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울 모드는 일상 관련된 기록의 주된 정서였다. 슬픔과 분노가 토핑 정도가 아닌 핵심 재료처럼 들어가 조리되곤 했다. 지금은 다르다. 다른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의 시행착오는 그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노력과 정성은 인정받고 대화가 가능하고 기능했으며 관계는 유지와 축적, 협력과 유대를 통해 강화되고 안정적 긴장을 이어갔다. 그렇게 이전의 기록의 소재들은 희미해져 갔다. 숨 쉴 때마다 힘들다는 기록은 없었다. 과거가 떠올랐지만 그뿐이었다.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로 옅어진 악몽과 지속가능한 평화는 공존했다. 지금의 불안은 무엇인가. 미래가 남았다. 나도 우리도 아무도 모르는 미래. 누구도 굶지도 아프지도 않아야 하는 미래. 지금보다 나아야 하는 미래. 미래가 서서히 목을 조여왔다. 나는 언젠가 늙고 더 지칠 테고 어느 날 지금보다 나빠진 상태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준비하고 싶었다. 막연했고 무지는 불안으로 이어졌다. 불안이 현실이 될까 봐 다시 불안했고 이런 감정은 쉽게 증폭되어 뇌와 전신의 신경을 빠르게 휘감았다. 여기 불을 지펴 졸이고 어둠의 엑기스에 펜촉을 찍어 글로 옮긴다면 전과 뭐가 다를까. 악순환의 재림이었다. 불안과 불안의 글, 슬픔과 슬픔의 글, 분노와 분노의 글, 무지와 무지한 글이 돌고 돌다가 부엌 바닥에 엎어버린 라면 냄비처럼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굳이 옮기지 않는다. 어둠이 사그라들길 기다리고 실체를 과장하지 않으려 잠재운다. 하나만 잘못 쓰러뜨려도 도미노가 될 수 있다. 자학과 자괴는 다작과 과식을 위한 최적의 메뉴지만 그걸 잘못 먹으면 장기가 손상되어 두뇌와 사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쁜 생각을 섣불리 글로 옮기면 나쁜 현실이 된다. 한때는 간절했지만 지금은 제어가 필요하다. 나의 우리는 여전히 함께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가 많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