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23개월

걷고 먹고 마시고

by Glenn

짐을 다 쌌다. 아무 생각 없이. 월요일부터 마지막 마지막 마지막 모든 동선에 마지막 스티커를 붙이려 했지만 금요일까지 딱히 몽글한 감정에 휩싸이지 않았다. 점심 먹고 포도빵집에서 무화과 빵 사고 서울숲을 걸었다. 커피를 들고 있었고 잠시 나무 테이블에 앉았다. 아까는 볕과 선선함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비둘기 까치 수백 마리와 사람 수만 명이 단풍처럼 여기저기 날리고 있었다. 2년 전 겨울 이 동네로 사옥 이전을 했다. 1층 스타벅스 3층 메가박스가 있는 건물이었다. 출근 때마다 스타벅스 로고와 마주하고 점심에는 아크로 포레스트 사이를 지나며 식당을 찾고 퇴근길에는 메가박스 캐러멜 팝콘을 사들고 돌아왔다. 수제버거 피자 드립 커피가 사시사철 난무했고 팝업스토어가 기존 스토어보다 더 많이 오픈한 것처럼 느껴졌다. 한남도 그랬지만 공간미와 명성보다 맛은 별로인 블루보틀, 비 오는 날 근사했던 써니 브레드 2층, 임원 추천으로 갔던 소랑호젠, 가장 자주 갔고 늘 괜찮았던 코사이어티, 이름값 하는 밀도, 면보다 밥이 더 손이 많이 갔던 제제, 의견이 나뉘었던 제스티 살룬, 가장 넓은 데 한때 우리만 앉아 있었던 퀴버, 강렬한 오발탄, 조금 멀고 무겁게 먹었던 윤경, 다섯 명이 갔던 노모어피자, 난 갈 때마다 그저 그랬던 엘더 버거, 처음 갔을 때 놀랄 만큼 괜찮았던 버섯집, 자주 들르고 너무 오래 기다렸던 할머니의 레시피, 두 번째 갔을 때가 더 좋았던 서울 앵무새, 따라갔던 빠오즈푸, 초반에 자주 갔던 카린지, 가장 많이 간 바스 버거, 눈 뜨게 만든 노티드, 그 옆에 다운타우너, 은근히 자주 간 르베지왕, 갤러리아 포레에서 가장 많이 간 탕수육과 밥이 괜찮은 서우, 드립 자주 마신 5 to 7, 약속 장소로 좋은 메종 파이프 그라운드, 갈 때마다 많이 시킨 도쎄, 자리 옮기기 전 올리브 빵 속 올리브 보고 기절했던 퍼먼트, 개인 취향이었던 빙봉, 흐린 날에만 갔던 써브웨이, 의자와 크로플이 좋아 오랫동안 이야기했던 더막, 든든했던 만학... 상호명이 다 기억나지 않아서 여기까지만 적는다. 실제 방문한 곳은 훨씬 더 많다. 점심마다 이곳저곳을 걸었다. 걷고 먹고 돌아오며 커피 마시고. 다음 주부터는 다른 동네에서 걷고 먹고 마실 것이다.


서울숲에 대한 글은 여기에.

https://brunch.co.kr/@sk0279/1336