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래빗, 유대인은 괴물, 히틀러는 내 친구

타이카 와이키키 감독. 조조 래빗

by 백승권

총격과 폭음이 빗발치는 도심의 중심, 나치 간부가 작은 소년의 몸에 폭탄을 묶는다. 힘껏 떠밀며 저 앞에 미군을 껴안으라고 명령한다. 주위에 온통 무기를 들고 쏘고 돌격하는 자들은 모두 열 살 전후 아이들이다. 그들의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고 그들의 사지와 공간 모두 산산조각이 난다. 전쟁에서 순수와 낭만을 찾으려면, 이런 끔찍한 참살의 장면을 건너뛸 수 없다. 인류가 초래한 어떤 비극도 가장 최악의 희생자는 약자들이다. 여자, 노인, 그리고 아이들. 성인들이 성인들을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탱크와 전투기로 압살 하는 건 전쟁의 아주 좁은 면적에 불과하다, 성인들이 아이들을, 아이들이 아이들을 죽이고 죽었다.


조조 래빗은 조조(로먼 그리핀 데이비스)를 겁 많은 토끼 같다며 놀리는 별명이었다. 독일 아이 조조는 히틀러를 열렬히 사모했다. 늘 곁에 있는 히틀러(타이카 와이키키)와 하루 종일 대화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애정을 표현하며 찬양했다. 조조의 꿈은 위대한 나치가 되어 히틀러와 만나는 거였다. 조조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는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시 맥킨지)를 숨겨주고 있었다. 걸리면 즉각 교수대 행이었다. 나치 반대자와 유대인, 나치 추종자가 한집에 살고 있었다. 아빠는 전장에 나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마을은 스산했다. 군인이 통제하고 있었고 꼬마 나치들이 모여 사람 죽이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조조에게 유대인이란 해로운 괴물, 외계인, 악마 같은 이미지였다. 히틀러와 나치를 얼마나 추앙하는지, 유대인 설명서를 쓰고 그려서 배포할 계획도 있었다. 로지는 그런 아들이 걱정이었지만 말 안 듣는 녀석에게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기도 바빴다. 조조는 엘사의 정체를 점점 깨닫는다. 적의를 감출 수 없었지만 같이 이야기하다 보니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느 날 집안을 뒤지러 나치 간부들이 닥치고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는 동네 공터에 있었다. 조조는 공중에 떠 있는 엄마 다리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운다. 이제 세상엔 조조 혼자였다.


모든 독일인이 나치를 따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치를 따르지 않으면 죽음뿐인 시기였다. 독일이 전쟁에 패하고 연합군이 닥칠 무렵, 조조는 표식을 위해 독일 군복을 걸치고 있었다. 전시 상황에서 유니폼 디자인은 생과 사를 갈랐다. 조조를 '인간적으로' 아끼던 나치 간부 클렌첸도르프(샘 록웰)가 조조의 군복을 벗긴다. 조조는 살고 그는 연합군에게 총살된다.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조조의 세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죽고 아빠는 없고 동네는 부서졌다. 가장 가까운 친구 히틀러와 싸우는 빈도가 늘었다. 히틀러는 조조에게 애원한다. 나치에 열광하던 시절로 돌아와 달라고. 하지만 조조는 알고 있었다. 그런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자초하지는 않았지만 삶의 이정표로 삼던 것들이 조조의 삶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었다. 조조는 새로운 친구를 위로하고 지나간 것들을 인정해야 했다. 히틀러처럼, 머리에 피를 흘리며 창밖으로 사라질 순 없었다.


고난이 인간을 성장시킨다는 가설이 맞다면, 전쟁은 인간의 성장을 위한 가장 가혹한 경험 중 하나일 것이다. 소년 조조는 전쟁 중에 자라날 수밖에 없었다. 환경은 급변했고 주변인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계속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지 않는다면, 거기서 모든 게 끝이었다. 유대인이 괴물과 악마가 아닌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깨달았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전장에서 돌아온 자들이 모두 시체와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도 보았다. 어른들의 어떤 거짓말은 타인의 목숨을 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조조는 혼자 힘으로 살아남은 자가 아니었고 다수의 도움으로 종전을 지나온 생명이었다. 하지만 다시 전쟁이 찾아온다면 또 누가 조조의 몸에 폭탄을 묶어 내던지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세상에 히틀러는 많았고 전쟁 발발의 가능성은 늘 존재했으니까. 신이 인간에게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고난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들은 인간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주는데 익숙하다. 조조에게 전쟁이란 히틀러를 절친으로 인지하는 환상을 통해서라도 애써 무시해야 했던 고난이었을 것이다. 전쟁은 이성과 도덕율을 따르던 자들을 가장 먼저 죽였고 맹신과 세뇌에 빠진 자들을 느리게 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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