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 없는 글은 자체가 과녁이다. 빗나가길 의도하는 게 의도인 것처럼. 감지하지 못하는 건지 감지하지 못하게 된 건지 감지하지 않고 있는 건지 셋 다 인지 셋 다 아닌지 다른 뭐든 예상보다 장시간의 비교적 평온 상태에 이를 때가 있다. 며칠은 얼마나 긴가. 그게 한주를 넘어간다면 얼마나 영원 같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 사실 모든 일이 일어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 익숙하고 버거운 것들로 가득 차지만 이 익숙하고 버거운 것들이 그나마 견딜만한 정도인 상태. 괜찮다고 느껴지는 상태. 망망대해에 둥둥 떠 있고 누군가 구하러 오지도 않지만 딱히 이렇게 떠 있는 상태가 나쁘지 않고 당장은 누가 구하러 오지 않아도 좋으며 그저 떠 있고 싶은 상태, 혼자는 아닌 상태, 평화는 혼자 이룰 수 없으니까. 주변의 모든 조건들이 불안하지 않은 상태, 약간의 외면과 약간의 조바심, 약간의 긴장과 약간의 이완, 약간의 피로와 약간의 잠들, 약간의 습관들에 젖어 약간 덜 새로운 상태. 늘 쓰는 글과 늘 새로운 영화들 사이에 늘 같은 맥락으로 제목을 짓고 있는 건 아닐까 같은 문장을 재생산 무한 생산하고 있는 거 아닐까 정도의 염려는 있지만 그게 막 세기말 같지는 않고 미간을 구기거나 두피에 열이 오르는 정도는 아닌 상태.
타인의 공로를 곱씹는 상태, 내가 원해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그래서 내가 내가 조금이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할 거 같은데 마침 곁에 나타나 내 등을 밀어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내 이마에 손을 짚어주고 내게 새 옷을 주고 나와 따스한 음식을 나눠 먹고 나와 새로운 산들 바다로 놀러 가 최초의 바람과 햇볕에 몸을 말리는 사람과 그 사람과 같이 행복에 겨워 울고 웃고 소리 지르고 덜덜 떨다가 나와 너를 닮은 새로운 사람과 같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신이 던진 주사위가 내 이름이 써진 도시로 굴러와 잿팟을 터뜨린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는 상태에 대하여. 그런 사람들이 나보다 더 중요하게 된 상황에 대하여, 그들 없이는 나도 없고 내가 없어도 그들은 영원해야 하는 상황에 대하여. 이 거대한 환각 같은 세계관 속에서 일정한 속도를 지니게 된 상태. 하루에도 변속이 수십 번도 더 이뤄지기도 하지만 서로가 브레이크가 서로가 에어백이 서로가 ABS가 서로가 범퍼가 서로가 완전한 안전시스템이 되어주는 상태. 그래서 내가 더 나의 타인이 되더라도 너희 둘은 영영 나의 타인이 될 수 없어. 나는 소모품이 될 거야. 나는 너희 남은 생의 살과 뼈를 이루는 먹이와 포도당이 되고 싶다.
미온의 평온에 대해 자꾸 자체 검증을 요구하려는 행위를 점검한다. 박제시킨 시간에 대해, 부유물처럼 떠도는 말들, 격렬한 과거의 열기들, 떠오르는 공간과 재해석되는 말들, 프레임의 시도들, 그런 사람으로 만들려는 평가와 그런 사람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단어들, 무시해야 하는 걸 알고 있지만 불안한 방어들, 후유증, 후폭풍, 내 의도와 상관없이 노력의 농도와 무관하게 너덜거렸던 그때를 장기 보관하는 내면의 창고, 박스, 테이핑이 너덜너덜해진 자국들, 들춰봐야 좋을 게 없지만 가끔 비난과 모욕의 단어를 내 흉터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들에 대한 유혹들, 난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지만 그런 사람으로 낙인과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어이없으면서도 가끔 생각나거든. 어쩌면 그게 (약간은)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자평. 하지만 약간만 눈을 돌려도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화인으로부터 막아주는 표정들이 다시 떠오른다. 괜찮아야 할 이유들이 많지. 어떤 밤이든 하얗게 만들 빛을 품은 구슬이 내 주머니엔 가득해. 내 안경의 렌즈로 만들어 밤 12시를 낮 12시로 만들 수 있어. 더 이상 밧줄은 아니다. 언제라도 배설물이 묻을 순 있지. 닦고 소독하고 샤워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선크림과 왁스로 마무리를 하면 된다. 나는 내가 구할 수 없지만 나의 사람들은 나를 이미 구했고 앞으로도 구할 것이다.
나만 아는 암호 같은 말들로 칠하고 이를 연결하는 선 위에 장막을 걸친다고 이런 글이 해독되지 않을 거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완전히 서로에 대해 무지한 상태의 사람들이더라도 결국 언어는 단어는 문장은 행간의 침묵은 입술을 꾹 누르며 보이지 않는 고갯짓을 하며 눈 밑을 붉게 만들며 쓰는 사람은 읽는 사람과 다르지 않은 경험과 감정을 겪었고 완전하지 않은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되었더라도 그것이 날카롭게 일치하는 영역이 있다는 걸 무시할 수 없으니까. 어쩌다 공감이 사랑만큼 쉽고 피로한 단어가 되었지만 서로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서로 보이지 않는 대상의 토로를 통해 뭔가 통한다는 걸 알게 되는 건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내밀하고 결국 남은 호흡을 죽음이 아닌 떨리는 생존으로 이어나가게 하는 거라는 걸. 나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쓴 글로부터 수없이 느꼈고 그 덕에 이렇게 잘리거나 부패하지 않은 손끝으로 이 글을 쓴다.
어쩌면 나는 물리적으로 구현될 수 없는 또 다른 나에게 이 글을 적는 지금 시점의 내가 조금 괜찮다는 안부를 전하려고 이렇게 증거를 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굴에서 길을 잃고 어둠 속에서 벽을 더듬거리다가 탈진했고 저 먼 빛까지 무너진 천장으로 인해 가려버린 절명의 상황 속에서 (실제로는) 빠져나왔지만 정신은 여전히 머물고 있는 눈을 감고 있는 상태의 내게, 나의 과거에게 신호를 보낸다. 지금이 그 증거고 넌 괜찮아질 거다. 그리고 다시 수렁에 모든 숨통을 장악당하더라도 다시 괜찮아질 거다. 미래와 현재의 나는 그걸 반복하며 겪었고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무호흡의 상황에도 끝내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놓을 필요 없다고. 스스로 놓아도 따스한 외압에 의해 건져 올려질 거라고.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를 분석하고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오물이 묻은 과거의 손을 털어주며 일으킨다. 나아간다. 우린 혼자가 아니라고. 더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결국 괜찮아질 거라고. 이 말밖에 보낼 수 없지만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모른다고. 과거의 멱살을 잡는다. 다시 숨 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