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향해 가는 나에게 용기 사탕이란
눈도 못 뜨는 아이를 품에 처음 안고 신기해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아이가 쑥쑥 커 유치원을 졸업하게 되었다.
졸업식 날, 유치원 강당은 학부모들로 가득 찼다.
아이들은 설렘과 긴장이 뒤섞여 반짝이는 눈으로 앞을 향해 앉아 있었다.
어른들은 제각기 손에 휴대폰을 들고 이 순간을 기록하기 바빴다.
원장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제 너희는 초등학생이 돼.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차분히 손을 들고 기회를 얻어야 해. 친구들에게도 계속 말을 하기보다는 들어주려 노력해 봐. 어디에 나가서든."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듣고 있는 모습이 기특했다.
지금 저 작은 인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땐 얼른 크고 싶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유를 얻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유 뒤에 숨겨진 책임은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나는 퇴사했고, 사업을 시작했다.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처음에는 기대와 설렘이 컸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예상보다 더 고된 일이었고, 갈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기분이다.
때로는 돌아가고 싶었고, 때로는 그냥 멈춰 서고 싶었다.
여러 가지 생각에 미간에 살짝 힘이 들어갈 때쯤 아이들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한 데 모여 강당을 가득 채웠다.
뒤돌아보지 마. 시작이야.
두려워하지 마. 할 수 있어.
꿈이란 날개를 달고 빛나는 저 내일을 향해 달려봐.
김종국, <꿈을 향해>
엄청 또렷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흘러나오는 단어들이 왜 그런지 내 가슴에 맺혔다.
아, 그래. 나도 한때는 이렇게 믿었었지.
두려움 없이, 기대만 가득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졌을까?
이것저것 세상을 많이 경험하면서 새로운 시작은 이제 엄청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 돼버린 것 같았다.
강당에서의 졸업식이 끝난 후, 아이들은 각자의 반으로 흩어졌고, 부모들은 교실로 따라 들어갔다.
담임선생님은 이미 눈가가 붉어진 채로 아이들에게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감정이 복받쳐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선생님과 1년을 보낸 아이들이 행운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선생님은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
한 번 더 감정을 다잡고는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씀하셨다.
학사모 모양의 검은 종이 상자였다.
얘들아, 선생님이 용기 사탕을 준비했어.
처음 등교할 때,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지 걱정이 될 때,
이걸 하나씩 꺼내먹으면 너희에게 용기가 생길 거야.
하지만 선생님은 알고 있어.
곧 너희는 저 사탕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용기를 내고 씩씩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걸.
이렇게 따뜻한 격려라니.
주책맞은 내 눈은 자꾸 눈물이 뱉어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하나하나 준비한 그 마음을 알까?
빠르게 변하고, 강한 자극에 절여진 이 시대를 사는 아이들에게 어쩌면 이건 그냥 사탕 몇 개의 시시한 선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할 때,
씩씩한 척하지만 사실은 속으로 떨고 있을 때,
잊고 있던 이 조그만 사탕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기만 해도,
아니 집에 두고 온 그 사탕을 떠올리기만 해도 조금은 힘이 날 것이다.
그렇게 나의 사랑하는 첫 아이의 마지막 유치원 선생님께서 건넨 것은
그냥 충치 유발 사탕이 아니라, 격려와 사랑의 작은 마법 같은 것이다.
‘괜찮아. 너는 할 수 있어.’ 아주 조용하지만 강한 주문.
그 속에 담긴 어른들의 사랑과 격려가 아이들 내면의 면역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것을 머금으며, 삼키며, 조금씩 조금씩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용기 사탕 없이도 두려운 상황에 씩씩하게 맞서는 자신을 발견하고 기특해할 테지.
사실 어른들이라고 다를 건 없다.
다 자란 줄 알지만 여전히 자라고 있고 더 자라야 하니까.
중요한 회의 전에 늘 마시는 커피 한 잔, 긴장될 때 무심코 반복하는 작은 습관, 초조할 때 괜히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물건.
우리는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모두 자신만의 ‘용기 사탕’을 가지고 있다.
어른이 된 우리가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마법 주문을 거는 것이다.
손에 쥔 작은 물건, 중요한 순간마다 듣는 음악 한 곡, 혹은 오래 간직하고 있는 다짐 하나.
스스로를 다독이는 조용한 주문.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출산 후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린 것만 같은 나의 커리어에
퇴사하고 시작한 사업과 불확실한 미래에
아이를 돌보느라 정작 나를 돌아보지 못했던 숱한 날들에
과연 나는 나에게 작은 사탕을 건네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냥 강하게 몰아세우고만 있었을까?
새해도 벌써 두 달이 지나갔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무뎌진 결심을 다시 잡고 싶다.
내가 어릴 적 엄마와 찍은 사진,
그 사진 속 엄마의 나이가 된 나와 내 아이들의 사진.
이 두 장의 사진이 2025년 나의 용기 사탕이 되어줄 것이다.
길은 잃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괜히 용기 사탕을 한 번 꺼내보면 될 일이다.
어른들의 용기 사탕은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건 함정이다.
계피맛, 홍삼맛, 인삼맛 사탕처럼.
어린 시절의 단맛을 지나, 이제는 용기조차도 쓴 맛을 동반하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 맛을 알면서도 삼키는 게, 어른이 된다는 것일지도.
(근데... 계피맛 사탕은 진짜 싫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