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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트레인저, 악의 신뢰를 얻는 법

토마스 M. 라이트 감독. 더 스트레인저

by 백승권

놈은 살인자다. 법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시간이 지났고 놈은 살아있고 살해 증거는 없다. 남은 건 피로와 분노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아 짜증이 치민다. 그만큼 정신까지 지쳐있다. 완전히 소모되었다. 모두들 그렇다. 임무를 넘어 생의 사명이 되었다. 제대로 완결 짓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앙금이 모두의 표정과 대화 속에 서려 있다. 목적은 같지만 역할은 다르고 하나만 삐걱거려도 수년의 고생과 고통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시종일관 날이 서 있고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가진 애를 쓰고 있다.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 이 방법뿐이다. 자연스럽게 입을 열도록 해야 한다. 이게 가능한가. 모두가 연극을 준비한다. 위치를 정하고 동선을 짜고 이야기를 만들고 살인자를 초대한다. 충분히 가까워진다. 악마가 아닌 인간을 상대하는 마음으로 다가가고 말을 걸고 도와주고 도움을 요청하고 무리를 만들어주고 유대를 쌓고 심리적 장벽을 낮추며 충분히 스스로 뭔가를 이야기할 때까지 충분히 내가 그 일을 직접 저질렀다고 말할 때까지 충분히 자신의 살인 행각을 말할 때까지 충분히 마치 과자를 먹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말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고 기다리고 상황을 만들어준다.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눌 정도로 가깝고 믿을 수 있으며 앞으로도 너를 떠나지 않을 너의 유일한 친구와도 같은 존재라고 각인을 심어준다. 비슷하게 수염을 기르고 비슷하게 거칠고 날 것의 스타일을 갖추고 비슷하게 뭔가 공허하고 생의 목적이 바르지 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발각되는 순간 단숨에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을 짓누르며. 압박감에 울음이 나오고 잠이 오지 않고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바들바들 떨지만 절대 티가 나지 않도록 몸과 정신과 습관과 호흡을 다스리며. 오랫동안 같이 준비해온 팀과의 호흡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어떤 변수에도 늘상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응하며. 기다린다. 서서히 옥죈다. 체계적으로 구축한다. 그가 자신의 범행을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버틴다. 수년 동안 수백 명이 공조하며 버텨왔으니 더 버틸 수 있다는 궁극의 신념과 제정신이 아니어도 끝을 보고 말겠다는 의지로. 버티고 버티고 무너져도 안 무너진 척 여기서 완전히 무너질 수 없다는 듯이 허물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주워 담아 죽어가듯이 버틴다. 버틴다. 살인자의 모습이 되어, 살인자의 거울이 되어, 살인자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듯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살인자가 공기처럼 나를 편안하게 대할 때까지. 버틴다. 더 스트레인저는 한없이 평범해 보이는 살인자(숀 해리스)와 그런 살인자의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형사(조엘 에저튼)가 서로에게 동화되는 과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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