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오브 더 월드, 두 언어 이야기

폴 그린그래스 감독. 뉴스 오브 더 월드

by 백승권

전쟁은 감정이 없다. 인간의 무리는 생존을 이유로 다른 무리를 도륙하지만, 다른 명분을 지어내서라도 다른 무리를 도륙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빈자리를 피와 눈물로 채운다. 증오와 혐오로 채운다. 빈곤과 고립, 자학과 공포, 다시 전쟁을 촉발시킬 토대로 채운다. 전쟁은 쉬는 날이 없다. 전쟁이 탄생한 이후 인간은 아직도 멈추는 법을 발명하지 못했다. 전장과 전장이 아닌 곳에는 떠난 자들과 떠나고 죽은 자들, 떠난 자들을 기다리다 죽은 자들의 시체와 무덤으로 뒤덮여 있다. 눈물은 모래 폭풍에 오래전 마르고 검고 거친 뺨 위엔 흐른 자국이 겹겹이 남았다. 남은 자들끼리 남은 힘으로 죽이기 바쁘다. 아직 죽지 않아서 흙을 파서 농사짓는 자들은 조만간 가족과 이웃의 무덤을 파게 될 것이다. 왜 태어나게 되었을까. 어미와 아비와 가족 모두가 눈앞에서 숨을 잃는 걸 보려고? 각막에 각인된 참상을 아무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곳에 버려져 내내 재생하며 살아가려고? 왜 전장에서 생존했을까. 입으로 옮기기도 끔찍한 살육의 추억을 들려줄 사람도 이젠 아무도 남아 있지 않는데.


4년의 전쟁 후 집으로 돌아가는 키드(톰 행크스) 대위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넘쳐흐를듯한 슬픔으로 가득했다. 늦은 밤 피로가 가득한 인파 앞에서 그는 자신에겐 남아있지 않는 희망을 전한다. 신문을 읽어준다. 여기가 아닌 곳, 여기 살지 않는 이들에 대한 뉴스를 들으며 사람들은 놀라움과 감동, 다양한 감정에 휩싸인다. 다음 동네로 이동하다가 키드는 다른 언어를 쓰는 소녀를 만난다. 보호자는 죽고 없었다. 키드의 선함은 요한나(헬레나 젱겔)를 구한다. 주변을 수소문하며 키드는 요한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다. 둘이 가는 곳마다 소음으로 가득했고 같은 언어였지만 누구와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적이었고 말이 통하면 착취의 대상이었다. 자욱한 소란과 혼란 속에서 키드와 요한나가 각자의 집으로 가는 여정은 멀고 험했다. 모두가 길을 막거나 총으로 위협했고 독선과 무지로 뭉친 자들이 대중을 겁박하며 통제하고 있었다. 삶의 법칙이 완전히 다른 곳에서 요한나는 모든 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전쟁이 휩쓴 황폐한 참상 속에서 키드는 모든 게 슬픔의 대상이었다. 둘은 떨어져야 했지만 떨어질 수 없었고 최초의 장소로 돌아갔지만 다시 만나야 했다. 불완전한 존재들이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것만이 아무도 해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키드는 요한나의 결박을 풀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아끼는 자를 뒤로 한채 등 돌리지 않는다.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다. 더 많은 이들에게 뉴스를 전한다.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도 누군가는 이를 악물고 살아가고 있다고, 그것이 우리가 알고 살아남아 다른 이들의 새로운 뉴스, 또 다른 희망이 되는 길이라고 전한다. 고난과 상실을 기어이 헤쳐 나온 자들의 빛나는 퍼포먼스, 혁명의 도화선이자 해방 선언이었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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