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파라디소, 대지는 피로 물들고

로코리차르 둘리 감독. 라스트 파라디소

by 백승권

사랑에 빠진 인간은 어리석다.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력을 상실한다. 그러면서도 생애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누군가를 전력을 다해 사랑한다는 자신을 어쩔 줄 모르고 동시에 무한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에 완전히 심취해 스스로의 자존감을 꼭대기에 올려놓는다. 적당히 어리석으면 귀엽게 보이기도 하는데 선을 넘는 경우가 넘친다. 1950년 대 이탈리아 농부 치초(리카르도 스카마르시오)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아내와 아이가 있고 동네 지주의 딸 비안카(가이아 베르마니 아마랄)와 눈이 맞는다. 이전에도 수많은 동네 여자들과 바람을 피웠다. 그러면서 동시 농부들이 이익을 착취당하는 현실이 부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설득력을 잃는다. 남의 가정 파괴하면서 저소득 계층 생계 운운하는 건 균형이 맞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지주는 좁은 관계망의 동네 안에서 여럿의 목숨을 움켜쥐고 있었다. 자신의 지위를 알고 있었고 야만적이고 폭압적으로 휘두르는데 능했다. 아내가 없었고 자식들만 있었다. 치초 가족과 얽혀 있었다. 치초에겐 지주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비안카와 여길 떠나고만 싶었다. 미친.


지주는 감지한다. 딸 비안카와 저돌적인 눈빛을 가진 치초 사이의 불꽃을. 치초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야밤에 지붕을 타고 올라 비안카의 침실로 잠입하기도 한다. 치초의 아내 루치아(발렌티나 세비)는 이런 치초를 지긋지긋하게 잘 알고 있다. 치초는 루치아에게 난 당신을 사랑하지만 서로가 정의하는 사랑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설득이 될 리 없다. 치초의 기행 같은 비행은 멈추지 않는다. 지주는 직감이 사실이었음을 보고 받고 분노한다. 분노를 실행한다. 마침 치초는 (비안카와의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보이는) 구구절절 편지를 써서 지주에게 전달할 참이었다. 치초와 지주는 만난다. 지주는 토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긴 가뭄에도 끄떡없는 촉촉한 흙...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치초는 더 이상 듣지 못한다. 머리가 깨지고 신체 일부가 훼손된다. 지주의 분노는 딸에 대한 사랑에서 기원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냉정한 태도처럼 보였다. 내 소유물을 차지하려고 함부로 나대면 모조리 죽인다는 철칙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치초는 망나니였지만 그의 부재는 가족과 지인들, 마지막 연인 비안카에게 길고 깊은 상처를 남긴다. 먼 곳에서 치초의 형 안토니오(리카르도 스카마르시오)가 돌아온다.


안토니오는 도시인이었다. 형제 치초와 달랐다. 그는 슬픔과 분노를 다스릴 줄 알았다. 표정으로도 태도로도 타인에게 쉽게 표출하지 않았다. 안토니오는 치초의 장례를 위해 시골로 잠시 돌아온다. 조용히 움직이며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맥락을 파악한다. 안토니오와 지주는 마주하고 지주는 안토니오에게 시체 하나 더 보고 싶지 않으면 꺼지라고 경고한다. 사실상 자기가 죽였다는 자백이었다. 안토니오는 꺼지지 않는다. 조용히 기다리고 정확하고 잔혹하게 공격한다. 두 구의 시체를 만들고 가족에게 보복할 빌미를 제거한다. 지주의 집안은 몰락한다, 무너지고 있던 건 안토니오 집안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희망 없는 동네를 떠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동네 밖이라고 희망이 별처럼 깔린 것도 아니었다. 안토니오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고민한다. 영화는 여기서 선을 넘는다. 관객이 지주 같은 사람들이었다면 영화의 결말을 이렇게 만든 이들을 불러 느닷없이 토질 이야기를 하다가 방심한 사이 크게 혼내줬을 것이다. 희망을 부정당하는 게 익숙한 사람들에게 희망은 더 이상 사전적 정의의 희망이 아니다. 금기에 가깝다. 쉽게 말한 사람은 화를 입는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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