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서 컨피덴셜,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

피터 버그 감독. 스펜서 컨피덴셜

by 백승권

정의는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 열등감에 찌든 악당들이 꼭 죽기 전에 으스대며 연설할 때 '정의'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가 자의적 해석과 의미부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평생 주류를 동경하며 비주류로 살아온 악당들에게 정의란 단어는 신분 상승의 쾌감을 안겨주는 것처럼 보인다. 나쁜 짓을 골고루 뿌려놓았고 뒤늦게 수습한다며 달려온 자칭 히어로도 때려눕힌 상황에서 악당의 자존감은 분기탱천해 있다. 자타공인 정의의 사도를 꺾은 직후이기에 자신이 정의의 개념을 다시 바로 잡을 시기로 판단한다. 정의를 이긴 내가 정의다. 그동안 많이 외로웠던 내가 세상의 중심, 아무도 안 들어주던 내 이야기가 이제 세상의 기준, 이제 내가 세상의 새로운 정의, 지금까지 도덕적 윤리적 굉장한 척 까불던 애들 다 꺼져, 이제 내가 정의야 전부야 정복자야. 등에 날개가 돋는다. 누워서 경청하던 히어로가 기운 차리고 다시 일어날 때까지 악당은 자신이 새로운 정의의 신이 된 것처럼 달콤한 환각에 빠져든다. 정의 사전 최신 개정판의 편집자가 된다. 타노스 정도의 설득력이 아니면 아무도 속지 않는다. 대부분의 악당들이 설파하는 자신만의 정의에는 불안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존 질서를 교란시킬 정도의 정의라면 상당히 체계적인 근거와 추종자들의 열광적 지지, 핵심 및 주변 커뮤니티의 암묵적 동의 등이 깔려 있어야 하지만 잔인한 폭력의 커리어만을 쌓은 악당에겐 감정 호소와 스펙터클만 겨우 인상적일 뿐이다.


스펜서(마크 왈버그)는 이런 부류를 상대로 보수적 정의를 휘두르다 (무려 5년이나) 감옥 생활을 한다. 출소 후엔 당연히 경찰도 아니다. 현실 자경단에게 명분을 줄 정도의 정의감을 가지고 난처한 상황에 빠진 동료와 이웃을 위해 삶의 시간을 기꺼이 바친다. 스펜서가 상대하는 악당들은 자신이 악당인 줄 알고 스펜서의 방해가 귀찮을 뿐이다. 스펜서는 주먹과 총으로 편리하게 악당을 소탕할 수도 있었지만 각본에 쓰여있는 대로 쉬운 방식을 거부한다. 굳이 멀쩡한 총을 해체하고 주먹으로 겨루자고 한다. 기고만장한 악당은 배트맨 코스프레를 하는 스펜서를 때려눕힌다. 그리고 난 계속하던 대로 마약을 파는 행복한 경찰이 될 테니 넌 사후세계에서 구경하라고 놀린다. 제발 좀 깝치지 말라고 부탁한다. 스펜서는 유치하지만 잡초 같은 생명력을 지닌 서민들의 영웅이라서 그대로 끝내지 못한다. 원기옥을 쥐어짠 듯 남은 힘으로 끝내 수갑을 채우고 만다. 어벤져스 복수극처럼 목을 댕강 날린 것도 아니다. 스펜서 컨피덴셜은 기존 정의와 마약 범죄의 대립을 익숙한 방식과 폭력 묘사로 보여준다. 백인 경찰과 흑인 복서가 한 팀인 익숙한 스토리의 그래픽 노블 같이.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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