 상태일 텐데, 나는 여전히 할머니와 함께했던 기억의 미로 속에 갇혀 헤매고 있다.
할머니의 삶도 꽃처럼 지는 순간에도 아름다웠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 할머니는 이제 막 목욕하고 나온 듯이 뽀얀 얼굴로 소녀같이 미소 짓는 모습으로 남겨두련다.
이제 나는 그 넘치던 사랑을 내 곁에 남은 가족들에게 흘려보내려 한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품은 채, 아이들과 남편의 손을 더 단단히 잡고, 새로운 추억을 쌓아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남긴 상처가 완전히 아무는 날이 오기는 할까. 문득문득 가슴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차오른다.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증거이자, 앞으로도 사랑할 수 있는 용기의 표식이리라.
봄날의 벚꽃처럼 찬란하게 피었다가 스러져간 할머니의 삶을 기억하며, 나 또한 내게 주어진 시간을 더 소중히
살아봐야지.
살아갈 수 있겠지.
별이 된 할머니는 이제 밤하늘에서 나의 길을 비추어 주실테니까.
길은 잃었지만 당황하지 말고,
끝도 없을 것 같은 슬픔 중에도
살아보니 또 살아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