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코엔 감독. 애플 TV 오리지널. 맥베스의 비극
가장 밝은 얼굴로 세상을 속이러 갑시다
마음속에 전갈이 가득하오. 사랑하는 부인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오.
돌아가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니
마이클 패스벤더와 마리옹 꼬띠아르의 맥베스 영화를 본 적 있다. 혼돈과 카리스마가 뒤엉켜 파멸에 이르는 이야기가 연극의 형식으로 절제된 영상미와 처절한 독백에 담겨 있었다. 조엘 코엔 감독의 애플 TV 오리지널 맥베스의 비극은 덴젤 워싱턴과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로 등장한다. 전자가 마이클 패스벤더의 퇴폐적 야성미로 점철되어 있다면 후자는 자조의 비중이 높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전쟁에서 돌아오던 중 자신과 조국에 대한 마녀들의 예언을 들은 전쟁 영웅 맥베스는 왕과 측근들을 죽이며 왕좌를 차지하지만, 불안에 떨며 광기와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투 중 목이 잘리며 최후를 맞는다. 맥베스는 시종일관 불안과 저주에 시달리고 레이디 맥베스는 남편에게 보다 대담해질 것을 요구하지만 둘 다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절망과 복수 속에서 생의 문을 닫는다. 그들이 놓인 빛과 어둠의 공간은 처음부터 그들을 삼킨 채 서서히 질식시키고 녹여가며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고 영화의 모든 가시적인 구성요소들 중 유일하게 힘을 잃지 않고 있었다. 공간이 왕이자 권력이었고 빛과 어둠이 충직한 수족처럼 인간들을 작고 우습게 만들고 있었다. 아무도 예언에서 단 한 움큼도 벗어나지 못했고 신이 허락한 시공간 속에서 속절없이 쓰러졌다. 맥베스는 모두를 비웃으며 내내 두려워하고 있었고 오히려 죽기를 각오하고 검을 휘두를 때 가장 홀가분해 보였다. 마침내 죽음과 만나는 일을 격렬히 환영하는 듯. 레이디 맥베스가 처음부터 단검을 쥐고 왕위 찬탈을 직접 실행하는 자였다면 권좌는 보다 오래 유지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남겨진 탐욕의 미치광이들에게 스코틀랜드의 국운은 맡겨지게 되었다. 신과 마녀의 고요한 비웃음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