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아스 린드홈 감독. 그 남자, 좋은 간호사
병원을 상대로 싸운 적이 있다. 병원은 끝까지 은폐하려 들었다. 당시의 모든 기록을 증거로 내세워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겁박하고 협박하고 잡아떼었다. 당시 주치의는 숨었고 다른 담당자들을 내세워 마치 없던 일처럼 만들려고 굴었다. 당시 우리는 아 역시 현실과 싸우는 건 이토록 버거운 일이구나. 약자인 우리가 물러설 수밖에... 이런 식으로 약자와 패자를 자처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당시 상황에 대한 모든 자료와 지인들의 자문과 다양한 법률 자문과 자료 탐색, 수많은 기관과의 통화를 통해 우리가 그들에게 내세워야 할 것들을 준비하고 들이밀었다. 승리를 위해 대립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당한 피해에 대한 당시 담당자와 전문가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고 그들은 회피하고 은폐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공론화를 두려워했다. 여론이 퍼지면 그들을 찾는 환자들이 줄어들 거라는 위기감에. 그들의 배경엔 수많은 의료진과 법률전문가들이 있었고 우리에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목조목 따졌고 설명과 책임, 배상을 요구했다. 칼로 자르듯이 벨 수 있는 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협의에 제대로 임하고 놓친 것들과 이해받고 싶은 것들을 제시한다면 충분히 진전이 가능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랜 시간 방어와 협박에 허비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멈추지 않고 대응하고 진실을 내세우고 최소한의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대화다운 대화를 요구하고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영화 그 남자, 좋은 간호사에서 수많은 병원들은 고의적인 다른 약물 투여로 환자를 죽였다고 의심되는 간호사의 존재를 숨긴다. 환자를 살해한 병원이 되는 걸 은폐한다. 수많은 환자의 의문사는 가려지고 어떤 보상도 되지 않는다. 같은 방식으로 환자 살해는 계속 이어진다. 같은 방식으로 병원들은 계속 은폐한다. 살인자에게 이런 병원들의 악행은 얼마나 최상의 살육 환경인가. 셀 수 없는 환자들이 죽고 숨겨진다. 한 간호사 에이미(제시카 차스테인)에 의해 밝혀질 때까지. 그때까지 병원은 법률과 의료적 지식을 내세워 환자가 아닌 자신들의 악행을 철저히 보호한다. 그사이 살인마는 활개 치고 환자들은 살해되었다. 누군가는 다 직장에서 자기가 많은 역할을 한 것뿐이라고 변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환자 살인을 은폐하는 것이 담당자의 의무라면 살인 공모, 살인 공조와 무엇이 다를까. 그건 직장이 아닌 그저 살인을 일삼고 조장하는 범죄조직 아닌가. 살인자 찰스(에디 레디메인)가 죽였다고 판단되는 환자는 4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영화는 실화에 기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