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민 바흐러니 감독. 화이트 타이거
인도에서 인간이 자유를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참으로 비참하죠. 하인으로 일하겠다고 종교와 이름을 숨겨야 하는 삶이란.
아버지는 왜 양치질을 하라고 알려주지 않으셨을까요?
우린 빌어먹을 인도 사람인 거죠.
이 세상의 실로 아름다운 것을 목도하는 순간 사람은 노예가 되길 멈춘다.
빈곤층에게 위로 올라갈 일은 두 가지뿐이죠. 범죄 혹은 정치.
부유층으로 태어난 건 죄가 아니다. 빈곤층으로 태어난 건 죄다. 인도의 룰이 그렇다. 태어난 순간, 죽음까지의 삶이 결정된다.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 같은 소리는 부잣집에서 하인이 도망친 대가로 하인의 일가족이 떼죽음을 당하는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베스트셀러 원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화이트 타이거에서 묘사된 인도는 닭장에 갇힌 인간들이 동족의 목이 날아가는 장면을 보면서 평생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인권과 평등, 복지와 환경운동 등을 부르짖는 서구 도시 문명국가 기준에서는 야만이다. 실존하는 야만, 지금도 헤어 나올 수 없는 빈곤과 고통이 이어지는 야만. 인도에서 인간의 운명은 태어날 때 이미 완전히 결정된다. 주인을 죽여 돈가방을 강탈하지 않는 이상 하인의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긴 세대에 걸쳐 교육의 기회가 사라진 계층 구조에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기회가 찾아올 확률은 희박하다. 평생을 박탈당하며 살아온 세대의 후손들에게 박탈은 인생이자 일상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기회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조차 없다. 유대인들의 흔한 명언처럼, 물가로 데려가 낚싯대를 쥐어줄 수 없다. 고기를 낚는 방법을 알려줄 수 없다. 물가로 데려갈 힘도 낚싯대를 구할 방법도, 고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집은 쓰러지기 직전이고 모든 사람들의 표정엔 절망뿐이다. 주변인들의 평균이 바로 내 모습, 나의 과거, 나의 현재, 나의 미래가 이미 결정된 곳에서 똑같은 삶을 반복하며 죽을 날을 향해 낮밤을 보내고 있다. 여기엔 가치가 없다. 여기엔 어떤 것도 없다. 도망치는 것뿐이다. 시도라도 해야 한다. 부자의 돈을 쥐고 싶다면 부자의 곁으로 가야 한다.
부자의 발을 닦고 다리를 주무른다. 머리를 땅에 박아 인사한다. 한없이 조아리고 기분을 헤아리며 맘에 없는 말을 하고 억지로 웃는다. 인간관계가 아니다. 주종관계다. 이런 계급구조에서 하인은 인간이 아니다. 그저 허드렛일을 하는 가축에 가깝다. 희생을 강요하는 가족에게서 빠져나와 부잣집의 하인으로 들어간 발람(아다시 고라브)은 뼛속까지 하인으로 길들여진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떨쳐내지 못한다. 모든 시간을 저당 잡힌 상황에서 행동과 정신이 분리될 리 없다. 발람은 짐승만도 못한 지긋지긋한 운명을 벗어나려 생각을 멈추지 않지만, 주인과의 물리적 거리만 좁혀질 뿐 신세는 바뀌지 않는다. 이유 없이 맞고 욕먹고 살인죄까지 뒤집어쓴다. 저항할 수 없다. 아무도 이 구조를 깨려 하지 않기 때문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최초로 시도할 수 없다. 발람의 억눌린 감정은 누적된다. 분노는 계획이 된다. 분노는 살의가 된다. 분노는 실행된다.
발람은 인도의 척박한 계급 구조에 갇힌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한 한 인간의 탈출을 위대한 승리와 교훈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는 겨우 스스로를 구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사라졌다. 발람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한 방식은 남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었다. 범죄였다. 인도에서 사람답게 사는 방법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 밖에 없다고 화이트 타이거는 발람을 통해 전하고 있었다. 화이트 타이거는 신묘한 짐승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화이트 타이거다. 발람은 화이트 타이거가 아니었다. 온몸에 피와 오물을 뒤집어쓴 닭장 속의 닭이었다. 다른 닭을 내쫓고 주인의 목덜미를 찌른 후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한채 홀로 빠져나왔다. 쉽게 비난할 수 없다. 발람은 오랫동안 비참하게 죽을지, 범죄자로 자유롭게 살다 죽을지 선택한 것이다. 도덕과 윤리가 힘을 발휘하는 환경이었다면 이야기의 결말 역시 달랐을 것이다. 영화는 선동한다. 부유층을 죽여야 빈곤층의 기회가 생긴다고. 영화가 흥행하고 인도 빈곤층들에게 메시지가 각인되었다면 수많은 모방범죄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발람은 혁명을 원한 게 아니다. 그저 삶을 원했을 뿐이다. 절망의 표정에서 벗어난, 한 줌의 삶을 위한 선택지는 범죄뿐이었다. 꼭 그래야 했을까 라는 의문이 통하지 않는 삶도 있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