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 코스타 감독.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
"이것은 단순히 배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룰라, 브라질 국민의 전사"
"우리의 운명은 닫힌 문 뒤에서 결정되고 있었죠."
"우리의 실수는 우익 패권주의가 늘어나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거예요."
"그럼 지우마 대통령이 포옹을 충분히 안 해서 탄핵당하는 건가요?"
"이런 협잡에 낀 것이 참으로 민망합니다.
이 간접 선거는 도둑이 저지르고 배신자와 음모가가 염원하고
고문 가해자와 비겁자, 정치적 문맹자와 매수자들이 지지하는
성차별적 협잡입니다. 저는 이 '쿠데타'에 반대표를 던집니다.
하룻밤 자면서 생각해보라고. 개자식들아!"
"우리의 민주주의는 망각에 기초했습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죽음뿐입니다."
"사실 민주주의라는 건 없잖아요"
"미국이 우리 석유를 가져가는 게 정상이라 하는 자 누구인가?"
"우리의 투쟁은 봄을 찾고 있습니다."
원칙을 깨면서 세상은 변화한다. 변화는 늘 진화가 아니다. 파괴와 회복이 느리게 교차된다, 세상을 한 '국가'로 바꾼다. 국가의 변화, 파괴와 회복, 세상은 추상적이지만 국가는 현실 그 자체가 된다. 대기가 아닌 공기가 되고 뉴스 속 환경오염이 아닌 당장 호흡기를 뚫고 들어갈 미세먼지가 된다. 국가라는 공동체, 룰에 의해 움직이는 거대한 집단, 아니 정말 그런가, 국가는 움직이나, 국가를 경험한 적 있나, 국가를 느낄 수 있나, 국가가 있다고 주장하는 거 아닌가. 국가가 있다고 세뇌된 건 아니고? 국가란 뭘까, 국가는 어떤 의미를 지니나, 수많은 시체와 고문, 피와 폭력, 탱크, 총성, 아비규환, 무질서, 최루가스, 비명, 진압, 비상사태, 환호, 연설, 적대감, 조롱, 경멸, 개인의 인식, 개인의 삶, 개인이 속한 가족의 삶, 개인이 속한 가족이 속한 동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절대적인 영역, 영역이라, 하늘과 땅과 바다로 이뤄진 물리적 영역, 또는 잊힌 희생자와 이름 모를 죽음과 가면 속에서 칼을 숨기며 웃는 변절자와 지원이 없으면 굶어 죽거나 학교에 가지 못하거나 죽음보다 못한 삶을 연명하는 이들이 극소수의 야망가들과 그들의 추종자들과 뒤섞여 켜켜이 쌓인 시간대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곳, 일상과 비일상이 혼재된 영역, 온전한 1인으로 남을 수 없는 곳, 서로 다른 생각들이 거대한 대립을 만드는 곳, 세력을 형성하는 곳, 각 세력의 우두머리들이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살인을 서슴지 않는 곳, 불법이 법이 되는 곳, 법을 창조했고, 법을 바꾸었으며, 불법을 다시 법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곳, 질서를 따르는 자들과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과 질서를 사이에 두고 싸우는 자들이 같은 곳, 권리를 부르짖는 자들과 권리를 잃어버리는 자들과 권리를 되찾기 위해 거리로 나서 죽음을 불사하며 싸우는 자들이 같은 곳,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 소수와 소수를 위해 희생하는 자들이 엉켜있는 곳,
인간은 둘 이상 모여 무리를 이룰 때 우두머리가 필요하다. 수억 명이 모였을 때도 마찬가지다. 현대 국가 시스템의 우두머리는 다수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전에는 칼싸움을 잘하면 우두머리가 되었지만 지금은 투표를 통해 정해진다. 다수결로 정해진다. 다수결에 속하지 않은 개인도 정해진 결과에 따라야 하지만 동의와 매료는 다르다. 우두머리는 자신이 속한 무리와 그 무리의 뒤에 선 절대다수의 이익과 의견을 대변해야 한다. 모래알로 쌓아도 성이 만들어지듯 인류의 역사는 한순간에 휩쓸릴지언정 민주주의라는 성을 쌓으려고 오랜 시간 싸우고 애써왔다. 그나마 이게 가장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 하나로 목숨을 걸고 희생하고 자신을 고문 속으로 내던지고 기꺼이 불태웠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재의 인류 구성원들은 그 혜택을 보고 있다. 국가라는 초 거대 집단의 최소 구성원, 국민에게 권력이 있다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이 되는 원칙, 이걸 지키기 위해 그렇게 싸워왔다.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싸우는 과정에 불의와 부조리가 발생하고 갈등이 멈추지 않았다. 수정하고 수정하고 수정하며 민주주의는 많은 국가 운영의 토대가 되었다. 국민이 없으면 국가도 없으니까, 쌀이 없는 데 쌀가마니가 무슨 소용인가. 각 나라는 각각의 민주주의를 장착해왔다. 이게 공동의 생존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서인지,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서인지는 자세히 언급할 수 없다. 주장과 계획과 실행에 의해 움직이는 역사의 진실을 증거와 증언, 해석에 의존하여 받아들이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움직이는 것들, 잠시 놓치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순간들, 숨이 붙어 있기 위해 손을 뻗어야 하는 것들, 국가라는 선택할 수 없었던 테두리 안에서 선택해야 했던 결정들, 그 결과들, 옳다고 여겼던 것들과 방해자들과 망가진 룰과 폐허가 된 광장, 끝없이 써 내려갈 수는 있어도 한 줄로 정리하기 힘든 소용돌이 속에서, 브라질이라는 국가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속에서 "브라질 국민의 전사"라고 불리는 인물이 있었다.
룰라 대통령은 전국의 노동자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절대 일하지 말라고 외치던 자였다. 그렇게 노동당을 창당하고 수십 년의 우여곡절 끝에 브라질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사랑받았다. 룰라의 결정으로 많은 브라질 국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브라질은 경제 대국이 되었다. 룰라는 낮은 계급을 위해 평생 싸웠고 권력을 잡은 후에도 다양한 개선방안을 간구하는 자였다. 브라질의 수많은 국민들은 그를 위해 눈물 흘렸다. 전쟁터였다면 그에게 날아오는 총알과 폭탄을 대신 감당할 자들로 넘쳤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는 정의로운 권력자 1인으로만 운영되지 않는다. 최고 권력이라는 지위를 최고 이익으로 환산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힘은 막강했고 국민의 삶은 관심 없었다. 그들은 오직 더 많은 자본과 더 많은 권력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룰라는 상징이자 벽이었다. 허물어야 하는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룰라는 임기를 마치고 차기 권력자를 자리에 앉힐 수 있었지만 더 거세어지는 공격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룰라가 대통령 지위에서 내려온 후 브라질은 다시 무너지고 있었다. 반으로 갈려 광장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룰라를 감옥에 집어넣어 그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시도들이 실행되고 있었다. 파워포인트에 아무렇지 않게 그려진 그림들이 룰라가 감옥에 가야할 이유로 제시되고 있었다. 법이 악이 될 때, 따라야 하는가, 거부해야 하는가. 룰라는 쿠데타를 쿠데타로 맞서지 않기로 한다. 차기 룰라였던 지우마 대통령은 탄핵된다.
민주주의를 허상이라고 믿으면 편하다. 하지만 이 허상을 부여잡고 싸운 자들의 피가 이 허상을 뒤덮을 때 허상은 허상이 아니게 된다. 허상은 실존하게 되고 싸운 자들과 희생한 자들과 남은 자들에 의해 계속 지켜내야 할 가치이자 원칙이 된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 활용할 경우 국가는 화염에 휩싸인다. 국가 운영자들이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원칙을 내세우며 옳은 주장을 하는 자들을 처벌하고 이익의 관철을 위해 로비하는 자들을 보호하게 된다. 급류가 밀려와 모래성을 허문다. 모래성에 겨우 기댈 수 있던 자들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보며 오열한다. 다시 제대로 된 거주 형태의 모래성으로 쌓기 위해서는 파도가 멀어지고 햇볕이 유지되며 바쁜 손길로 끊임없이 쌓아 올려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허상이 아니다. 역사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차원에서라도 그렇게 믿고 싶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