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삶은 실패했다고. 낮고 깊게 울렸다. 표정과 음성이 무한 재생된다. 당시 나는 많이 어렸고 저 말에 대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정의 내린 그의 삶은 이렇구나. 어떻게 정의 내렸든 아들에게 전하는 말은 이렇구나. 내가 자신의 삶을 실패라고 정의한 남자의 아들이라는 자각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각이 무의식적으로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영영 지워지지 않는 메모리 공간에 저장되어 자주 계속 재생된다. 그는 스무 살 중반에 첫 번째 자식으로 날 가졌다. 술과 담배를 많이 했고 다정하고 온순하며 우유부단하고 무지하면서도 자신의 미래와 자식에 대해 좀 무관심했다. 난 노동으로 단련된 그의 우람하고 부드러운 팔을 끌어안고 자주 잠에 들었다. 그는 독서를 즐겼다. 어릴 적 집엔 그의 노트가 여러 권 있었고 그의 단상과 일기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는 일하던 중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을 2/5 정도 잃었다. 그날은 비가 왔고 그는 피 묻은 수건과 붕대 감긴 손가락으로 귀가했다. 그는 이 사고로 불편함을 내비친 적도 전과 다르게 보인 적도 없었다. 지인과 대화하다가 "이 손으로 볼링을 어떻게 쳐..." 정도로 응수한 게 기억난다. 열두 살 여름 난 교통사고를 당했고 두 달 동안 입원했다. 뇌와 성장판을 동시에 잃을지도 모를 위태로움 속에서 그는 하루도 떨어지지 않고 간병했다. 대소변을 받고 휠체어에 태워 머리를 감기고 병실 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내다 만화책과 게임기를 한 보따리 가져다 주기도 했다. 의아할 정도로 그때 기억 속에 그가 병실에서 뭘 먹고 있는 장면이 없다. 스물세 살 겨울에 난 다른 사고를 당했다. 압사 또는 질식사에 이를 뻔했고 정말 죽겠구나 라는 직감이 왔었다. 일주일 후 퇴원했지만 머리뼈가 조금 손상되었다. 60 중반의 나이가 된 그는 종종 이때 이야기를 한다. "트라우마" 라는 단어를 써가며. 이때만큼은 그를 안심시킬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요즘 자주 먼저 전화를 건다. 그는 나이 들었고 전과 달라졌다.
수년 전 위암 진단을 받고 위 절제 수술을 받은 이후 확 달라진 건 아니다. 담배는 끊었지만 암 수술 이후 안정기(?)에 이른 요즘 그는 다시 맥주컵에 소주를 따라 마신다. 심한 불면증세로 수면제 처방을 받았지만 잘 듣지 않는다. 한쪽 눈이 많이 안 좋아졌다. 암 수술 이후 엄청나게 수척해졌지만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 결혼 후 한해에 네 번 정도 그의 집에 가서 자고 오곤 했는데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진 이후 통화로 대체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그는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주로 퇴근 시간, 늦은 저녁 시간, 간혹 새벽. 통화의 빈도가 잦아지고 시간이 길어지며 안부 외에 다른 이야기가 오갔다. 그의 과거. 그의 첫 결혼이 실패하기 전 겪었던 외롭고 혼란스럽던 시간들. 이후의 대응들. 지금까지의 영향들. 해야 했던 일들과 하지 않은 일들. 그리고 여전히 모르는 일들. 그는 요즘 부쩍 외로움과 쓸쓸함을 토로한다. 아까는 그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에도 몇 번 비슷하게 했지만 반복될수록 아버지가 많은 서운함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단 한 번도 웃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건 김훈 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긴 줄 알았는데.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의 엄청난 권위와 위압감 때문에 옳은 결정을 내리는데 여러 번 실패했다고 했다. 그 실패 속에 아마 자기 자식들을 다루는 태도도 들어 있는 듯했다. 나와 아내가 도로시에게 하는 걸 보고 그는 충격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고 내게 많이 미안하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는 그 시절에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런 사람이었고 나와 달랐다. 내가 모르는 고난과 그로 인해 내가 얻은 수혜도 있겠지. 그는 내 성장에 대한 자신의 기여도를 내세우지 않았다. 두렵다고 했다. 준비되지 않은 노년이 닥쳐 비참하게 될까 봐. 나는 그에게 안도와 감동을 안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 어버이의 심정을 알 수 있다고 배웠지만 당사자가 된 현실은 조금 다르다. 아이고 우리 엄빠가 날 이렇게 죽어라 힘들게 애태우며 키우셨구나... 여생을 효도하며 지내야겠다... 가 아닌, 나도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 시절부터) 이런 가시적인 사랑과 비가시적인 헌신을 받으며 자란 걸까. 아버지에게 딱히 묻진 않았다. 그의 대답이 궁금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고 겪으며 어느 정도 대강 느낀 것 같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아버지처럼 살기는 힘들겠다... 정도. 통화하며 내가 주도한 업무적 성취에 대해 들려줄 때도 있었다. 구체적인 인정을 받고 싶어서. 의도가 성공한 적은 없다. 인정 욕구에 목매는 애 같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 이런 이야긴 거의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